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기상청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곤혹스러울 듯하다. 구름이란 것이 막아주는 존재가 없이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측량하기가 많은 장애물이 있는 곳보다 쉽지는 않는 모양새다. 예측이 빗나가는 것을 너무도 많이 본다. 그래서 흔히 날씨를 중계한다는 표현도 하는 듯하다.
요즘 일기를 많이 검색하고 듣는다. 나날이 일기에 영향을 받는 생활을 하다 보니 그렇다. 어젯밤에는 분명히 장마라는 얘기를 하면서 오늘 아침 6시부터 비가 내린다고 했다. 아침 여섯시에는 9시부터 내린다고 정정이 되었다. 9시에는 또 10시 정도부터라는 예보가 뜬다. 10시가 가까워져 가는 지금, 하늘은 온통 구름으로 덮여 있다. 하지만 비라 내리지 않고 있다. 이렇게 언제까지 갈는지 모르겠다. 예보대로 한다면 지금은 빗방울이라도 형태를 보여야 한다.
전체적으로 예보가 틀리는 경우는 적다. 비가 온다면 오기는 온다. 하지만 그 시간대가 정확하지 않다. 어려운 모양이다. 우산을 가지고 나가는 나들이가 무게감을 가지고 다가온다. 분명히 우산이 필요 없는 시간을 달리고 있는데, 내 손에는 우산이 들려 있다. 손에 물건을 하나 든다는 게 얼마나 거추장스러운 것인지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잘 보른다. 그것이 불필요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내 손에서 우산은 정처를 잃고 있다. 비는 아직도 내리지 않고 걸음은 가벼운 사람들의 생활을 마주한다. 비를 좀 맞더라도 손에 든 것을 놓고 싶은 마음이다. 예보가 조금 더 정확했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은 내 사치일까? 하늘을 한 번 보고 거리를 한 번 보고 사람들을 한 번 보고 차량들의 질주를 넌지시 바라본다. 빨리 움직이지 않는 공간으로 스며들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루가 상큼해지는 일은 마음이 80%를 좌우한다고 본다. 그 80%를 흔드는 것은 생활의 지혜라 생각한다. 생활의 지혜는 삶의 길에 있다. 길은 주변의 영향을 더러 받는다. 오늘도 상큼이 서늘로 바뀌는 현장의 모습을 스스로 느낀다. 그렇게 되는 데는 일기가 한 몫을 한다. 가볍게 움직이는 나의 모습을 만드는데 나머지 20%를 모두 사용해 예쁜 것과 즐거운 일만을 떠올리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그것이 소확행이 되리라.
하늘엔 구름이 가득 끼었다. 10시를 향해 가는 지금도 비는 내리지 않고 있다. 그 무거운 하늘을 지붕 삼아 거리에서 사람들의 웃는 얼굴들만 바라보려 한다. '웃는 얼굴에 침을 뱉을 수가 있으랴'는 말이 있다. 주어지는 것들을 곱게 여기는 것은 심리의 변신술 중 하나라 여긴다. 그렇게라도 하루를 건강하게 보내고 싶다. 아득하고 무거운 하늘일지라도, 일기 예보가 자꾸만 시간을 엉뚱하게 가도록 할지라도 이제는 믿음의 길에 서서 물기 스민 길을 밟고 싶다. 그렇게 주어지는 모든 것들과 어울리고 싶다.
삼달리라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그곳에서 기상청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비애를 본 적이 있다. 충분히 이해하고, 충분히 감내하면서 제주의 삶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생각을 바꾸니 낮은 하늘이 마음에서 높아지고 있다. 사라진 빛이 나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