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항 축항공사 이전에는 지금의 도시철도 1호선이 지나는 구덕로는 바다였다. 그 위쪽에 자갈치라는 경사진 해안이 펼쳐져 있었다. 초량왜관 서남쪽에 자갈치로 나가는 수문(水門)이 있었다. 무상문(無常門) 또는 부정문(不淨門)이라고도 하었다. 왜관의 일본인이 사망하면 그 시체를 이 문을 통하여 옮겼다.
일제강점기 부산을 중심으로 동남해 일대에 수많은 어장이 있었다. 중심 어항이 필요했다. 남항을 매축하여 전용 어항으로 만들려고 남부민동 방파제를 먼저 쌓는다. 1930년에 시작하여 1940년까지 남포동, 충무동 일대의 해수면을 매립한다. 남항 매축으로 지금 부산도시철도 1호선이 지나가는 구덕로가 생긴다. 송도 가는 남부민동 아랫길 충무대로도 이때 개통된다. 이로서 남항은 어업 전진기지인 어항이 되고 북항은 전담 무역항이 된다.
자갈치시장은 남포동 남항의 바닷가에 있는 부산의 대표적인 어패류 종합 시장이다. 1922년 어협 위탁 판매장이 개장되면서 보수천 하구의 자갈마당에 시장이 선다. 자갈치 시장이다.
자갈치시장
오래된 이야기다. 서울에 사는 친구 부부가 아이들을 데리고 부산에 여행을 왔다. 점심 먹으러 횟집을 갔으면 했다. 부산에 왔으니까. 지금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철마 산길을 넘어 좌천 해변가 동백횟집을 갔다.
내 나름대로는 고심 끝에 선택했던 카드였다. 한적한 교외인 데다 아이들이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놀기도 하고, 내무부장관을 지낸, 한 시대를 풍미한 김현옥이 좌천 어느 시골 중학교 교장으로 있으면서 자주 들른다고 이름이 났던 집이었는데. 서울 토박인 친구 부인은 실망한 눈치였다. 자갈치를 가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외지 사람의 마음을 잘 못 읽은 실수였다. 부산의 상징은 자갈치다.
롯데 자이언츠 야구 선수 중에 '자갈치'라고 불리는 프랜차이즈 스타가 있었다. 타격 순서를 기다리며 더그아웃에 있을 때나 내야 수비를 할 때나 심지어 코치가 되어 주루코치로 나가서도 계속 떠들어댄다. 쉬지 않고 떠들어댄다. 입담도 보통을 넘는다. 그래서 별명이 '자갈치'다.
자갈치 시장은 떠들썩하다. 위판장도 떠들썩하다. 사람 사는 맛이 난다. 난전은 더 떠들썩하다. 2007년 갈매기를 형상화한 현대식 자갈치 시장 건물이 들어섰는데도 아내는 난장을 선호한다.
자갈치 시장에는 어시장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갈치시장 입구부터 노선버스가 다니는 자갈치로를 따라 군용 물품과 청바지를 파는 가게가 모여 있었다. 해방 후 70년대까지는 고등학생들이 미군복 바지를 검은색으로 물을 들여 교복 대신 입고, 똥구두라 부르던 미군 군화를 신고 다녔다. 미군 야전 점퍼도 물들여 입었다. 그게 멋이었다. 군복, 군화를 이곳에서 샀다.
그뿐만 아니다. 버너, 우의, 야전삽, 천막, 배낭, 나침반 등 군용 물품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과장된 이야기로 권총도 구할 수 있다고 할 정도였다. 국산 등산장비가 보잘것없던 시절이라 이곳에서 구입한 군용 장비는 등산용품으로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80년대 국산 레저용품이 나오기 전까지 웬만한 산악인도 군용 장비를 사용했다.
