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섬을 기준으로 한경면은 제주시에 하나뿐인 면 지역이다. 오지 마을인 한경면 저지리에서 고랭지 작물이 자라고 있는 밭 사이를 걸으며 출발한다. 곶자왈 못지않게 무성한 숲길, 하천가의 푹신한 잔디밭 길을 지나 바닷가로 내려간다. 마을 길, 나무 덱 산책로, 울퉁불퉁한 자갈길과 선인장이 한데 어우러진 올레길은 들꽃의 향연이 펼쳐지는 해변으로 이어진다. 아름다운 섬 비양도는 한림항에 도착할 때까지 길동무가 된다.
저지문화예술인마을
제주도에서 대표적인 중산간 오지 마을인 저지마을이 제주도의 생태환경을 잘 간직한 문화예술인 마을로 새로 태어났다. 저지오름을 가꾸고 저지곶자왈을 자연 원시림으로 보존하면서 전국의 유명한 예술인이 모여 작품을 생산하는 문화 예술인촌이 형성돼 있는 곳이다.
마을 발전을 이루고자 하는 주민들의 열망이 2012년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선정으로 이어졌다.
저지마을은 어제에 이어 두 번째 방문한다. 820-2번 순환버스를 타고 왔다. 동승한 관광 안내사가 주변 관광지를 잘 설명한다. 저지문화예술인마을은 사진작가와 화가, 조각가, 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들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으로 자연과 어우러져 여유를 가지고 관람을 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 예술 공간이다. 마주 보는 곳에 방림원이 있다. 숲에 대한 생각이 판이하게 다른 '환상의 숲, 곶자왈'과 '생각하는 정원'도 마주 보고 있다. 산책로가 잘 조성된 '산양 곶자왈'도 근처에 있다.
저지곶자왈과 문도지오름을 지나는 올레 14-1코스의 출발점도 이곳이다. 저지마을에 두 번 더 방문할 예정이다.
올레공식안내센터 뒤편, 370년 묵은 팽나무가 서 있는 곳에서 저지오름을 왼쪽 어깨너머로 두고 올레 14길이 시작된다. 저지오름이란 이름은 마을 이름이 '닥몰'에서 저지로 되면서 불리게 되었다. 저지오름은 새(띠)로 덮여있던 초지였는데 마을 주민들의 노력으로 꾸준히 나무를 가꾸어 오늘의 울창한 숲이 조성되었다. 2005년 생명의 숲으로 지정되었다.
밭담길. 오른쪽으로는 제주지역 특유의 밭담길이 이어진다. 밀감 밭과 돌담, 그 뒤로 야자수 숲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들판과 숲이 이어지는 저지고망숲길을 지난다. 농로를 지나는데 들판의 중간중간에 이어지는 숲이 곶자왈 못지않다.
높은 키를 자랑하듯 언덕 위에 올라서서 자라는 멀구슬나무를 칡넝쿨이 감아 오른다. 나무 전체를 뒤덮고 있다. 매 두 마리가 마주 보고 앉아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멀구슬나무는 칡넝쿨이 귀찮기도 하겠다. 넝쿨이 덮으면 멀구슬나무는 죽는다. 하지만 더 높이 가지를 뻗어 살 궁리를 한다. 그러면서 칡넝쿨을 이용한다. 칡넝쿨은 사람이나 짐승의 손발이 닿는 것도 막아주고 바람도 막아준다. 서로 도우며 살아간다.
잃어버린 마을 하늬골에서 오는 용금로를 잠시 만난 올레는 나눔허브제약이 있는 길로 이어진다. 나눔허브 건너편 들 한가운데 그린페블이라는 카페가 있다. 발효차 석창포와 수제 초콜릿을 대표 상품으로 쉼터를 만들어 놓았다.
야자수와 돌담이 어우러진 제주스러운 화면을 연출하는 오래된 텔레비전 영상을 한 포토존이 눈길을 끈다.
아름다운 이름의 작은 숲길과 밭담길을 걷는다.
