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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동 Jun 25. 2023

환상의 숲, 시험림길

한라산 둘레길 6구간

한라산 둘레길 9개 구간 중 탐방계획을 잡기가 가장 힘든 구간이 시험림길이다. 시험림길의 일부는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내에 포함되고 있어서 산불조심 기간(11월 1일 ~ 12월 31일, 1월 1일 ~ 5월 15일)은 출입이 통제된다.

삼나무 숲

또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이승악탐방휴게소(3km)가 있는 서성로에서 시험림길 입출구까지 접근하는 방법이 있지만, 서성로에는 대중교통이 없다. 휴애리 자연생활공원까지 1.2km를 걸어야 겨우 지선버스 정류장이 있다. 하지만 배차시간이 1시간 이쪽저쪽이다.


사려니 쪽도 사정은 비슷하다. 시험림길 삼거리에서 붉은오름 입구(4.8km) 또는 사려니숲길 입구(5.2km)까지 더 걸어야 버스가 있다.

출처 : 한라산 둘레길(https://www.hallatrail.or.kr/)


들머리, 이승악 둘레길


직접 가보지 않은 길이니 걱정이 앞서기 마련이다. 우리는 이리저리 궁리를 하던 차에 마침 제주여행을 온 강 선생 부부의 도움을 받는다. 승용차로 바래다주어 이승악 주차장에서 탐방을 시작한다.

이승악 주차장

길섶에 노란 괭이밥과 청자색 등심붓꽃이 방긋 웃는다. 목장길이 끝나고 난대 활엽수가 우거진 이승악오름 둘레길로 들어선다. 파란 꽃을 단 소박한 산수국과 연두색이 살짝 비치는 흰색의 단아한 꽃을 피운 아왜나무가 우리의 탐방 길을 반긴다. 때죽나무, 상수리나무, 서어나무는 하늘을 가린다.

이승악 탐방길 입구

곧 (이승악 둘레길 2코스와 함께 화산탄, 숯가마를 거쳐 온) 수악길과 합류한다. 이승악 둘레길 안내판과 수악길 이정표가 섞여있어 다소 혼란이 생기지만 길 찾기는 어렵지 않다.

이승악오름 둘레길 안내도

임도를 따라간다. 때죽나무에 덩굴식물이 감아 오른 흔적이 선명하다. 숲 속에 공용 통신탑이 숨어있다. 이내 삼나무 숲으로 이어진다. 다시 이승악 제3코스 둘레길과 만난다. 수악길과 시험림길 입출입구를 알리는 표지판이 분명하진 않다. 여기까지가 수악길이고, 이어지는 길이 시험림길의 시작이다.

때죽나무 숲 속의 통신탑(위), 삼나무 숲(아래)

삼나무 사이로 난 매우 편안한 임도가 끝나는 지점에서 다시 삼거리를 만난다. 통나무로 만든 쉼터가 있다. 왼편은 야자 매트를 깔아놓은 오솔길이다. 군데군데 간벌한 삼나무가 늘여 있다.


비밀의 숲, 한남시험림


여기에도 시험림을 알리는 안내판이 서 있다. 시험림길 시작점이 조금 전 지나온 삼거리인지, 여긴 지 헷갈려서 쉬고 있는 사람에게 물어본다. 일부 사유지의 통행제한으로 예전의 시험림길이 변경되었는데 야자 매트가 깔린 여기부터는 새로 연결된 길이란다.

새로 조성된 시험림길의 시작이다.

시험림길을 새로 열면서 아직 안내 표지판을 정비하지 못한 것 같다. 아무튼 시험림길이 시작된다. 때죽나무와 어린 삼나무, 덩굴식물이 엉켜있다. 야자 매트 깔린 길과 돌길이 교대로 나타난다.

야자 매트 깔린 길과 돌길이 교대로 나타난다.

일제강점기 병참로(일명:하치마키도로)와 임도, 표고버섯 재배지를 활용하여 조성한 한라산 둘레길은 해발 600~800m 국유림 일대를 둘러싸고 있다. 산림의 역사, 생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숲길이다.

삼나무 숲 사이의 오솔길

그중 6구간인 시험림길은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에서 연구를 목적으로 운영 중인 한남시험림 안의 삼나무림, 편백림, 활엽수림 사이로 낸 특색이 있는 길이다. 길목마다 한남시험림으로 들어가는 삼거리가 나타난다. 뱀 조심하라는 붉은 글 경고판이 서 있다.

한남 시험림은 예약을 해야 들어갈 수 있다.

한남시험림은 한라산의 남동 사면 해발 300~750 m에 자리 잡고 있다. 시험림 지역 내에는 사려니오름(524m)과 거인악(529m), 마체악(427m), 넓거리오름(437m)이 솟아 있고 그 외는 대체로 평탄하다. 온대와 난대, 아열대의 기후 특성을 함께 가지고 있으며, 연 강수량은 3000mm 정도로 많은 편이다.

때죽나무

숲 속은 붉가시나무, 구실잣밤나무, 새덕이, 굴거리나무 등 상록활엽수와 서어나무, 졸참나무, 때죽나무, 종가시나무 등 낙엽활엽수가 함께 자란다. 삼나무 조림지도 곳곳에 남아 있다. 눈이 내린 듯 하얀 꽃을 이고 있는 때죽나무 밑에 떨어진 별 모양의 꽃잎이 장관이다.

차량이 교행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임도

임도는 차량이 교행할 수 있을 정도로 넓어진다. 작은 키의 참식나무도 고개를 내밀고, 백량금이 붉은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다. 잎의 끝이 뾰족한 대사초와 잡귀의 침입을 막는다는 음나무가 땅바닥을 덮고 있다. 정말 뱀이 나올 것 같다.

