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이고 흔했던 일들이 요즘은 특별한 일이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길을 걸어 다니는 것도 운동이 아니면 일상에서 보기 힘든다. 어릴 적에 외가에 가기 위해서 40리를 걸었던 기억이 있다. 학교에 가기 위해서 15리 정도를 걸었다. 당시에는 걷는 것이 교통의 모든 부분을 이뤘다. 조선 시대에는 과거 보러 한양에 가기 위해 며칠을 걸었다. 요즘은 특별한 일이 아니고는 2km도 잘 걷지 않는다. 걷기 뿐만 아니고 손편지, 우체부, 차장 등 보기가 어려운 것이 많다. 그런 게 자연에서도 많다.
가을의 전령사인 곤충들도 보기가 어렵다. 가을의 꽃들도 다른 품종들이 밀려 들어와 자리를 빼앗기고 있다. 고추잠자리도 보기가 어렵다. 이때쯤 친했던 많은 것들이 주변에서 멀어져 있다.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 변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으리라. 하지만 아쉬움과 상실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으리라. 변하는 것이 긍정적인 요소도 있으나, 자연 부분에서는 그다지 바람직하진 않으리라 여겨진다.
요즘 코스모스도 찾아보기 힘든다. 코스모스가 피는 도로변에 다른 꽃들이 대신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예전의 경우 보면, 코스모스들이 스스로 씨앗을 남겨 자라고 꽃을 피우는 것을 많이 보았는데, 요즘은 도로 정비 같은 일들 때문에 모두 풀로 간주되어 사라지는 모양이다. 그러기에 일부러 심지 않는 경우 잘 보기가 어렵다. 또 꽃을 피우는 시기가 무척 당겨진 이유도 있다. 유월에 코스모스가 피어 있는 것을 봤다. 그런 경우 어찌 가을에 꽃을 피우겠는가? 계절을 잊고 꽃을 피우는 일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며칠 전에 달렸던 길, 도로변에 코스모스가 가득 피어 있는 곳이 있었다. 너무 반가웠다. 가을과 코스모스,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생각하기에 고마움까지 일었다. 당연히 차를 세웠다. 그 옆에서 한참이나 머물렀다. 그 흔적을 이렇게 올려 본다.
모든 일에 때가 있다. 때를 잘못 알고 일들이 일어날 때 아름다움이 반감된다. 때를 잘 아는 것도 순리에 적응하는 길이다. 순리를 따르는 삶은 섭리와 관련이 된다. 섭리에 의해 이루어지는 일은 얼마나 향기가 나는가? 우리의 삶이 질서 속에 순리에 순응하면서 향기가 났으면 하는 마음이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