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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inyein May 28. 2024

샤이닝 빛과 어둠

<샤이닝>, 욘 포세

자유독서 모임을 시작하겠습니다. 익숙한 얼굴이지만 어떤 책을 가져왔는지는 수수께끼입니다. 다들 한 권의 책을 꺼내고 30분가량 독서를 했습니다. 책을 읽고 나누는 대화를 통해 읽고 싶은 책이 생기기도 하고, 지나쳤던 것들을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오늘도 제가 읽은 책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분명 책을 덮었을 때는 몰랐던 감상들이 대화를 통해 떠올랐습니다. 책장을 넘기며 생각 속에 여운을 느끼는 것도 좋지만 대화를 통해 그 마음을 구체화시키고 또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가보는 경험도 소중했습니다.


본격적인 책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독서는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의 들쑤시개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책 역서 저에게 또다시 글을 써보라며 꺼져가는 불씨에 호호 바람을 불어넣습니다. 작가의 글 자체는 매우 낯설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익숙했습니다. 사건도 제대로 된 말따옴표의 대화도 없습니다. 그저 차를 끌고 눈보라 속에 갇힌 한 남자의 내면을 끊임없이 따라갑니다. 의식이 흐릿해져 가는 것일까. 극한의 상황에서 우리는 이런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일까.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 남자의 백색(눈)의 검은 숲 속(어둠)은 어찌 보면 그의 인생에서는 가장 중대한 순간 중 하나일지도 모릅니다. 환상처럼 보이는 말들이 모두 그럴 수도 있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죽음에 임박하거나 한계에 다다른 듯한 상황을 겪어보지 못했음에도 우리가 어렴풋이 그런 상황에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야기가 끝이 날 때 당황한 것이 사실입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노래처럼 이어지던 이야기는 뚝, 하고 빛 혹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그만큼 제가 이 알 수 없는 이야기에 빠져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작가의 수상소감과 옮긴이의 말이 이어집니다. 작가의 수상소감 속에서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습니다. 구어와 문학언어 사이의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입니다.


문학 언어는 정보를 제공하고 의사소통을 하기 위한 수단이라기보다는, 의미를 가지고서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글과 모든 종류의 연설은 명백히 대조됩니다.


그 자체의 세계와 그 자체의 의미 속에서 우리는 조금 더 우리를 발견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옮긴이의 말 부분을 읽고 나서야. 별처럼 박힌 마침표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욘 포세 작가의 전작인 소설 '7부작'에는 마침표가 부재했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전작은 서사가 있지만 마침표가 부재한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다음 독서모임 책은 두 권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옮긴이는 침묵과 멈춤에 주목했습니다. 저는 조금 더 흐름에 몸을 맡긴 것 같습니다. 이야기 속에는 '신'이라는 인상을 주는 순백색의 존재가 등장합니다. 존재는 어떤 메시지도 던지지 않습니다. 명확한 답을 내려주지도 않습니다. 그저 그곳에 존재합니다. 자신이 만들어낸 환영일지도 모른다고 등장인물 역시 생각합니다. 작가가 만들어 낸 세계는 그렇게 존재하지만 진실에 가까운 무언가를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다시 저의 이야기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저는 어느새 제가 아끼는 사람과 함께 차를 타고 제가 살고 있는 곳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비가 조금씩 내리던 도시를 떠나오자 더 이상 비는 내리지 않습니다. 구름은 촉촉하지만 바람은 어딘지 모르게 가볍습니다. 우리는 평소 잘하지 않았던 대화를 나눕니다. 고속도로의 옆으로는 산들이 무심하지만 묵직이 펼쳐져 있습니다. 말하기와 글쓰기의 차이에 관하여, 관념을 깨부수는 글에 관하여, 또 어떤 예술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눈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가르치려고도, 설득하려고도, 공격하거나 감싸려고도, 무언가를 드러내려고도 하지 않는 글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을지를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또 저는 글이 쓰고 싶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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