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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동 Apr 30. 2023

물웅덩이를 품은 금오름

백록담을 닮은 금악담


을 품은 신비로운 오름,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는 오름, 전망과 일몰이 아름다운 오름, 백록담을 닮은 금악담 등의 수사가 붙은 금오름. 굼부리에 물을 담고 있는 몇 안 되는 오름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제주 서부 중산간 지역의 대표적인 오름이다.

백록담을 닮은 금악담


흑악의 신비로운 오름, 금오름


금오름의 어원은 정확히 밝혀진 바는 없으나 대체로 두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 하나는 조선시대에 금악리를 '흑악' 또는'흑악촌'이라 부르기도 했던 것을 미루어 보아 '검은오름'이 변해 금오름이 되었을 것이라는 설이다. 실제로 현지 안내판에는 오름 이름으로 금오름과 함께 '거문오름, 금악'을 병기하고 있다.

정물오름에서 본 금오름

다른 하나는 '금'은 어원상 신이란 뜻인 '곰(고어)'과 상통하며, 금오름은 신이란 뜻의 어원을 가진 옛날부터 신성시되어온 오름이라는 설이다.


오름 들머리는 금악초등학교에서 1.3km 떨어진 지점이다. 지선버스가 다니지만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이름난 오름이라 진입로에서부터 주차된 차들로 혼잡하다. 차 댈 것을 걱정했는데 안으로 들어가니 넓은 주차장이 있다.

금오름 탐방 안내도

​주차장 뒤에 양쪽으로 작은 물웅덩이가 보인다.

오른쪽 못은 자주 말라 생이(제주어로 새)나 먹을 정도로 물의 양이 적다고 생이못이라 불렀다고 한다. 실제로 새가 많이 모여들어 생이못이라 하기도 하고. 왼쪽은 가축용이다.

생이못(위), 갈래새미(아래)


금오름 하부 둘레길


금오름은 표고(해발고도)는 427.5m 지만 비고(오름 자체의 높이)가 178m에 불과하다. 주차장에서 정상까지 바로 오르면 천천히 걸어도 30분이면 닿는다. 오름 하부 둘레는 2,861m로 삼나무와 해송이 우거진 둘레길이 나 있다.

하부 둘레길은 삼나무 숲으로 시작하여 점차 소나무 숲으로 바뀐다.

우리는 먼저 둘레길을 한 바퀴 돌고 정상으로 오를 계획이다.

왼쪽 물웅덩이 뒤로 난 평탄한 삼나무 숲으로 들어선다. 들머리부터 서양금혼초와 봄까치꽃이 우리를 맞이한다. 점차 삼나무는 소나무로 바뀐다.

서양금혼초(왼쪽), 봄까치꽃(오른쪽)

덩굴식물이 삼나무와 소나무를 감아 오른다. 그 아래에 까마귀쪽나무와 참식나무가 햇빛을 찾아서, 가지를 뻗는다. 언덕 언저리에 왜모시풀이 지피를 덮고 있다. 탐방로를 재빠르게 가로지르던 딱정벌레가 인기척에 죽은 채 움직이지 않는다.

까마귀쪽나무, 참식나무, 딱정벌레, 왜모시풀(왼쪽 위에서부터 시계 침 도는 방향으로)

들꽃을 살피는 재미로 걷는 둘레길. ​

금오름 둘레길은 들꽃 천지다. 앞선 서양금혼초와 봄까치꽃에 이어 자주광대나물, 자주괴불주머니, 살갈퀴, 미나리아재비, 큰방가지똥ㆍㆍㆍㆍㆍ.​

자주광대나물, 자주괴불주머니, 미나리아재비, 살갈퀴(왼쪽 위에서부터 시계 침 도는 방향으로)

자주광대나물의 꽃말은 '그리움'이다. 시인 김창진은 광대나물의 자줏빛 꽃을 보고, "그 사랑은 저 빛깔이었던가 / 숨어서 멀어져 가는 사랑이어 / 무녀가 당집에 숨겨 놓아도 / 그 그리움이 / 저 꽃으로 피었던가"라고 노래한다.


​광대나물에서 '빨치산 정하섭을 숨겨 주며 애틋한 사랑을 나누던 새끼 무녀 소화의 그리움'을 본 시인의 통찰력에 감동한다.


풍성하게 자란 띠가 바람에 부드럽게 하늘거린다. 둘레길 산림도로의 바퀴 자국이 선명하다. 키가 껑충한 큰방가지똥이 덩치에 비해 작은 노란 꽃을 가지 끝에 달고 있다.

풍성하게 자란 띠(왼쪽), 큰방가지똥(오른쪽)

둘레길을 걷는 탐방객은 우리 두 사람뿐이었다. 사람 소리가 들리고 이내 주차장이 나온다. 다시 오름 들머리로 돌아왔다. 많은 사람들은 똑바로 뻗은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 정상으로 곧장 오른다.


