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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동 May 02. 2023

이승악(狸升岳)

남원읍 신례리


이승악 가는 길은 대중교통이 불편하다. 연결도로인 서성로엔 노선버스가 없다.

제주 중산간 난대림대를 뚫고 달리는 서성로는 불편함을 상쇄하기에 충분할 만큼 멋진 드라이브 코스다.

이승악 진입로
한라산 중산간에 숨겨놓은 벚꽃 명소,
이승악 가는 길


서성로 이승악 탐방휴게소에 주차하고 걷기를 권한다.


신례 공동목장 사이로 난 (서성로에서 '이승악 입구'까지의) 진입로 2.5km는 한라산 중산간에 숨겨놓은 신례리 벚꽃 명소다.


고개를 살짝 돌리면 목가적인 풍광으로 녹색 가득한 초원이 동수악, 논고악, 성널오름 등을 거느린 한라산 아래로 펼쳐진다. 이를 바라보며 걷는 길은 봄이면 벚꽃이, 여름이면 녹음이, 가을이면 억새와 단풍이, 겨울에는 설경이 화가의 화폭처럼 한라산의 사계를 그려낸다.

신례 한우단지 공동목장

벚꽃길의 끝에 작은 주차장이 있고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신례천 생태탐방로가 함께 소개되어 있다. '이승이오름(이승악) 앞'이라 쓰여 있는 현 위치의 표현이 아리송하다.


아무튼 오른쪽 임도를 따라 300여 m 더 들어가면 환상적인 이승이오름 탐방로가 시작된다.

이승악 탐방로 안내도

오늘 탐방할 코스를 정리해 본다.

이승이오름 앞 > 정상 등반로 입구(동남쪽) > 전망대 > 이승이오름 정상 > 정상 등반로 입구(북서쪽) > 일본군 갱도진지동굴 > 숯가마 > 화산탄 > 삼나무 숲(북쪽) > 표고밭 입구 > 정상 등반로 입구(동남쪽) > 이승이오름 앞(=현 위치, 남쪽)으로 이어진다.

탐방로 입구부터 활엽수림이 하늘을 가린다. 참나무, 소나무, 굴거리나무, 말오줌때가 맞이한다.

탐방로를 들어서자마자 활엽수 숲이 하늘을 가린다. 나무, 나무, 굴거리나무, 음지와 양지 가리지 않고 모두에서 잘 자라는 말오줌때가 우리를 맞이한다.


단풍이 고운 울울창창 이승악


우리는 처음 만나는 위치 안내판에서 왼쪽 나무계단을 오른다. 야자 매트와 나무 계단이 번갈아 나타난다. 탐방로는 경사가 급하지 않아 걷기에 좋다.

참식나무와 상수리나무를 등나무 덩굴이 오른쪽 감기를 하며 타고 오른다.

가끔 탐방객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하지만 숲은 조용함을 넘어 적막감이 흐른다. 이를 흔드는 바람은 사월의 마지막 날인데도 차게 느껴진다. 저지대와는 온도 차가 있다.


​참식나무가 유난히도 많다.

참식나무와 상수리나무를 덩굴식물이 오른쪽 감기를 하며 타고 오른다. 천남성, 제주조릿대, 고사리도 군락을 이루고 자란다.

천남성(위 왼쪽), 고사리(위 오른쪽), 제주조릿대(아래)

남동쪽 능선에는 전망대가 두 군데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남동쪽으로 서귀포 앞바다가 가까이 다가온다. 섶섬, 문섬, 범섬이 한가로이 떠 있고, 고근산이 이를 지키고 섰다. 그 사이에 한라산 난대림이 펼쳐진다.

전망대에서 본 서귀포 앞바다. 섶섬, 문섬, 범섬, 고근산이 보인다.

두 번째 전망대가 정상이다. 이승악은 표고 539m, 비고 114m의 오름 정상에도 나무가 빽빽하다. 


'이승이오름' 또는 '이슥이오름'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산 모양이 삵(살쾡이)처럼 생겨서 붙인 이름이라는 말도 있고, 살쾡이가 많이 서식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삵은 제주말로 '슥 또는 '식'이고, 또 한자이름 이승학(狸升岳)의 이(狸)도 삵을 뜻한다.

