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우리들의 귀에 울림으로 남아 있는 말, '나는 기계가 아니다'란 외침이 우리의 뇌리에 진동으로 남아 있다. 22세, 그렇게 젊은 나이에 불과 함께 사라진 귀한 영혼의 날이 있었다. 이젠 그날도 50년 저편으로 넘어가고 있다.
열악했던 당시의 노동계 현실, 아마 당시에는 선구자의 길이었을 것이라 여겨진다. 우린 안다, 선구자는 늘 외롭다는 것을. 당대의 사회가 인정하지 않고, 못한다는 것을. 그렇게 반세기 저편에서 아득히 목소리가 들려온다 '요즘은 좀 어떠냐고.' 이제는 그래도 말할 수 있는 입장은 되어 있다. 당시에 노동자들 쪽에 서있던 사람들이 그것을 발판으로 숱하게 기득권자가 되어 있고. 그 바탕을 지키려고 애를 쓰고 있다.
사회가, 현실이, 인간이, 욕망이 조금은 편리함을 찾으려고 할 지라도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고, 소망이 있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안다. 이 자본주의라는 사회가 가진 자는 더 가질 수 있고, 없는 자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능력에 따라 나눔이 달라진다는 것을. 이런 깨달음을 지니지 못하면 정말 고통이 배가 되는 삶이 된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들을 알고 인정하고 이 사간들 앞에 서야 한다. 그것이 현실주의적이고, 지혜로운 일이다. 기득권자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삶이 가난한 자들은 너무 일에 매달려 생명을 걸 것이 아니라 열악한 노동을 스스로 개선하며, 작은 것에도 만족하고 살아야 한다. 적게 가지면 그것으로 즐거워하고, 나눌 줄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생각만 가지면 적게 가져도 별로 어려움이 없다. 욕심만 부리지 않고, 부러워하지 않는다면.
세상의 구성원들이 어떠한 상황에 살고 있을 지라도 서로를 존중하고 나누는 삶이 되면 조금 나아질 것인데,
아직도 어느 구석에서는 삶의 무게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하고
아직도 어느 구석에서는 이기(利己)의 칼날을 갈고 있다.
이게 문제고 이게 욕심이고, 이게 이기고, 이게 칼날이 된다. 이제는 나만 보지 않고 타인을 보는, 열린 세상만큼이나 타인들도 바라보면서 세상에 서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다.
누구나 그렇게 되어야 한다. 기득권자뿐만 아니고 가난한 자들이라도. 일은 하지 않는 것이지 못하는 세상은 아니다. 세상은 그렇게 변해져 있다. 우리는 이를 반세기 전의 그분에게 충분히 얘기할 수 있다. 좀 더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현명하게 길 위에 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