'희망의 숲길'​

왼쪽의 '희망의 숲길'이 훨씬 매력 있는 길인데 아무도 걷는 사람이 없다. 우리는 해송 숲 사이로 이어지는 '희망의 숲길'로 들어선다.


해송과 삼나무를 시작으로 고도를 높여가면서 굴거리나무, 까마귀쪽나무, 두릅, 비자나무, 찔레, 보리수. 윷노리나무 등이 함께 자라고 있다.

두릅(왼쪽), 비자나무(오른쪽)


백록담을 닮은 산정화구호, 금악담


희망의 숲길 안내판에서 정상까지 620m. 약간 가파른 계단이 몇 차례 나타나 땀을 조금 흘리지만 천천히 걸어도 30분이면 정상부 굼부리 능선에 닿는다. 굼부리 안쪽과 바깥쪽 모두 탄성이 절로 나오는 풍광이 펼쳐져 정상 오르길 잠시 잊는다.

깊이 52m의 원형의 굼부리를 내려다본다.

남북으로 2개의 봉우리와 동서로 낮은 화구벽은 굼부리 능선으로 이어진다. 깊이 52m의 원형의 굼부리를 내려다본다. 온통 풀밭이다. 띠와 억새가 일렁이고, 토끼풀이 폭신하게 바닥을 덮고 있다.

동쪽 능선에서 본 금악담

굼부리 한복판의 물웅덩이(금악담)는 작은 백록담이다. 금악담은 동·서쪽 안부에서 더 잘 보인다. 산정화구호로 불릴 만큼 풍부한 물을 담고 있었지만 지금은 수량이 줄어 화구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가뭄이 들어도 웬만해선 마르지 않는다.

산정화구호로 불릴 만큼 풍부한 물을 담고 있던 금악담은 수량이 줄어 화구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눈을 바깥으로 돌린다. 사방으로 전망이 툭 트였다. 한라산을 중심으로 북돌아진오름, 누운오름, 가메오름, 이달오름, 새별오름, 샘소오름, 밝은오름, 정물오름, 당오름을 하나하나 짚어본다. 넓은 규모의 초지가 반듯반듯하게 경계를 나눈다. 오름 주변에 '이시돌 목장'을 비롯한 기업형 목장이 많다.

한라산, 북돌아진오름, 누운오름, 가메오름, 이달오름, 새별오름, 샘소오름, 밝은오름, 정물오름, 당오름이 파노라마처럼 간단없이 펼쳐진다.

화구벽을 따라 정상으로 오른다. ​

걷기 좋은 길이다.


​바람이 분다.

선선한 바람이다.

땀에 젖은 등짝

가슬가슬하게 마른다.


굼부리에 띠가 하늘거린다.

띠를 스쳐 온 바람이 상쾌하다.

바람에 일렁이는 굼부리 속의 띠

화구벽 둘레길을 따라 사방을 조망하며 한 바퀴 돈다.

정상에는 통신탑이 있다. LG U+ 마크를 단 차량이 올라온다. 도로가 나 있지만 업무용 차량 외는 올라오지 않는다.


한라산을 시작으로 따라오던 오름들에 이어 정상 남쪽의 문도지오름, 남송이오름, 산방산, 군산, 단산, 모슬봉이 차례로 펼쳐진다.

굼부리 동쪽 능선에서 정상을 거쳐 서쪽 능선, 북쪽 능선으로 둘레길을 걷는다.

서쪽 능선에서 한라산을 은 화구호를 촬영한다. 사람들은 동쪽 능선 들머리와 화구호 둘레에만 모여 있다. 서쪽 능선에서 보는 금악담의 참 묘미를 모른다. 굼부리는 미네랄이 풍부한 붉은 화산송이가 깔려있다. 금악담을 오르내리는 화산송이길이 완연히 드러난다.

서쪽 능선에서 본 한라산을 담은 금악담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북쪽 능선에 서니 서부 제주 대부분이 훤히 보인다. 저지오름, 수월봉, 녹남봉, 느지리오름, 당산봉 ㆍㆍㆍㆍ 등 크고 작은 오름들이 당산봉, 노로오름과 노꼬메오름, 바리메오름이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한림 앞바다에 비양도가 떠 있다.

금악리 마을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멀리 비양도가 떠 있다.

가까이는 금악리 마을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아름다운 조각보처럼 밭담으로 나누어진 경작지는 작물 교체기인지 빈 땅이 대부분이다. 들 사이로 알록달록한 지붕들이 처마를 맞대고 있는 풍경은 옛 마을 이름인 '흑악'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금악오름은 마을의 중심에 우뚝 솟아 있고, 제주도 서부지역을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볼 수 있는 지리적 요충지다. 일제 때 수많은 진지동굴이 만들어졌고, 이 동굴은 두기가 남아 일제의 수탈과 4.3의 참상을 증언하고 있다.


​초소 옆의 평상에 앉아 서부 제주의 풍광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2023. 4. 26)​​




​운동 시간 1시간 35분(총 시간 2시간 23분)

걸은 거리 5.33km

걸음 수 9,551보

소모 열량 613kcal

평균 속도 3.3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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