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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동 May 06. 2023

넓은 초원에 솟은 정물오름

한림읍 금악리


한림 ㄱ수산에 들렀다가는 길이다. 중문으로 가기 위해 한창로로 들어선다. 금악리교차로를 지나고부터 왼쪽으로 오름 세 개가 도드라진다. 금오름과 정물오름, 당오름이다. 오늘은 그 두 번째 정물오름과 다음의 당오름을 오를까 한다.


이시돌 삼거리에서 산록남로로 바꾸어 타고, 이시돌목장 입구을 지나자마자 오른쪽으로 정물오름 이정표가 보인다. 250여 m 정도 들어간다. 오름은 이시돌목장을 끌어안듯이 굼부리를 열고 있다.  거운데에 주차장이 있다.

정물오름 탐방로 안내도

이곳에서 정물오름(해발 466.1m)을 올려다본다.  북서쪽으로 넓게 벌어진 말굽형 화구. 오름의 개괄적인 형태가 한눈에 들어온다. 남서쪽으로 다소 가파르게 솟아올라, 북동쪽으로 완만하게 뻗어 내렸다.

정물오름 굼부리 능선은 남서쪽(오른쪽)에서 가파르게 솟아 북동쪽(왼쪽)으로 완만하게 뻗어 내린다.
'정물'이라 불리는 쌍둥이 샘(雙泉)


주차장 바로 앞에 '정물'이라는 쌍둥이 샘(雙泉)이 있다. 오름 이름을 이 샘 이름에서 따왔다. 두 수원지와 수로로 연결되어 있다. 정물'안경샘'이라고도 불린다. 원형 샘이 '나들목이란 코에 걸친 안경' 모습을 하고 있어서.

'정물'이라 불리는 쌍둥이 샘(雙泉), 오름 이름은 이 샘 이름에서 따왔다.

중산간지대에서는 흔치 않은 이 샘(정물)은 금악리인근 마을 주민들과 이시돌목장의 중요한 식수원이었다. 4.3 당시엔 피란 주민들이, 한국전쟁 시에는 제1훈련소 훈련병들이 사용하기도 했다.

조금 안쪽에 있는 안경샘의 한쪽은 습지로 변하였다. 수생식물 속에서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샘의 주변은 찔레나무가 수위대를 치고 있다. 굼부리 들머리부터 가시덤불이 많은 것이 정물오름의 특징 중 하나다.


가시덤불 속에 핀 들꽃


가시덤불 속에서 오랑캐꽃이라고는 불리는 자주색 제비꽃이 뒤쪽에 커다란 꿀주머니를 달고 나비와 벌을 기다린다.

제비꽃(왼쪽), 멍석딸기(오른쪽)

장딸기는 흰 바탕에 은근한 연두색이 비치 꽃잎  5장을 수평으로 펼치고 있다. 꽃말처럼 '달콤한 향기'로 길손을 '유혹'한다.


탐방로는 정물샘을 중심으로 뻗어내린 양쪽의 굼부리 능선을 이용한다. 우리는 경사가 완만한 왼쪽의 북동쪽 능선으로 오른다. 한라산과 일대의 오름들을 조망하면서 오르는 길이다.

초입의 소나무 숲

반대편 쪽의 남서쪽 능선은 경사가 급하여 정상까지 온통 계단으로 이어진다. 오름 북서쪽의 넓은 이시돌목장을 바라보고 걷기엔 이 길로 하산하는 편이 낫다.

낙엽 활엽 관목과 소관목들이 띄엄띄엄 이어진다.

초입은 잠깐 소나무 숲을 지난다. 탐방로는 나무계단길, 폐타이어 길, 야자 매트 길이 번갈아 나타나며 이내 초지로 바뀐다. 초지는 가시덤불, 찔레, 쥐똥나무, 떡윤노리나무, 꾸지뽕나무 등의 낙엽 활엽 관목과 소관목들이 띄엄띄엄 이어진다.

꾸지뽕나무(왼쪽), 떡윤노리나무(오른쪽)

초지에는 미나리아재비, 선씀바귀, 큰구슬붕이, 큰개불알풀, 양지꽃이 심심찮게 피어있다. 들꽃을 살피느라 발걸음을 자주 멈춘다.

들꽃을 살피느라 발걸음을 자주 멈춘다.

짙은 노란색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는 미나리아재비는 굼부리 능선 길 전체가 자신의 터인 양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바람에 흔들린다.


국화과의 선씀바귀가 '순박'하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흰 꽃을 줄기 끝에 우산모양으로 달려 있다.

미나리아재비(왼쪽), 선씀바귀(오른쪽)
나지막한 산 오르고, 높은 산 기분 낸다.


