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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동 May 09. 2023

만만찮은 당오름

안덕면 동광리


제주도에는 당오름이 여러 군데 있다.

구좌읍 송당리, 조천읍 와산리, 안덕면 동광리 그리고 원래 당오름이었던 한경면 용수리 이렇게 모두 네 곳이다.


이들 모두 예부터 신당이 모셔져 있어서 당오름이라 불렀다. 지금도 송당리, 고산리, 와산리의 당오름에는 당집이 있다. 해마다 마을의 무사 안녕, 풍어와 풍년을 기원하는 당제를 지내고 있다.


그러나 오늘 오르는 동광리의 당오름에는 당 터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

정물오름에서 본 당오름 서남쪽 사면

남서쪽 한창로 바로 건너편은 도너리오름이다. 북서쪽에는 정물오름, 금오름이 일직선상에 있다.


오름 앞에 주차한 차량의 수로 봐서 관심도를 겨냥해 본다. 우리가 갔을 당시, 금오름에는 수십 대의 차량으로 넓은 주차장이 붐볐다. 정물오름은 대여섯 대, 당오름은 달랑 한 대만 세워져 있다. 도너리오름은 휴식년으로 출입 통제 구역이다.

이웃한 정물오름과의 사이 초원으로 서귀포시와 제주시의 경계선이 지나간다.

이웃한 정물오름과 당오름 사이의 골짜기는 목장이다. 이곳으로 서귀포시와 제주시의 경계선이 지나간다.


당오름의 들머리는 송악목장 북쪽 출입문과 서쪽 출입문, 두 곳이 있다.


우선 북쪽 출입구는 이시돌삼거리와 광평 교차로 사이의 산록남로 변에 있다. 정물오름를 다녀오는 경우는 이곳이 좋겠다. 정물오름 주차장에서 광평교차로 쪽으로 차로 2분 거리(1.3km)에 푸른 지붕의 건물이 보인다. 사료공장이다. 그 앞 공터에 주차할 수 있다.


왼쪽이 송악목장 출입문이다. 소떼가 놀고 있다. 방목지 사이로 난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 1km 정도 걸어 들어가서 오른쪽 묘지 가장자리를 따라 작은 봉우리를 지나면 당오름 동쪽 사면이다.

사료공장 앞 공터에 항의성 펼침막이 달려 있다.

우리도 처음에는 북문으로 갔다. 입구의 컨테이너 박스에 항의성 펼침막이 달려 있다. 사료공장과 인근 주민들 사이에 갈등이 있는가 보다.


펼침막을 살피는데 목줄이 풀린 개가 다가온다. 검고 덩치가 다. 지난가을 올레 15A 코스를 걷다가 개에 물린 일이 생각난다. 깜짝 놀라 재빨리 차에 오른다. 북문으로의 탐방을 포기하고 서문으로 옮겨간다.

송악목장 서문 쪽의 돌담

이시돌삼거리를 돌아서 한창로변의 서문(서남쪽)으로 간다.

자동차로 5km 정도 떨어져 있지만 묘지까지 들어서는 길이 북문 쪽보다 오히려 짧다.


'방역상 출입을 통제한다'며 용무가 있는 사람은 협의를 하라는 안내문이 서 있다. 전화를 하니 소를 조심하라는 당부만 하고 쉽게 출입을 허락한다.

목장의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서문에 당오름을 둘러 북문까지 이어진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들어섰지만 새로운 난관에 봉착한다.

사유지라 탐방 안내판이 없다. 탐방로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오름을 향해 똑바로 난 콘크리트 진입로는 잠깐이다. 빼곡히 들어선 산담을 두른 묘지를 만나면 길이 희미해진다.


앞서 오르던 두 부부는 포기하고 돌아선다.

정상을 보고 바로 치고 오른다.

묘지 뒤쪽에 작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고, 정상부에 가까운 쪽에는 나무가 거의 없는 초지다. 이리저리 헤매다가 정상을 보고 바로 치고 오른다. 20여 분이면 굼부리 능선에 닿지만 매우 가파른 길이다.

가파른 비탈, 들꽃을 살피면서 금세 굼부리 능선에 오른다.

풀밭에는

마른 소똥이 이리저리 뒹군다.


몇 걸음 걷다가 숨 가쁘면 쉬어가라고,

작은 들꽃들이 방긋거린다.


​옅은 자줏빛이 도는 꽃을 피우고

'희소식'을 전하는 큰구슬붕이.


