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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inyein Mar 26. 2024

이야기와 위스키

<자기 결정>, 페터 비에리

오늘의 모임은 조금 특별했습니다. 먼 곳에서 온 손님이 급작스럽게 방문해 함께 해주었고 저와 남자친구는 여행을 막 다녀온 참입니다. 독서모임 처음부터 참여해 준 멤버가 마지막으로 도착하면서 분위기는 더욱 편안해졌습니다. 참석을 약속했던 다른 분들이 못 오신 바람에 결국 독서모임은 저희만의 작은 파티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책과 이야기를 나눌 질문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색함을 조금 참고, 자기소개부터 나눠봅니다.


면접을 보고 난 뒤에도, 자기 결정을 읽고 나서도 저에게 자기소개는 목이 까칠 거릴 만큼 어렵습니다. 어떤 것을 말해야 할지 어디까지 말해야 할지 불안해지기 때문이죠. 하지만 오늘은 익숙한 얼굴들 때문인지 자기소개가 오히려 가벼워졌습니다. 별다른 소개가 아니더라도 나누었던 시간 속에서 서로를 알고, 오늘의 이야기 속에서 새로운 모습을 만날 것도 알고 있습니다.


책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공식 질문입니다.
책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이나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을 말해 주실 수 있나요?


1. '자기 결정적 삶은 그들로부터 전혀 아무 영향도 받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32p

타인의 시선이나 말을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하다가 오히려 내면으로 침잠했던 것 같다는 이야기였는데요,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오롯이 자신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와 그들의 인식도 필요하다는 반성이었습니다.


2. '경험과 자아상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나에게는 자기 결정력이 없습니다. 두 개의 간극이 클 때 우리는 그것을 내적 자유의 제한, 즉 내적 강박으로 받아들입니다.' -67p

저는 모순적 선택에 관한 이야기라고 보았습니다. 내적 자기 결정이 부재한 상황에서 자신과 동떨어진 선택을 하다 보면 결국 상처를 입게 되는데요. 개인적으로 비슷한 경험들을 한 적도 있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이 부분을 가장 인상 깊게 체크해 두었습니다.


3.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이 나를 조종하는, 나의 느낌들과 내가 원하는 것들의 표면 밑에서 흐르고 있는 소용돌이를 감지해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17p

비슷한 고민을 하신 두 분입니다. '진정성'에 대한 고민이었는데요. 내가 내린 선택, 내가 좋아하는 것들, 취미생활 등등이 정말 내가 좋아하는 것일까. 아니면 어떤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하는 진지한 고민이었습니다. 캠핑, 러닝, 독서와 같은 취미생활부터 전공과 직업 같은 큰 선택에 대해서도 진정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서 고민해 보셨다고 하는데요. 이런 고민을 거친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자기 결정에 한 발짝 다가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취미생활에서 타인보다는 자신의 기준에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진정으로 임하신다는 분은 연애에서 만큼은 타인과 함께 하는 일이기 때문에 오히려 이러한 고민보다는 관계의 상호작용에 더 신경을 쓰신다고 하셨습니다.


챕터 1. 자기 결정의 삶

책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 중 여러 가지 방법들이 등장하는데요, 스스로 경험해 본 적이 있거나 시도해보고 싶은 방법이 있나요?


1.  뭐라고 해도 '강력한 아군으로서의 문학'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있으신 분이면 이 부분에 대한 공감이 크실 것 같습니다. 아마 잠자고 있던 열정이 깨어날지도 모르겠네요. 실제로 모인 분들 모두 글을 쓰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책에서 페터 비에리는 '하나의 소설을 끝내고 난 작가는 전과는 다른 사람'이라고 표현합니다. 저 역시 소설 쓰기를 도전하고 있는데요. 꾸준히 쓰는 것도 쉽지 않고, 이야기와 인물을 구성해 내는 것에도 애를 먹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아닌 누군가가 쓰는 것처럼 글이 쓰이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글 속에서 저의 경험과 기억이 녹아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이 주는 순수한 기쁨이 있습니다. 작가는 한 발 더 나아가 이러한 행위를 통해 자신의 경험을 한 번 더 소화시킬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네요.


2. 부정과 회피에서 '스스로 알기''자신을 말로 표현하기'

반항심으로 인해 일부러 회피했던 일들이 사실은 나에게 꼭 필요했던 것들일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부분을 말씀하신 분은 어린 시절에 자기 통제에 대한 반항심으로 인해 짜인 시스템(학교)이나 루틴을 세우는 것에도 부정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들 수록 자신이 세우는 루틴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시스템 내부에서도 작은 것들에 최선을 다하는 그 자체가 가치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순응과 반항이 꼭 대척점에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무조건적 순응과 이유 없는 반항 모두 사실은 사유의 부재라고 생각합니다. 작가가 말했듯이 사회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규칙들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각과 자신이 넓혀 갈 수 있는 자유를 고민하는 것이 건강한 적응이 아닐까요.