활엽수림 사이를 덮은 대사초


편백나무 채종원


양쪽에 파란 그물이 쳐져 있다. 고사리와 억새풀이 초원을 덮고 있다. 그물 안으로 핸드폰을 집어넣는다.

고사리와 억새풀로 덮인 초원

편백나무 채종원에 들어선다. 채종원(採種園), 처음부터 종자의 생산만을 목적으로 조성한 수목원이다.


"아~ ~",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편백나무가 아니다. 편백나무를 이렇게도 키울 수 있구나. 조성 연도 별로 구분하여 듬성듬성 심어져 있다. 다른 식물을 못 살게 하는 이기적인 편백나무도 아니다. 햇빛이 들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니 다양한 풀들이 더불어 자라고 있다.


말이 왜 필요한가. 사진으로 보자. 실제보다 묘사가 잘 되진 않았지만.

채종원의 편백나무

편백나무 열매가 청포도처럼 주렁주렁 달려서 익어간다.


다시 상록활엽수와 낙엽활엽수로 바뀌고, 암골이 울퉁불퉁 드러난 서중천 계곡이 시험림길을 넘어 흐른다. 물론 맑은 날은 건천이다.

서중천 계곡


시험림길의 하이라이트, 클론 보존원


하늘로 솟아오른 삼나무 군락 사이로 푸른 '하늘길'이 열린다. 포토존인 '하늘길'은 시험림길의 하이라이트이다.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는가. 노르웨이 숲이나 알프스 어디가 아닌지 혼동을 일으킬 정도로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클론보존원 삼나무 숲

피톤치드를 뿜어내는 숲 사이로 난 길은 숲 사이로 열린 푸른 하늘과 소실점에서 만난다. 소실점을 향해 걸어가는 여인의 모습은 삼나무가 그린 한 폭의 풍경화다. 각도를 달리하니 전혀 다른 그림이 그려진다.

소실점을 향해 걸어가는 여인

여태까지 비밀의 숲으로 알려졌던 곳이다. 개방되기 전에는 아는 사람만 몰래 숨어  들어왔던 곳을 이제는 당당히 들어와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시며 걷는다. 부산, 광주, 전남, 경북 등 광역시도명을 적은 명패가 삼나무 앞에 세워져 있다. 전국에서 가져온 삼나무 표본을 출신 지역별로 모아서 심어 놓았다.

클론 보존원 삼나무 숲

한남시험림 클론보존원(유전자원 보전원)은 임목의 신품종 및 개량종자 생산에 필요한 육종집단과 미래 산림 유전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조성되었다고 한다.

삼나무 열매

​클론은 '단일 세포 또는 개체로부터 무성 증식으로 생긴, 유전적으로 동일한 세포군, 또는 그런 개체군'을 말한다. 이곳(11ha)에 441 클론의 삼나무와 편백이 있다고 하니 그 규모가 놀랍다. 또 삼나무와 편백나무 밑에 큰천남성, 고사리, 왜모시풀이 자라고 있다.

울창한 활엽수림을 배경으로 펼쳐진 초원의 나무 의자

이제 시험림길 종점이 1.5km 정도 남았다. 다시 활엽수림이 이어진다. 서어나무와 섬개벚나무가 주 수종이다.


국내에서는 제주에만 제한적으로 분포하는 진귀한 섬개벚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섬개벚나무는 자원의 양이 희귀하다. 안정적인 군락구조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시험림은 천연갱신이 이루어지도록 자생지를 보호하고 있다.


시험림길 막바지에 잠시 돌길이 이어진다. 여기도 돌길은 잠깐이다.

서어나무, 섬개벚나무가 주 수종인 활엽수림과 돌길


대중교통에 맞춘 시험림길 재편성


길 양옆에 도열한 산수국과 산딸나무가 우리들의 6구간 완주를 축하한다. 시험림길 삼거리에서 한라산 둘레길 6구간은 끝난다. 산딸나무 좌우로 사려니 숲길이 이어진다. 버스 정류장까지는 어느쪽으로 가도 5km 정도 남았다.

시험림길 종점

교통편이 불편하여 접근하기 어려웠던 시험림길을 비교적 쉽게 걸었다. 힘든 숙제를 마친 기분이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방심은 금물이다. 멧돼지나 들개의 출몰을 경고하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야생동물 경고 펼침막

걷고 나니 감이 잡힌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시험림길을 탐방할 수 있도록 구간을 재편성해서 소개할 필요를 느낀다.


5.16 도로 한라산둘레길 정류장에서 버스(281번)를 하차하여 수악길을 따라 이승악 쪽으로 3.8 km를 더 가면 시험림길 입출구를 만난다. 시험림길(9.4 km) - 사려니숲길(4.8 또는 5.2 km) - 사려니숲길 입구 정류장(남조로 또는 비자림로)을 거치는 대충 18 km가 넘는 길이다. 다소 멀지만 길이 좋다. 임도로 이어지는 시험림길과 사려니숲길은 산길이라기보다 편안한 산책로에 가깝다. 크게 무리하지 않고 도전해 볼 만한 길이다. (2023. 6. 13)


버스 안내
시작점 : 제주 또는 서귀포 터미널에서 281번 탑승(배차간격 10 ~ 14분), 한라산둘레길 정류장에서 하차

종점 : 비자림로 사려니숲길 정류장에서 212, 222, 232번 탑승, 또는 남조로 사려니숲길 정류장에서 231, 232, 131, 132번 탑승(서귀포 방면은 516도로에서 281번 환승)


운동 시간 3시간 51분(총 시간 6시간)

걸은 거리 15.58km (공식 거리 : 9.4km, 진출입 거리 : 5.9km)

걸음 수 25,835

소모 열량 14,75kcal

평균 속도 4.0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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