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고 추웠다 더웠다는 하는 변덕스러운 날씨를 보니 봄이 오려고 꿈틀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해가 밝고 공기가 맑아 쨍-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날이었습니다. 카페는 막 문을 열었고, 조심스럽게 조용한 공간으로 들어가 봅니다. 잔잔한 조명과 음악소리, 인센스 스틱의 향기가 독서를 방해하지는 않을지 걱정했지만 오히려 잘 어울렸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오셨습니다. 여섯 분 모두 각자 음료를 들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책들은 이미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습니다. 간단히 소개를 나눈 후 50분간 독서를 시작했습니다.
독서를 시작할 때 저는 보통 시간을 정해두지 않습니다.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 이를 테면 잠들기 전, 이동하는 시간, 휴일, 휴양지에 갔을 때 등등 자유롭게 독서를 하는 편입니다. 독서모임을 하면서 시간을 맞춰두고 독서를 할 때 집중도가 올라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해진 시간 동안 작가와 혹은 작중 인물들과 만나는 시간은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 같은데요. 50분 남짓한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저는 읽으려고 했던 책의 나가는 글과 덧붙이는 글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고개를 들어 보니 다들 책에 푹 빠지신 것 같아 시간이 다 되었다고 말하기가 조금 무안해질 정도였습니다. 책을 덮고 오늘 읽은 부분과 책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이야기는 저의 기록에 의존하고 있으며 조금 각색된 부분이 있습니다.)
"저는 책의 세 장의 챕터 중 한 챕터를 읽었습니다.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들을 들으며 20대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좋아하던 것들이 바뀌기도 하는 걸 보면서 취향보다 확고한 나의 가치는 무엇일까 생각했습니다. 작가는 '글 쓰는 일', 특히 소설 쓰기가 자신을 아는데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고 있어서 글을 쓰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되고 싶은 '나'와 지금의 '나'의 괴리감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 보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들고 오신 책은 다음 모임의 선정 책이라 다음에 나눌 이야기가 더욱 기대됩니다.
"제가 읽던 책에서 니체를 인용한 구절을 보고 꼭 읽고 싶어서 시작하게 되었는데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습니다. 니체가 선호하고 기피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공부가 조금 더 필요한 책이라 많은 설명을 해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요즘 철학서가 자기 계발서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베스트셀러에 등극되는 것도 인상 깊은 현상입니다. ‘철학에 관심이 있으신 편인지’, ‘다른 철학자의 책도 읽어본 적이 있으신지 ‘ 등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딱히 철학이라는 학문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관심 있는 책을 읽다 보면 철학적인 내용들이 등장해 연계해서 읽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최근에 인기가 많아진 쇼펜하우어에 대해서는 인생을 고통과 권태라고 보는 그의 관점이 삶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것이 아닐지 추측해 볼 수 있었습니다.
"공감하기 힘든 부분도 많지만 오히려 관찰자의 시점에서 심리학적인 접근을 한다면 자살충동, 불안, 고독과 같은 인간 내면의 심리를 조금 더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실격이라는 키워드만으로도 많은 분들이 한 마디씩 보태어 주시는 걸 보니, 필독도서처럼 많이 읽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2병 같은 소설', '20대 초반 남성들을 자극하는 소설'과 같은 의견도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대학시절 국문학 수업을 들으며 해당 작품을 다루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 무렵의 저는 문학적 감수성에 취약했기 때문에 요조의 마음에 쉽게 빠져버리곤 했습니다. 그리고 요조에게 공감할 수 없다는 교수님의 말을 듣고 대뜸 많은 학생들이 그에게 공감할 수 있을 거라고 겁 없는 소리를 하고 말았습니다. 실제로 대다수의 학생들이 요조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며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당시에 저로써는 무안을 피할 수 있었지만 국문학과 학생들이 많았다는 것도 그렇고 20대 초반의 순수함을 생각한다면 요조와 더 가깝게 느껴질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우리가 당연시하는 것들을 어색하게 바라보며 힘겨워하는 요조를 30대가 된 지금 한 번 더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의 기술을 너무 감명 깊게 읽어 에리히 프롬의 작품을 더 읽고 싶어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보시다시피 앞부분 밖에 못 읽었지만 이 책 역시 너무 푹 빠져 시간이 가는지도 몰랐네요. 1941년 출판된 책인데 전체주의에 대한 경계가 두드러졌습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수동적이고 고정적이라면 에리히 프롬은 조금 더 변동적이고 사회적인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기술을 다시 읽고 싶다는 분들도 계셨고, 해당 책에 대한 관심도 느껴졌습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웠던 점은 자유가 억압된 상태에서 문화적 창조가 더욱 활발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문화적 상상력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것은 오히려 결핍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다음 선정도서는 심리학 도서로 정해 보는 건 어떨지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제가 선택한 책입니다. 한국작가의 에세이 책을 읽어본 게 얼마만인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로 저는 독서를 편식하고 있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4부까지 읽고 와서 마지막 5부를 마저 읽었습니다. 삶의 태도에 대해서 말하자면 저마다 몇 마디씩은 하고 싶은 말이 있지 않을까요. 그럼에도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작가의 조금은 독특한 시선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노래가사, 연설, 소설의 구절 등 인용한 글에서 느껴지는 여운도 상당했습니다. 연애와 사랑,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도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데요. 책 속에서 저는 용기를 느꼈습니다. 자기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용기,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야 말로 꼭 필요한 태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군대에 가기 전 읽었던 책인데, 최근 독서와 너무 멀어진 것 같아서 다시 읽어보기 위해 책을 펼쳤습니다. 저는 원래 조금 밝은 분위기의 사람인데 책을 읽을 때는 오히려 조금 어둡고 심오한 책들을 좋아합니다. 일상과 다른 분위기를 주기 때문이죠. 2권까지 읽다 군대에 가서 3권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설레는 마음으로 읽었는데 저는 2권에서 끝났을 때 그 열린 결말의 여운이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1Q84가 적힌 책 표지를 보자 향수가 느껴졌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며 흥미로웠던 점은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책을 읽었을 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처음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책장을 덮고 바로 다시 읽어도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도 하죠. 책을 읽기 전의 우리와 읽고 나서의 우리가 다르듯 시간이 흐르며 우리는 어쩌면 조금 더 성장했을 수도, 단순히 변했을 수도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소설 속 인물과 조금 더 노련하게 거리를 두는 법을 배우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이 그렇듯 고정된 것은 없습니다. 평소 기피하던 장르의 책에도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같은 책이 어느 시점에는 강렬한 파도였다가 또 어느센가 잔잔한 호수의 일렁거림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죠. 그것이 또 독서의 마법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