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어려운 삶을 살고 있을 때의 글이다. 기러기 아빠로 혼자 직장이 있는 곳에 머물러 생활을 하던 때였다. 가족들은 차로 2시간이나 떨어진 고향 가까운 곳에 기거를 하고 난 바닷가 소도시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다 그때, 책상은 나의 소중한 친구였고 책은 동반자였다. 그들이 있었기에 그래도 혼자의 시간이 조금은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때 나의 책상에 팬지꽃 화분이 하나 날아왔다. 내가 늘 바라보면서 위로와 나눔을 가지길 원하는 분의 배려였다. 팬지는 나의 삶의 아름다운 부분이 되었다. 어려웠던 시간들이 이로 인해 조금은 상쇄되었던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이 떠올라 이렇게 글을 가져와 봤다.
팬지꽃 화분
내 책상머리에 팬지꽃 화분이 하나 놓였다.
알뜰한 보살핌으로 직접 기른 화분,
이제는 내가 키우길 원하시는 분의
따뜻한 마음이 그곳에 스며 있었다.
꽃이 7송이가 피어 있었다.
완전수, 온전함을 내게 전하는 것 같았다.
분의 마음이 속속들이 사무치게 다가들었다.
피지 않은 망울 7개가 더 있었다.
그것들은 아마 내일의 언약을 기대하는 것이리라.
내 책상머리로 팬지꽃이 날라 들었다.
그것은 나비가 되었다.
내 마음을 화려하게 수놓게 하고
새로운 비상을 위해서 준비할 수 있게 하는
나비가 되었다.
이제는 떨어져 있는 날들을
서러움을 섞어 쳐다보지 않으리라.
이제는 안타깝게 여겼던 만남의 시간들도
소중하게 주어진 시간으로
다듬어 가리라
내 책상머리로 팬지꽃 화분이 하나 다가왔다.
그것은 사랑이요, 정성이었다.
그것은 노래요, 이슬이었다.
그 팬지꽃에 담긴 마음을 닮아
나도 나를 내어주는 오늘이 되어야 하리라.
2004. 05. 13
지난 기억과 언어들을 만나는 일은 아득함이다. 지금 읽어도 그리 부끄럽지 않은 것은 내 솔직한 마음이 들어있기 때문인 듯하다. 그때, 지금부터 17년 전이라고 생각된다. 아득한 시간이다. 굵직한 얘기가 아닌 것은 미로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이렇게 언어가 남아 있어 다시 끄집어내 볼 수 있어 좋다. 지금 생각하면 아득하지만 그리운 한 때다. 그때는 뭔가 열심히 찾고 있었던 듯하다. 이제는 주어지는 것을 수용하는 넉넉함이 되어 있다. 감사가 함께하는 시간들, 지난 애틋했던 시간들을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