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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동 May 19. 2023

당오름과 송당 본향당

신화와 오름을 따라 걷는 소원 비는 마을


제주 동부의 구좌읍 송당리는 제주 신들의 고향이다. 스무 개의 크고 작은 오름들로 둘러싸인 송당리 중앙에 제주 무속신앙의 본가인 송당 본향당을 품은 당오름이 자리한다. 당오름과 송당마을 모두 신당과 관련이 있다.


송당 보건소 맞은편 좁은 골목을 들어서면 넓은 주차장이 나온다. 주차장 뒤 산자락에 여러 기의 석상들이 모여 있다.

석상들은 웃손당 본향 백주또할망과 알손당 당신 소로소천국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열여덟과 딸 스물여덟이다.

송당 본향당의 당신은 백주또 여신이다. 백주또는 소로소천국과 결혼하여 아들 열여덟, 딸 스물여덟을 낳는다. 이 자손들이 제주도 각 마을로 흩어져 그 마을의 당신으로 들어앉는다. 송당 본향당의 당신을 제주도 각 마을 당신의 조상으로 여기며 '불휘공(태초의 뿌리)'이라고 부른다. 여기에 모여 있는 석상들은 웃손당 본향 백주또할망과 알손당 당신 소로소천국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딸들이다.


석상 옆 정자를 돌아 들어가면 둘레길이 시작된다. 길은 좌우 양쪽을 나뉘어 한 바퀴 돈다. 본향당은 진입로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우리는 왼쪽을 선택하여 5,60m쯤 떨어진 곳에서 당오름을 먼저 오른다. 키 큰 상록교목이 하늘을 가린다. 숲이 우거져 햇빛이 쨍쨍한 날인데도 어둑어둑하다.

둘레길

당오름(해발 274.1m, 비고 69m)은 나지막하고 규모도 작은 오름이다.

정상까지 10여분이면 오를 수 있지만 경사는 급하다. 그래서 길을 지그재그로 내놓았다. 낙엽을 밟으며 걷는 길은 편안하고 상쾌하다. 인적이 없어 고즈넉하다. 간혹 새소리가 들리다가 녹음하려니 그친다. 굼부리 능선에 올라도 나무에 가려 주변을 바라볼만한 곳이 없다. 정상이 어딘가 느끼기도 전에 바로 바닥에 내려선다. 다시 둘레길을 만난다. 안내판도 미흡하다. 안내판을 보고는 길 찾기가 쉽지 않다. 오른쪽으로 가면 본향당인데 걸은 거리가 짧아, 우리는 다시 시계침 도는 반대방향으로 둘레길을 돈다.

숲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햇빛을 받은 굴거리나무 새순

둘레길은 가까이 아부오름과도 연결된다. 적당한 햇빛과 그늘이 반복된다. 나무의 새순이 숲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햇빛을 받아 형광물질처럼 환하게 빛을 반사한다.


당오름은 짙은 상록수 숲으로 삼림욕을 할 수 있는 쾌적한 산책로를 갖추고 있음에도 송당리의 많은 오름 중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다. 낮은 고도, 짧은 거리와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장소가 없다는 점을 이유로 들 수 있다. 하지만 부실한 안내판이 더 큰 몫을 하고 있다.


다시 오름 입구로 돌아와 본향단으로 간다.

송당 본향당

송당 본향당(제주도 민속문화재 제9-1호).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산 199-1번지에 있는 무속신앙의 성소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흥망성쇠를 담당하는 토주관으로 여긴다.

송당 본향당(제주도 민속문화재 제9-1호)

당골(무당)들은 매해 당굿에 참여하여 마을의 무사 안녕과 풍년을 기원한다. 이 당의 당굿은 제주도 무형문화재다.

본향당 내 무단출입 및 무속행위 금지'라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제주도를 이해하고 제주의 속살을 체험하려면 신당을 답사하라 했는데, 제주도 민속자료로 지정된 대표적인 마을 신당인 송당 본향당에 들어서도 기대와는 달리 별 감흥이 없다. '본향당 내 무단출입 및 무속행위 금지'라는 펼침막만 방문객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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