눈에 잘 띄는 노란 꽃으로

'사랑스러움'을 표현하는 양지꽃.


더 짙은 노란색 꽃송이를 활짝 열고

'천진난만'한 미소를 짓는 미나리아재비.


붉은빛이 도는 녹색 꽃을 줄기 끝에 달고

'친근한 정'을 내세우지만

생태교란식물로 견제를 받는 애기수영.


들꽃들을 살피다 보면 금세 굼부리 능선에 오른다.

큰구슬붕이, 양지꽃, 애기수영, 미나리아재비(왼쪽 위에서 시계 침 도는 방향으로)

올라온 길을 돌아본다.


도너리오름과 그 너머로 남송이오름이 살짝 보인다. 더 멀리 왼쪽으로 산방산과 군산, 모슬봉이 그 특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뒤질세라 오른쪽 단산의 납작 엎드린 모습도 눈에 띈다. 도너리오름 주변의 곶자왈은 녹색 물결로 일렁인다.

올라온 길

서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서북쪽 사면은 경사가 가파르고 나무가 무성하다.

건너편 정물오름은 동북쪽 사면과 서남쪽 사면의 식생이 뚜렷이 구분된다.

굼부리둘레길에는 꾸지뽕나무와 갈풀, 띠가 모여 자란다.

정물오름과 꾸지뽕나무(위), 한라산과 갈풀(아래)

오름의 정상부는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은 원형 굼부리의 형태를 하고 있다.


시야가 확 트였다.

한라산이 다가온다.

흰 구름이 용의 모습을 하고 백록담으로 내려온다.

한라산

굼부리 둘레길을 걷는다.

우리는 원형 굼부리를 오른쪽에 두고 시계 침 도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굼부리 능선의 곡선이 유연하다.


굼부리 안쪽은 소나무 숲과 띠 군락이 혼재되어 있다.

굼부리 둘레길

어느 집 조상의 묘인지 모르겠으나 굼부리를 내려다보며 자리 잡고 있다. 앞이 훤히 트여 있어 모르는 내가 봐도 명당자리다.


원물오름, 감낭오름, 족은대비악 등 동쪽 오름들이 한라산을 향해 고도를 높여간다.

굼부리를 내려다본다.

삼나무 조림지가 보이는 북동쪽 사면 아래로 목장의 방목지가 보인다. 소떼의 모습이 여유롭다.


북문으로 들어오는 콘크리트 진입로가 방목지를 가로지른다.

소떼 방목지

굼부리 안에는 일제가 구축한 일본군 진지가 있고, 화산활동의 흔적인 화산탄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위쪽에는 띠가 우거져 있고, 아래쪽에는 가시나무가 군집을 이루고 있다.

굼부리 안쪽

오름의 동쪽 사면으로 내려선다. 

굼부리 둘레길은  소나무 숲으로 이어진다. 길도 분명하다.

숲을 벗어나서 시루를 엎어 둔 것 같다 해서 '시루오봉'이라 불리는 얕은 다섯 구릉을 넘는다.

굼부리 동남쪽 소나무 숲길

산담을 두른 묘지를 만나면서 다시 길을 잃는다.

묘지 사이를 이리저리 헤매다가 겨우 목장의 철조망을 따라 콘크리트 포장길을 찾는다.

송악목장 7번 게이트

여유가 생기니 목장의 녹색 초지가 눈에 들어온다. 노란 꽃이 보인다. 멀리서 보고 유채인가 하고 가까이 가보니 아니다.

유럽장대가 목장을 점령하고 있다.

귀화식물인 유럽장대가 목장을 점령하고 있다. 목장 관리자는 엄청난 번식력으로 골치를 앓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유럽장대

4,5년 전에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 이젠 목장 전체를 뒤덮었다고 한다. 문제는 소가 먹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른 풀이 자랄 땅을 남겨놓지 않는다. 어떤 경로로 들어왔는지도 분명치 않다며 필요하면 베어 가란다. 얼마나 답답하면 그렇게 말하겠나.

남쪽에서 본 당오름

해발 473m, 비고 118m의 당오름.

만만하게 보고 찾았다가 힘든 산행을 하고 간다. 그렇지만 굼부리 능선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일품이다. 정상만 오르겠다고 생각하면 큰 어려움은 없다. 빤히 보이는 정상부를 바로 오르내리면 된다. 다만 제대로 된 산행기록을 남기지 못해 아쉬울 뿐이다. (2023.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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