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릉도원면은 강의 고장이면서 더불어 산의 고장이다. 산이 깊어 아름다운 계곡과 강이 있다. 구룡산, 되불데기산, 구봉대산, 사자산, 백덕산 등 험준한 산이 즐비하다. 요선정에서 주천강 본류를 왼쪽으로 두고, 지류인 법흥천을 따라 승용차로 10여 km를 거슬러 올라간다.
계곡 곳곳에 캠프장과 펜션이 이어진다. 법흥리에서 들이 가장 넓은 광대평, 물고기가 물결을 희롱하며 논다는 유어농파(遊魚弄波)의 명당이 있다는 응어터를 지나면 법흥천 줄기는 거의 직선으로 심심산골을 파고든다.
흥령교에서 본 사자산 솔숲
사자교에서 흥원사 가는 길과 법흥사 가는 길을 따라 법흥천은 나누어진다. 우리는 구봉산장 휴게소 삼거리에서 왼쪽 길을 선택하여 법흥사 일주문을 지나간다. 구봉산장은 순대국과 선지해장국, 토종 한방백숙 등의 메뉴를 내놓고 백덕산, 구봉대산 등산객들과 백년계곡 피서객들의 입맛을 돋군다.
법흥리 사과밭
홍옥(紅玉)이 빨갛게 익어가는 사과밭 사잇길로 지나간다. 홍옥은 19세기 초반 미국에서 들어온 품종으로 국광과 함께 당시의 대표적인 사과 품종이었다. 과수원에는 '추억의 사과, 홍옥'이라 선전 문구를 써놓은 간판이 걸려 있다. '사재산 토종꿀'도 보인다.
사자산문 흥녕선원, 법흥사
법흥사 주차장 솔숲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이 근처를 일컬어 “치악산 동북쪽에 위치한 사자산은 계곡이 30리에 걸쳐 뻗쳐 있으며, 주천강의 근원이 되는 곳이다. 남쪽에 있는 도화동과 무릉동은 계곡의 경치가 뛰어나서 매우 아름답다. 이곳은 복지(福地)라 할 만하니 참으로 속세를 피해서 살 만한 땅이다”라고 하였다.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과 횡성군 안흥면이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사자산(1,181m)은 꿀과 산삼, 옻나무, 흰 진흙 등의 네 가지 재화가 있다 하여 사재산(四財山)이라 불리었다고 한다. 훤칠하게 솟은 날씬한 소나무로 둘러싸인 사자산 숲속에 법흥사가 앉아 있다.선덕여왕 12년(643),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지은 절이다. 창건 당시의 절 이름은 흥녕사였다.
법흥사 극락전
흥녕사는 달마대사의 선법을 받아 와 그 문풍을 지켜 온 사자산문 흥녕선원으로 그 시기의 불교가 이 땅에 뿌리내리게 하는 중추적 역할을 한 아홉 개의 중심 수행 도량인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한 곳이다. 사자산문의 개창조는 징효대사 절중이고, 법통은 화순 쌍봉사 철감국사 도윤으로 이어졌다.
징효대사 부도와 탑비
법흥사에 들어서면 개창조 징효대사의 부도와 탑비를 먼저 만난다. 절 뒤쪽이 아니라 극락전 옆의 절 입구에 부도가 모셔져 있는 것이 특이하다.
징효대사 탑비(보물 제612호)
징효대사 탑비는 거북 모양의 받침 위에 비석을 세우고 용머리 지붕돌이 얹어있다. 돌거북 받침은 입에 여의주를 물고 눈을 부릅뜨고 이어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용머리 지붕돌도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어 안내문은 '전체적으로 섬세하면서도 웅건한 느낌을 준다'라고 평가한다.
비문은 최언위가 짓고, 최윤이 쓰고, 최환규가 새겼다. 내용은 징효대사의 행적과 신라 효공왕이 징효대사라는 시호와 보인(寶印)이라는 탑명을 내린 것을 적고 있다.
