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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의 눈

by 이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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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시나브로 물러가더니 물상들이 가까이 다가오는


또 하루의 시간이 시작된다


지난 시간들이 어떠했을지라도 기이하게도 시작하는 시간은 설렘이 있다


오늘 아침도 마찬가지다


예보는 예보로 그치는 날씨를 보면서도 사람들의 일이란 이렇게


까막눈을 지니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비가 온다고 했는데 해가 찬란하게 뜬다


말릴 것이 있어 햇살에 그것을 내어 놓는다


놀람과 광기의 시간으로 지낸 어제의 일들도 아침엔 이슬에 씻기듯


말갛게 지워져 지난 시간이 되고 있다


물론 그 흔적이 묻혀 사람들의 오늘 못이 더럽혀지고 있지만


마음에서만큼은 잊히는 하루를 만들고 있는 듯하다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라고 어느 시인이 노래했듯


경이로운 생각으로 행한 무의미한 일들이 만들어 내는


흘러 다니는 의식은 많은 이지러진 소문과 그것으로 나타나는


불안의 그림자를 만든다. 그 그림자로 인해 어떤 땅을 피폐하게 되고


그곳의 사람들은 아픔과 고통으로 살게도 된다


마트에 생필품의 진열장이 비어가는 것을 보면서


이기와 독선이 얼마나 사람들의 생활이 되고 있는가도 본다


오늘 아침, 그 모든 것을 씻으면서 맑은 해가 떠오른다


저 해가 오늘은 공의의 빛처럼 모든 이의 가슴에 비치길 기원해 본다


오랜만에 잡힌 글씨가 책임과 화해를 마음에 담는다


차가운 하늘에 빛나는 낮달만큼이나 비워진 마음으로


타인의 가슴이 되는 삶이 되어야 한다고 새김질해 보면서


아침 풀잎에 앉는 이슬을 하염없이 들여다본다


이슬은 아가의 눈동자를 닮아 있다


우리의 삶도 아가의 눈동자 속에 머물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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