옛 동명극장 터(왼쪽), 옛 청바지 골목(오른쪽)
국산 의류의 품질이 좋지 않을 때라 미제 청바지가 인기였다. 아마 밀수품이었을 것이다. 켄톤, 쌍마, Lee 상표가 붙은 고급품은 여기서 구매했다. 지금은 서너 집이 남아 있다. 품목도 위생복, 안전복, 단체 작업복, 안전장비 등으로 바뀌었다.
그 들머리,남포동 버스정류소에서 부산종합관광안내소 앞의 '삼성 디지털 플라자'건물을 바라본다. 6,70년대 외화 전용관으로 현대극장과 함께 명성을 떨쳤던 동명극장이 있던 자리다. 스티브 맥퀸과 더스틴 호프먼이 출연한 <빠삐용>을 이 극장에서 봤다.
자갈치시장 동쪽 끝으로 간다. 건어물 도매시장과 생약 건재상, 선구상이 밀집해 있다.
건어물 도매시장으로 들어선다. 마른 멸치, 오징어, 문어, 새우, 조개, 각종 어포, 김, 미역, 파래 등 건어물과 건해산물과 밤, 대추, 곶감, 땅콩 등 건과가 진열되어 있다. 건어물 시장에 오면 이것저것 사고 싶어 진다. 아내는 다시마, 김, 마른 멸치, 어포를 산다.
건어물 도매시장(위), 생약 건재상 거리(아래)
영도 다리목 생약 건재상 거리에는 30여 곳의 생약 건재상이 예전만 못해도 전국적 상권을 유지하고 있다. 수삼(水蔘), 건삼(乾蔘), 녹용, 녹각, 부자(附子), 감초, 토종꿀, 말발굽, 편자, 말뼈, 전갈, 개구리, 너구리, 산토끼, 두꺼비, 자라 등 취급 약재가 다양하다.
남양어망, 경희어망, 삼해공업 등 대형 어망 회사의 대리점이 나와 있던 곳이다. 지금도 수십 곳의 어망, 어구, 선구 관련 점포들이 모여 있다. 활기가 옛날만 못하다. 퇴조의 기미가 완연하다.
이곳은 적산 건축물이 모여 있는 곳이다. 아직도 일제강점기의 건물들이 점포로 이용되고 있다. 구덕로 쪽 큰 도로변에는 옛 건물을 헐고 빌딩이 들어서기도 했지만 비교적 근대 건축물이 많이 남은 지역이다.
적산가옥
한 건물에 네 가구가 들어와 살고 있다. 산나물 상회, 국숫집, 슈퍼, 약재상으로 업종도 각각 다르다. 창틀이 변형되어 집집마다 조금씩 다른 것이 인상적이다.아마 건물 주인이 각각 다를 것으로 추정해 본다. 가덕도 외양포의 적산가옥과 같이.
제분소를 지나서 다시 자갈치 연안으로 나오니정면에 '조위관측소'가 보인다. 바닷물의 높이(조위)를 측정하는 국가해양관측시설이다. 여기서 조위, 수온, 염분, 기압, 기온, 바람 등을 관측한다. 해양관측정보는 조석(물때) 예보, 해수면 상승 감시, 항해 안전, 해양레저 등에 활용된다.
그 옆에 빨간색의 '웃음등대'도 세워져 있다. 남항의 여유로운 매력과 시민의 희로애락을 표현하였다고 안내판은 설명한다.
조위관측소
영도다리 밑 점바치골목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밀려든 피란민은 피란길에 헤어진 혈육을 찾기 위해 영도다리로 몰린다. 다리 난간에 붙은 수많은 가족 찾는 쪽지를 읽는다. 자신이 붙인 쪽지에 다녀간 흔적이 있는지, 자신을 찾는 쪽지가 있는지 몇 번이고 살핀다.
"영도 다리 거~서 꼭 만나재이~"
전국에서 몰려온 피란민의 약속 장소로 이용되면서 전쟁의 아픔과 만남의 장소라는 이미지가 겹쳐져 있는 영도다리. 시계가 귀하던 시절, 혹시 흩어지거든 영도다리 들 때 다리 앞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한다.