큰 소나무가 많은 ‘큰소낭 숲길'을 지난다. 작은 숲을 지나면 밭길이 나오고, 밭길을 지나면 이내 또 작은 숲길을 만난다. 이번엔 시멘트 농로로 이어진다. 길옆의 숲 속에서 뱀 한 마리가 어슬렁 어슬렁 기어 나와 우리 앞을 가로지른다.
뱀이 지나간다.
현무암으로 감싸인 밭에는 옥수수가 자라고 있다. 아직 키가 나지막하다. 뒤로 풍차 해안과 오름들이 둘러서 있다.
들판에 농지를 밀고 설치한 태양광 발전설비가 여기에도 있다. 원자력 발전의 위험성이나 화석연료의 환경재해를 생각하면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점차 늘여가는 것은 옳은 방향이다. 하지만 원전 예찬 논자들의 천박한 자본 논리가 재생에너지 분야에도 침투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태양광 발전 시설을 농지에 설치하는 것은 또 다른 환경문제나 식량문제를 일으키는 요인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한경면 중산간지역에는 감자, 기장, 마늘, 양파, 양배추, 메밀 등의 농작물을 많이 재배한다. 메밀과 기장이 자라고 있다. 초록의 들판이 천연 잔디 축구장을 연상케 한다. 개화기가 되면 하얀 메밀꽃이 장관을 이루겠다.
오사록 농로를 지나간다. 제주어인 오사록헌은 제주어로 '아늑하다'라는 말이다. 제주 들녘을 걷는 느낌이 아늑해서 부르기에도 시어처럼 아름다운 이름을 지었다 한다. 길 폭도 일정하지 않고 길옆은 키가 작은 관목과 덩굴식물이 벽을 치고 있다. 길바닥은 폭신한 풀밭과 부드러운 흙이다.
굴렁진 숲길. 밭길과 작은 숲길이 번갈아 나타난다. 움푹 파인 지형을 제주어로 '굴렁지다'고 한다. ‘굴렁진 숲길’도 지난다. 크고 작은 화산석이 울퉁불퉁 튀어나오고, 돌이 빠진 자리가 움푹 파인 제주도 산길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숲길이다. 제주 토속어로 이름 지으니 제주다움이 한층 더해진다.
나지막한 초원에 구부러져 난 길을 넘어서니 개양귀비가 요염하게 핀 농가가 있다.
개양귀비의 빨간색과 진분홍색 꽃은 줄기 끝에 1개씩 위를 향해 당당하게 얼굴을 내민다.
어, 양귀비는 마약인데 함부로 재배할 수 있나?
개양귀비. 유럽, 시베리아가 원산지인 양귀비과의 한해 또는 두해살이풀이다. 꽃말은 '위로, 망각, 연민'이다.
양귀비는 당나라 현종의 황후이며 당대 최고의 미인이었던 양귀비에 비길 만큼 꽃이 아름답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개양귀비의 별명이 '애기아편'인 점에서 짐작되듯이 마약성분인 모르핀, 파파베린, 코데인 등이 미량이어서 자유롭게 재배할 수 있다.
무명천 산책길. 굴렁진숲길, 환경시설관리사무소, 월령숲길을 지나니 작은 하천을 만난다. 제주올레는 하천의 오른쪽에서 시작하여 왼쪽, 오른쪽을 번갈아가며 무명천 산책길을 따라 해안으로 내려간다. 산책길는 쾌적한 환경이다. 폭신한 잔디가 발바닥의 피로를 풀어준다. 주변 숲 속에 산딸기가 빨갛게 익어간다.
제주올레는 천변 산책길을 잠시 벗어나 제주연세선교센터 쪽으로 우회한다. 백화등의 노란 꽃이 선교센터 담장을 뒤덮고 있다.
백화등. 원산지가 한국, 일본이다. 우리나라 남부 지방 숲속에서 많이 자란다. 협죽도과 / 마삭줄속으로 분류되는 상록 활엽 덩굴나무다. 꽃말은 '하얀 웃음'
백화등. 백화동(북한), 백화등(白花藤), 백화마삭덩굴, 백화마삭줄 등의 다른 이름을 가진 백화등이 '하얀 웃음'을 웃으며 담장을 덮고 있다. 정확히는 노란 웃음이다. 처음 흰색이던 꽃이 점차 노란색으로 변하여 멀리서 보면 마치 인동덩굴처럼 보인다.