징효대사 부도(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2호)
징효대사 부도는 팔각당 형식으로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로 이루어져 있다. 탑신의 앞뒤 양면에는 자물쇠가 달린 문짝의 감실(龕室)이 새겨져 있다. 부도 지붕의 추녀마루 끝에 꽃무늬를 새긴 귀꽃이 날듯이 솟아 있다. 탑비와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소나무 숲이 아름다운 절
징효대사 부도와 탑비 오른쪽, 비탈길을 올라간다. 법흥사가 자랑하는 소나무 숲길이다. 늘씬한 키의 줄기에 붉은빛이 나는 소나무 숲이 있다. 주차장 안내판에 '소나무 숲이 아름다운 절'이란 문구와 함께 적힌 고려 말기 고승 나옹선사의 시구가 실감 나는 길이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명월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욕심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바람같이 구름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나옹선사>
적멸보궁가는 소나무 숲길
적멸보궁 가는 길이다.
소나무 숲 한가운데로 길이 나 있고, 비탈길 오른쪽은 단풍나무, 상수리나무, 서어나무, 물푸레나무 등의 낙엽 활엽 교목이 소나무와 함께 자라고 있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아름드리 소나무 숲길은 300m나 이어진다. 선원 우측의 우물을 지나서 오솔길을 휘어 오르면 사자산을 엎고 있는 적멸보궁에 닿는다.
선원 우측의 우물을 지나서 오솔길을 휘어 오르면 사자산을 엎고 있는 적멸보궁에 닿는다
법흥사 적멸보궁
법흥사 창건 당시 자장율사는 당나라에서 모셔온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를 이곳과 양산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태백산 정암사 등 5개 사찰에 나누어 봉안하였다. 이 다섯 곳을 우리나라의 '진신사리 5대 봉안처'라 하는데 그중 한 곳이 법흥사다.
사자산 법흥사 적멸보궁
적멸보궁은 석가모니불의 사리를 봉안한 사찰 건물을 말한다. 적멸은 모든 번뇌가 남김없이 소멸되어 고요해진 열반의 상태를 말하고, 보궁은 보배같이 귀한 궁전이라는 뜻이다. 모든 적멸보궁에는 불상을 모시지 않는다. 대신 뒤쪽의 진신사리 봉안처를 향해 문을 열어둔다.
정면 3칸, 측면 2칸에 팔작지붕을 얹은 이곳의 적멸보궁 안에도 불상이 모셔져 있지 않고 유리창 너머로 석분과 부도가 보인다. 그러나 이 부도와 석분이 자장율사가 봉안했다는 진신사리처는 아니라는 안내문을 보고 적이 실망한다.
법흥사 석분(좌, 강원도 문화재 제109호), 법흥사 부도(우, 강원도 문화재 제73호)
안내문에 의하면 석분은 고려 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돌방은 흙을 봉긋하게 덮어 무덤과 같이 생겼으며, 안쪽은 스님이 도를 닦던 곳으로 보이는 돌방과 고승의 유골을 모셨던 것으로 보이는 돌널이 있었다고 한다.
옆에 징효대사의 부도를 닮은 부도가 서 있다. 어느 큰 스님의 사리탑인 것으로 보이나, 누구의 부도인지 알려져 있지 않다. 왜 여기에 서 있는지도 알려진 바 없다.
자장율사는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봉안하면서 영원한 보존을 위해 사자산 어딘가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겨두었다고 하니 신비감이 한층 더 높아진다. 실제로 적멸보궁 뒤편 사자산 자락에이따금 영롱한 빛의 무지개가 서린다고 하며, 이 고장 사람들은 그곳이 진신사리 봉안처라고 믿고 있다고 한다.
이 전설을 생각하며 언덕을 올려다본다. 햇빛을 받은 소나무 줄기의 불그스름한 빛이 그윽한 풍경소리와 어우러져 신령스러움을 더 한다. (2022. 9.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