정상에서 본 한라산

오름 정상에 서서 동수악, 논고악, 성널오름, 사라오름을 거쳐 비스듬히 한라산으로 이어지는 산세를 바라본다. 울울창창한 난대림에 한동안 넋을 잃는다.

동수악, 논고악, 성널오름, 사라오름으로 반반하게 펼쳐지는 울울창창한 난대림에 한동안 넋을 잃는다.

동쪽은 가까이 있는 사려니오름, 넙거리, 머체오름, 거린족은오름, 거인악, 민오름 등이 두드러짐 없이 두리뭉실하게 보인다.

가까이 보이는 사려니오름, 넙거리, 머체오름 쪽의 오름 군은 두리뭉실하여 구분이 안된다.


화산암괴와 뒤엉킨 신비의 숲


북서 사면을 내려서면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은 수악계곡의 숯가마와 해그문이소를 거쳐 출발점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오른쪽은 한라산 둘레길(수악길)을 만난다. 숯가마, 일제 갱도진지, 화산탄, 삼나무 숲, 표고 재배장 입구를 돌면 역시 출발점이다.

굴거리나무, 사스레피나무, 산딸나무(왼쪽부터)

우리는 오른쪽 길을 선택한다.

이 부근은 굴거리나무, 사스레피나무, 산딸나무, 때죽나무, 개서어나무, 산뽕나무, 생달나무, 삼나무, 동백나무, 참나무, 단풍나무, 올벚나무, 섬개벚나무, 조록나무 등 많은 수종의 나무들이 함께 그려내는 신록과 가을 단풍, 겨울 눈 속의 상록이 곱기로 알려진 곳이다.

때죽나무, 개서어나무, 산뽕나무(왼쪽부터)

이승악 서편 능선 하단부에 자리 잡은 옛 화전민들의 숯가마 터와 일본군 갱도에 대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탐방로를 이탈하지 못하게 줄이 처져있어 직접 확인하지 못한다.


​두 시설 대신 곶자왈 못지않은 진기한 풍광을 만난다.

밖으로 드러난 굵은 나무뿌리와 바위 덩어리가 한데 엉켜 있다.

오름의 북편 아래에 거대한 바위 덩어리가 군집을 이루고 있다. 화산분출물이다. 밖으로 드러난 굵은 나무뿌리와 바위 덩어리가 한데 엉켜 기이한 모습을 하고도 나무는 자라고 있다.

화산암괴와 화산탄이 만든 정상 근처의 돌무더기 군집

화산이 폭발하면서 분출된 화산암괴(보통 지름 32mm 이상)와 화산탄은 무거워 분화구에서 멀리 가지 못하고 정상 근처에 돌무더기 군집을 만들었다.


​토양의 발달이 빈약하고 표층은 물론 심층까지도 크고 작은 암괴들로 이루어져 식물이 자라기에 척박한 환경임에도 뿌리를 내리고 이끼류, 양치식물, 덩굴식물, 가시덤불과 함께 숲을 이루고 있다.

척박한 환경임에도 바위 무더기 사이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요상한 이름의 나무 이름표가 세워진 곳에 정작 나무는 말라죽고 없다. 윤노리나무였는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는 고목(枯木)에 (공동제작하고 있는 설치미술품처럼) 길 가던 사람들이 돌을 하나둘 올려놓았다. 현재 진행형이다. 어떤 모양이 만들어질지 사뭇 궁금하다.

공동제작하고 있는 설치미술품(?)과 윤노리나무 이름표

이승악 산책로는 한라산 둘레길(수악길)과 같이 간다.

수악길은 해발 600~800m 국유림 일대를 둘러싸고 있는 일제 강점기 병참로(일명 하치마키도로)와 임도, 표고버섯 재배지를 활용하여 산림의 역사, 생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조성한 길이다.

건천

화산석이 울퉁불퉁 근육을 드러나는 건천을 건넌다. 이 둘레길은 한남, 수망, 교래로 이어진다.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에서 연구를 목적으로 운영 중인 한남시험림 내 삼나무림 등을 지나는 특색 있는 숲길이다.

혼합림과 삼나무 조림지(왼쪽), 조록나무

우리는 수악길과 헤어져 얌전하게 뚫린 삼나무 산책로를 따라 출발점으로 돌아간다. 여름, 가을, 겨울에 다시 방문할 것을 약속하면서.(2023.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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