3. '조종이 주는 악랄한 독성''내적 독립성'

회사생활을 하시는 분이셨는데요. 사내에서 주입하는 애사심이 자신의 정체성을 해친다는 생각을 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 부분에서는 아직도 고민을 하고 있으신 것 같은데요. 그런 고민이 주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회사 내에서의 경험이 자신의 자아에 손상을 주는 것이 아니라면 회사 밖의 나의 생활을 통해서도 자아상을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보았습니다.


4.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스스로를 테마로 삼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의 진정성을 고민하셨다는 분은 거리 두기를 꼽으셨습니다. 작가는 '뒤로 한 발짝 물러나 자신의 경험과 내적 거리를 둘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나 경험에 너무 몰입해 있기보다 조금 떨어져서 볼 수 있다면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때도 오히려 넓은 마음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셨다고 합니다.



챕터 2. 자기 인식과 글쓰기

작가는 표현을 통해 자기 인식을 날카롭게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글쓰기나 다른 창조적 표현 활동을 통해 자기 자신을 더욱 깊이 발견할 수 있을까요?


1. 글쓰기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많았습니다. 제가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은 작가가 다른 등장인물의 시선으로 글을 쓰는 일에 대한 것인데요. 이 부분을 기억하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각자 타인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인상 깊었던 작품들을 이야기를 하다 보니 드라마까지 등장하면서 작품 추천으로 이어졌습니다.

어떤 분은 자신의 글에서 타인의 시선에 대한 검열이 있다 보니 솔직한 본질에 닿지 못할 때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자기기만'이라고 표현하셨는데요. 모든 글이 100퍼센트 솔직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저 역시 타인이 보지 않는다고 해도 제가 쓴 글을 끊임없이 정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과정은 단순히 '검열'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과 자신이 만나는 곳을 알게 되는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부분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디까지가 허용되는 수준인지, 내가 원하는 자아상과 사회적으로 보이고 싶은 자아상의 차이가 있지는 않은지, 최종적으로 글 속의 나는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지. 여러 가지로 생각할 거리가 많습니다.

 

2. 러닝과 같은 취미활동

취미생활 역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신 분입니다. 꾸준한 운동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통한 기록과 느낀 점을 기록하는 일에서 조금 더 자신을 발견한다고 하셨는데요. 취미와 관련된 글을 쓰다 보면 그 자체로 자신의 표현이 되고 나중에 봤을 때는 그 기록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러닝을 할 때 장거리와 단거리의 차이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는데요. 긴 호흡의 달리기를 하면서 조금 더 자신을 컨트롤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창조적인 것이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나가면서도 그 일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의 저의 글쓰기 역시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싶습니다.


3. 영상 만들기

글쓴이는 붓터치, 공예, 음률, 비디오와 사진, 춤, 옷 입기, 요리와 마당 가꾸기 등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사진과 영상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요즘. 저희에게 아무래도 가장 가까운 자기표현은 사진 촬영과 영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른 모든 표현을 담을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하니까요. 저에게도 영상은 독서만큼이나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양으로 본다면 훨씬 더 많이 영상을 접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최근 소셜미디어나 유튜브를 보면서 자기표현이 많아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속에서도 작가의 말을 빌려 '성공과 실패, 승리와 패배, 경쟁과 순위의 논리가 너무도 시끄럽게' 울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고민이 담긴 아름다운 표현들을 만날 때도 많습니다. 시각적인 상상을 제한하고, 생각의 폭 역시 좁게 한정되는 경향이 있지만, 텍스트와는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또한 영상 속에서 텍스트를 접하는 경우도 있죠. 저 역시 글쓰기 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저만의 고민과 생각이 담긴 이야기들을 전달하고 싶어 집니다.



챕터 3. 문화적 정체성

책 속에서 문화적 접촉을 통해 기존의 관습을 점검해 보는 시간이 중요하게 담겨 있는데요. 진정한 다르게 보기, 즉 교양을 쌓아 본 경험이 있나요?