인근의 금오름과는 식생이 완전히 다르다. 이제 띄엄띄엄 나타나던 가시덤불과 소관목도 사라진다. 굼부리 능선 탐방로는 억새만 무성하고 전망이 확 트인다.

억새풀 뒤로 당오름이 다가온다

북서쪽으로 굼부리가 열린 정물오름은 남동쪽으로 트인 인근의 당오름과는 등을 마주 보고 돌아앉았다.

정물오름 정상에 올라 사방을 돌아본다. 동쪽으로 한라산에서 서쪽으로 수월봉, 남쪽으로 산방산에 이르는 제주 서부를 모두 조망할 수 있다.

정상 가는 길, 정상 쉼터, 한라산과 그 앞의 오름 군(위에서 부터)

쪽으로 고개를 조금 돌리면, 누운오름, 새별오름, 큰바리메, 족은바리메가 가까이 보이고, 바로 밑에는 초록의 목장이 눈을 시원하게 한다

누운오름, 새별오름, 큰바리메, 족은바리메

서쪽에 이웃한 금오름의 정상에 설치된 통신탑과 굼부리 동쪽 능선의 띠 군락이 눈에 띈다. 엠마오연수원 숙소동의 붉은 지붕이 녹지와 어우러져 이국적인 풍경이다.

금오름과 성이시돌 엠마오연수원 풍경

다음 일정으로 잡아놓은 당오름이 발밑에 있다. 벌어진 굼부리 앞으로 송악목장의 파란 지붕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당오름과 송악목장

남쪽 한창로 건너 마주 보이는 도너리오름과의 사이에 골프장 시설이 넓게 차지하고 있다. 뒤로 멀리 있지만 존재감이 뚜렷한 산방산과 군산은 알아보기 쉽다. 오른쪽은 남송이오름이다.

도너리오름 뒤로 군산, 논오름, 산방산, 남송이오름이 보인다.
개가 가리켜 준 명당, 정물오름 굼부리


멀리 저지오름이 모습을 드러내고 저지곶자왈과 풍력발전기가 보인다. 골프장은 금오름 쪽으로 구역을 넓혀가고 있다.


정상 너머 억새군락을 지나면 곧 빽빽한 소나무 숲을 만난다. 내려가는 남서쪽 사면은 가파르다. 야자매트 탐방로는 나무 계단으로 바뀌고 거의 바닥까지 계속된다.

정물오름에서 본 저지오름과 저지곶자왈, 블랙스톤 제주 CC

소나무 밑에는 관중이 많이 자란다. 또 낙엽 활엽 덩굴성 반관목인 멍석딸기가 갈고리 모양의 가시를 감춘 채 '질투'하듯 연분홍 꽃을 내민다. 아내는 관중의 포자낭을 살핀다.

관중(위 왼쪽), 멍석딸기(위 오른쪽)을 살핀다.

천남성이 녹색 바탕에 흰 선이 있는 깔때기 모양을 한 꽃을 달고 있다. 꽃잎 끝은 활처럼 말려서 꽃봉오리를 덮고 있다. 꽃말처럼 뭔가 감추고 싶은 '비밀'이 많은 듯하다. 독이 있는 식물이라 조심스럽게 꽃잎 끝을 들추어 본다. 꽃봉오리 가운데에 면봉처럼 생긴 것이 달려 있다.

천남성

가파른 계단이 끝나고 탐방로는 완만한 지대를 지나간다. 굼부리 안의 곳곳에 산담이 보인다. 이 오름에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개가 가리켜 준 옥녀금차형의 명당 터' 이야기가 있다.

금악리에 살던 어떤 이가 죽자, 기르던 개가 상제의 옷자락을 끌고 정물오름 명당 터로 갔다고 한다. 개가 알려준 곳에 묘를 쓴 후손이 뒷날 큰 복을 받았다는 이야기다. 그 명당을 확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명당 전설 때문인지 오름 안팎의 기슭에는 산담(무덤)이 많다.

옥녀금차형의 명당 터' 전설 때문인지 무덤이 많다.

이 오름 서쪽, 성이시돌젊음의집과 엠마오연수원 사이에 '알오름'이 있다. '정물알오름'이다. 길은 연결되지 않는다.


정물오름은 탐방시간이 짧은 코스다. 오름 오르는 재미를 알게 한다. 얕은 산을 단시간에 오르고, 정상에서 느끼는 쾌감은 높은 산 올랐을 때와 맞먹는다. 나지막하지만 조망이 뛰어난 오름으로 손꼽을만하다. 이웃한 당오름으로 발걸음을 옮긴다.(2023.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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