실향민 가족들이 보따리를 이고 들고 서 있는 모습의 조형물이 탐방객을 반긴다.
유라리광장
남포동 건어물시장과 영도대교 사이에 영도다리 드는 장면을 모여서 볼 수 있는 광장과 쉼터를 만들어 놓았다. 자갈치 연안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조성한 '유라리 광장'이다. 유럽의 '유', 아시아의 '라', 사람과 마을이 모여 즐긴다는 '리'의 조합으로 유럽과 아시아인이 함께 어울리는 장소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유라리 광장은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7번 국도의 출발점이자 종점이다.
영도다리 밑에는 잃어버린 가족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로 찾아온 사람들의 답답한 사연을 들어주는 점바치집이 늘어났다. 애끊는 심정으로 가족의 생사를 알아보려는 실향민과 이들과의 상담으로 먹고사는 점쟁이들이 공생하던 공간, 영도다리 점바치골목.
2013년 영도대교가 다시 들고, 연안이 정비되었다. 이때 서민들의 애환이 쌓인 점집은 '점바치 골목 기록관'에 옛 흔적만 남기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옛 시청 뒤에는 또 하나의 명물 거리가 있었다. 영도다리가 생기기 전에 영도 봉래동 선착장으로 오가던 배가 대던 선착장이 있던 곳에 꼼장어집이 모여 있었다. 선착장이 없어진 후에도 점쟁이와 상담하러 오던 사람들과 시청, 경찰청 직원들이 많이 드나들던 곳이다. 이 꼼장어 골목도 공유수면 매립으로 사라졌다.
점바치 골목 기록관에 전시된 영도다리 밑 점집 풍경. ( 출처: 디지털부산역사문화대전)
옛 부산시청을 바라보며
영도대교로 올라가는 계단 옆, 허름한 목조 건물이 창고로 사용되고 있다. '소문난 대구점집' 자리다. 이 건물이 혹시 그 당시 점집이 아닌가 하고 사진을 찍다 보니 뒤로 롯데쇼핑몰 건물이 보인다.
초량왜관의 동남쪽에 해당하는 곳이다. 이곳에 용미산이 있었다. 일제는 용두산에서 맥이 이어진 용미산을 깎아 평지로 만들었다. 그 자리에 부산부청(釜山府廳)이 들어섰고, 뒤에 부산시청이 되었다. 시청은 1996년 연제구로 옮기고 지금은 롯데백화점 광복점이 들어서 있다.
옛 부산시청 자리에 들어선 롯데백화점. 롯데쇼핑은 호텔·전망대 등 부산롯데타워를 건립할 예정으로 주변 공유수면 매립 허가까지 받았다. 핵심 시설인 롯데타워는 빼고 백화점 등 3개 동만 지은 후 임시사용 승인을 받아 영업을 하면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용도변경 요청을 하고 있다.
허가 초기부터 '부산의 랜드마크다', '재벌 특혜다'는 상반된 논란이 일어났다. 부산롯데타워 건립 사업이 실현될 듯 말 듯, 20년 넘게 삽질만 하고 있다. 원도심의 상권을 활성화시킬 것을 기대하던 주변 상인들은 실망을 너머 분노한다. 기대와 함께 골목상권을 초토화시키고 교통체증만 유발한다는 비판을 동시에 한다.
최근 롯데쇼핑이 새로운 조감도와 함께 롯데타워 공사 재개 계획서를 부산시에 제출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역 상인들의 관심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제는 실제로 공사 속도를 낼는지.
옛 소문난 대구점집 터의 허름한 창고 건물 뒤로 롯데쇼핑몰이 보인다.
개발과 보존의 상반된 가치가 대립되는 원도심을 지나왔다. 근대건축물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는 지역이지만 밀도는 낮다. 보존과 개발의 가치를 놓고 고민이 많은 곳이다.
도시의 재생을 위해서는 '도시의 기억'이 필수적인 요소다. 전통과 창조가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새로움이 탄생되기 때문이다. 공존의 묘수를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