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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동 Aug 28. 2023

'식물 군락의 개척자', 지의류

비 오는 날의 1100 고지 습지

갑자기 비가 내린다. 그냥 내리는 게 아니라 장대비가 내린다. 산의 날씨는 종잡을 수 없다. 한라산 1100 습지에서 비를 맞으며 걷는다. 싫지 않다. 빗물이 옷 속을 파고들어 찹찹하게 느껴지는 촉감이 오히려 상쾌하기까지 하다.


1100 고지 습지는 제주시와 서귀포시 중문동을 잇는 1100 도로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1100도로는 우리나라 국도 중 가장 높은 곳이며, 제주버스터미널과 중문 컨벤션 센터를 오가는 240번 버스가 이곳을 지나간다. 접근이 수월하여 한라산을 쉽게 조망할 수 있어 1100 고지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

한라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6㎞ 떨어진 산록에 불연속적으로 분포한 16개 이상의 산지습지가 있다. 서쪽에 삼형제오름, 동쪽에 윗세오름, 북쪽으로 붉은오름, 남쪽으로 도레오름 사이의 한라산 고원지대에 발달한 습지를 1100 고지 습지라 한다. 한라산의 서쪽 사면은 경사도가 8∼10° 정도로 경사면이 완만하다. 1100 고지 일대는 기복이 거의 없는 평탄한 지표면이 넓게 발달되어 물을 담기에 알맞은 지형조건을 추고 있다. 인근 사면에서 지중수의 흐름이 확인되었고, 제주도 지질 특성을 고려할 때 흔치 않은 지표수가 유로를 통해 흘러든다.

1100 습지 탐방로는 1100 도로에 인접해 있다. 한 바퀴 도는데 2, 30분이면 족하다. 나무 데크로  조성된 산책로는 아이들이나 노약자와 함께 기에도 좋다. 습지 생태계를 관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천이의 학습장으로 적합한 곳이다. 1100 고지의 고산 기후환경과 독특한 물 순환 환경에 의해 지의류 및 교목과 관목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지의류가 덮은 화산석이 저습지에 펼쳐진다.


지의류는 균류와 조류가 공생하는 독특한 생명체다. 균류는 조류를 싸서 보호하고 수분을 공급한다. 조류는 광합성을 하여 양분을 균류에 공급한다. 지의류는 일반적으로 나무껍질이나 바위에 붙어서 자란다. 열대, 온대, 사막, 남북극으로부터 고산 지대까지 극한적인 환경에서도 지의류는 살아간다.

균류나 조류도 생소한 말이다.


균류(菌類)는 광합성을 하지 않는 하등 식물이고 세균ㆍ조균ㆍ자낭균ㆍ담자균ㆍ변형균 등이 여기에 속한다. 좁혀보면 곰팡이ㆍ효모ㆍ버섯류를 가리킨다. 엽록소가 없어 독립적인 생활을 못하므로 더부살이를 다.


조류(藻類)는 하등 은화식물(隱花植物, 꽃을 피우지 않는 식물)의 한 종류이다. 물속에 살면서 엽록소로 광합성다. 뿌리, 줄기, 잎이 구별되지 않고 포자에 의하여 번식하고.


다시 지의류로 돌아간다. 균류나 조류가 단독으로는 살 수 없을 경우 서로 도우며 사는 공생체가 지의류. (균류나 조류의 독자 생존이 불가능한) 뜨겁고 건조한 사막이나 얼어붙은 극점에서도  지의류는 살아간다.

화산 분출로 흘러내린 용암 대지 위에 맨 처음 나타나는 생명체가 지의류이다. 지의류가 암석 표면을 파고들어 부스러기를 만들어 토양과 양분을 공급하면 이끼가 자랄 수 있는 환경이 다. 이끼가 뿌리를 내려 흙을 잡아주고 풀씨가 날아와서 한해살이풀, 두해살이풀 나아가 여러해살이풀이 자란다. 이렇게 생긴 초지에서 양수림, 혼합림, 음수림으로 천이가 이루어진다.


흙의 시작, 식물의 시작은 지의류에서 비롯되었으니 지의류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살아온 생명체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지의류를 '식물 군락의 개척자'라고 다.

바위 위에 페인트를 칠한 것처럼, 나무둥치에 부스럼딱지처럼 붙어 있는 작은 생명체가 조류와 균류의 공생체라는 사실을 밝혀내어 지의류의 존재를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사람은 스위스 식물학자 시벤테너라고 다. 지의류는 오염에 약하고, 환경으로부터 여러 물질을 축적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대기오염지표 생물로 활용하고 있다.


이곳 저습지의 지의류 군락은 1100 고지 습지의 자연환경이 건강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중요한 생물자원이다. 저습지에는 초지가 형성되어 있고, 산책 데크 주변은 양수림과 음수림이 키 경쟁을 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양수림인 소나무의 키가 우위를 차지한다. 하지만 덩굴식물이 빛을 찾아 소나무를 타고 오르고 음수림은 맹렬한 기세로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고 다. 혼합림이다.

습지에는 바위미나리아재비, 꽃창포, 자주땅귀개 등의 들꽃이 분포한다. 제주도롱뇽, 복방산개구리, 청개구리, 무당개구리, 유혈목이, 쇠살모사 등의 양서ㆍ파충류가 서식하고 있다. 노랑턱멧새, 흰눈썹황금새, 큰부리까마귀, 곤줄박이, 노루, 오소리도 함께 살아간다.


지리산오갈피, 한라물부추 등 여러 희귀 습지식물이 자생하고, 멸종 위기 야생동물인 매, 말똥가리, 조롱이가 관찰되는 등 생태학적 가치가 뛰어나 2009년에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하였다.  같은 해 람사르 습지로 등록되어 보호되고 있다.

자연 생태탐방로를 한 바퀴 더 다. 비는 계속 내린다. 비 내리는 습지의 풍광에서 눈꽃 못지않은 그림이 그려진다는 것을 오늘 처음으로 경험한다. 쏟아지는 장대비를 사진으로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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