1. 처음 보는 장면의 강력함

처음 대학교에 갔을 때 흡연하는 여학생을 보고 놀랐던 경험을 말해주셨습니다. 저의 경우 일본에 갔을 때 상점 내부에서 흡연하는 것을 보고 놀랐던 경험이 있습니다. 당연히 받아들여왔던 것에 균열을 주는 장면들은 뇌리에 깊이 박히기 마련입니다. 사람은 곧 적응을 하겠지만 한 번쯤 생각하게 됩니다. 어디까지가 자유이고 어디까지가 사회적인 허용인지 말입니다. 우리나라는 흡연에 관대한 국가는 아닙니다. 아무래도 연기와 같이 타인에게 주는 피해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지만 여성 흡연에 대한 관점 역시 보수적입니다. 당연히 성별로 인한 이중적 잣대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비흡연자인 개인적 차원에서 상대의 흡연으로 발생하는 것들이 달갑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흡연자의 입장이라면 비흡연자의 깐깐함 역시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이겠죠. 서로의 입장을 배려하고 불편한 점들을 조율해 나가는 것이 함께 사는 사회의 기본적인 자세가 아닌가 싶습니다.


2. 언어의 힘

다른 언어를 쓸 때 자신이 조금 달라진 것 같은 경험을 해보신 적이 있나요? 저는 종종 그럴 때가 있습니다. 목적어가 먼저 나오는 한국어를 사용하는 한국인들의 목적지향성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신 분도 계셨고 영어를 사용할 때 왠지 모를 자신감이 더 생기는 것 같다고 하신 분도 계셨습니다. 반면 제2외국어를 쓰는 자체만으로 주눅이 들 때도 있습니다. 저의 경우 외국에 있을 때 한국어로는 쉽게 표현되던 감정들이 영어로는 어려운 것을 느낄 때, 느끼는 감정에도 조금은 사회적인 차이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를 테면 '답답하다', '아쉽다', '아깝다'라는 표현은 한국어에서는 다양한 상황을 내포하지만 영어에서는 상황에 따라 구체적인 표현을 할 수는 있지만 이런 감정을 포괄하는 표현을 찾기는 힘들었습니다.  작가의 말처럼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다른 삶의 운율'과 '삶의 다른 소리와 맛'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고의 또 다른 카테고리와 삶의 다른 멜로디를 새롭게 배우는 일'을 통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더 넓은 가능성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3. 나의 관습과 사회적 관습

한국에서는 나이를 묻거나 타인의 외모를 이야기하는 일이 빈번하지만 서구권에서는 실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사회적인 분위기는 개인의 행동을 결정하는 데 큰 힘을 미칩니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어떤 것이 실례이고, 어떤 것이 허용 가능할까요? 사회적으로 비난받는 일이 본인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일 수도 있고, 또 개인적으로 굉장한 예민한 행위가 사회적으로는 통용되는 일인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간극을 느낄 때 개인은 조금 괴로워질 수도 있습니다. 다른 문화와의 간극 경험하거나 바라보고 나아가 개인의 차원에서 스스로의 기준을 세워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시간이 지날수록 발 딛고 있는 사회에 동화되거나 편견, 혹은 기준이 까다로워지는 것을 느끼고 있는데요. 다른 이들의 창작물(책, 영상, 미술 작품 등)을 보면서 놓쳐 왔던 것들을 또 깨닫게 됩니다. 타인과의 좁은 경험을 일반화하거나 자신의 불안, 내적 강박으로 인해 타인을 쉽게 제단 하는 것을 항상 경계해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작가는 자기 인식의 가치를 말하면서 자기 결정적 삶과 내적 자유를 넓혀갈 수 있다고 하는데요. 스스로 벗어나고 싶은 것들이 있나요?


1. 완벽주의

완벽하게 하지 않는 이상 하지 않겠어.라는 회피성향을 극복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누구에게나 이런 부분이 조금씩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이거나 꼭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이런 태도보다 과정에 집중하겠다는 다짐입니다.


2. 상처에 대한 두려움

연애나 관계를 맺을 때 타인에게 마음을 다 열지 못하는 것의 기저에 버림받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깔려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 두려움에서 벗어나 더욱 자유롭게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겠다는 용기에 대한 결심입니다.


3. 불안

자신의 경험과 직접 겪지 않은 뉴스와 이야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불신이나 겁이 많아졌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자신 안의 불안을 응시하고, 안다는 자체 만으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안의 증폭시키는 세상의 이야기나 자신의 경험보다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는 것입니다.


4. 지나친 생각 

최근 2-3년간 생각들이 너무 많아져, 그 생각 속에 살고 있는 때가 많은 것 같다고 이야기였습니다. 명상이나 운동처럼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통해 오히려 생각을 비워내면서 자신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깨달음입니다.


각자의 결심에 건배를 외치며, 이제 케이크와 함께 위스키를 마셔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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