백화등 뒤로 구슬잣밤나무가 뭉게구름처럼 뭉게뭉게 가지를 벌리고 큰 키를 자랑한다.
무명천 할머니를 추모한다.
작은 숲을 지나 하천 옆 산책길로 합류한다. 지도에도 하천 이름이 없다. 무명천 산책길. 이름 없는 하천이라 무명천이란 설도 있고, 무명천 할머니 추모의 길이라 무명천이란 설도 있다. 무엇이 먼저이든지 ‘무명천’이라는 이름에는 무명천 할머니의 가슴 아픈 사연이 스며있다.
월령 선인장 마을. 올레는 또다시 하천의 좌우로 다리를 넘어 넘나 든다. 어느새 해변이 눈앞으로 다가오고, 선인장 농장이 이어진다.
월령 삼거리에서 일주서로를 건넌다. 월령리 마을에 들어서니 밭과 들, 가정집 마당과 울타리가 온통 선인장으로 뒤덮였다. 또 크고 작은 백년초 가공업체들, 직거래 판매장도 보인다. 펜션 이름도 월령선인장이다.
월령리 복지회관을 지나간다. 마을소식을 알리는 스피커가 회관 앞 전봇대에 달려있다. 담쟁이덩굴이 자신의 꽃말처럼 '성실'하게 전봇대를 타고 오른다. 거의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전선도 타고 간다.
무명천 할머니 삶터
올레14과 함께 가는 무명천 산책길을 따라 ‘무명천 할머니 삶터'를 찾아간다. 월령리 복지회관 근처의 초록색 지붕의 자그마한 집 앞에 선다. 할머니가 살았던 안식터이다.
고 진영아 할머니는 4·3 당시(1949년 1월 12일) 토벌대의 총탄에 맞아 아래턱을 잃는다. 목숨은 건졌지만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닌 외롭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55년을 살았다. 턱이 없는 흉한 모습을 가리려 늘 무명천으로 얼굴을 감싸고 살았던 '진영아' 할머니. 사람들은 '무명천 할머니'라 불렀다. 할머니의 턱과 머리를 감싼 무명천은 4·3 피해자의 상징이 되었다.
'사단법인 무명천 진아영 할머니 삶터 보존회'는 할머니가 생전에 살던 집에 추모공간을 마련했다. 보존회는 잊지 않고 기억하는 공간으로 옛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려 한다. 추모객에게 야단스럽지 않게 추모할 수 있도록 당부한다.
방으로 들어서니 고 진아영 할머니 영정 앞에 국화꽃이 놓여 있다. 추모곡 악보와 다녀간 이들이 남긴 편지가 탁자 위에 놓여 있다. 할머니 드시라고 놓고 간 식혜와 꿀 홍삼, 꿀 매실, 밀감, 과자들도 보인다.
생전에 쓰시던 주방도구와 옷가지, 침구류 등 세간살이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젊었을 때 모습을 포함한 사진 액자가 여러 개 벽에 걸려 있다. 달력은 2001년 1월에 멈추어 있다.
대통령이 사과하고 피해 보상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죽음보다 못한 고통스러운 삶을 살다 간 무명천 할머니의 영혼을 어떻게 달랠 수 있는가. 진상 규명에 한계가 있다. 4.3의 성격도 제대로 규명되지 않아서 그냥 4.3이라 한다. 4.3 사건, 사태, 항쟁, 민주화운동 등으로 각기 다른 명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 규명된 진상만으로도 350여 명의 무장대를 토벌하기 위해 2~3만 명의 양민이 희생된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4.3 학살이다.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부정하는 사이에 지금도 4.3은 진행되고 있다. 국가폭력은 합법으로 위장하여 계속되고 있다. 캄보디아 킬링필드가 브라질의 세차작전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4.3의 야만성을 끝까지 기억하자.
이젠 4.3을 '4.3 학살'이라 말하자.
옆집의 카페에서 쉬어간다. '저지마을에서 한림항까지(하)'에서 14코스 이야기를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