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층에서 책을 꺼내고 인사를 나눕니다. 흐린 날씨지만 살짝 가라앉은 밖의 공기 때문인지 실내가 평소보다 짙게 느껴집니다.
우선 각자 가지고 온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색함 탓에 저의 책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소개는 표지만 보이는 것이 나을 정도로 초라했습니다. 저번 모임 책이지만 다 읽지 못하고 오늘은 끝을 보겠다며 들고 오신 <어느 작가의 오후>도 있었고, 이번달 모임에 선정된 책 <레버리지>를 가져온 분도 계셨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감명 깊게 읽고 같은 작가의 <수레바퀴 아래서>를 들고 오신 분도 계셨습니다.
한 시간가량 각자 가져온 책을 읽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평소라면 창 밖을 두세 번 더 바라보고, 주위를 둘러보다 스마트폰에 빠져버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각자의 책을 펼치고 주어진 시간을 약속하자 놀랍게도 집중력이 훨씬 높아졌습니다. 그 시간만큼은 숨을 죽이고 작가가 만들어낸 세상 속으로 빠져들어갑니다.
한 시간이 지나고 각자 읽던 책을 내려놓습니다. 한 권을 끝내신 분도 계시고, 이제 시작한 분도 있으시네요. 결말을 남겨두신 분에게 더 읽으실지 물어봤습니다. 집에서 결말을 끝내고 싶다고 하시네요. 이제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각자 오늘 읽은 책과 내용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수레바퀴 아래서>는 헤르만 헤세의 청소년시절을 기반으로 한 자전적 작품입니다. 모두의 기대를 받던 주인공 한스는 수도원에서 공부를 하다 병을 얻게 되고, 아무도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느끼게 됩니다. 염세주의가 느껴지는 소설이었어요."
'헤르만 헤세'라는 작가의 이름만으로도 이야기의 봇물이 터져버렸습니다. '싯다르타'와 '데미안' 이야기가 한참 오고 갔습니다. 얼마 전 서점에 갔더니 베스트셀러 책장에 헤세의 책이 두 권이나 있던 것이 생각이 납니다. 허무주의와 좌절, 외로움, 동경 등이 그의 작품을 가로지르는 공통점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방황 속에서 느끼는 고독과 이상을 향한 몸부림이 지금의 우리에게도 어떠한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제가 읽은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으신 분들께 두 편의 영화를 추천받았습니다. '자기 앞의 생'과 '그랜 토리노'인데요. '자기 앞의 생'은 이미 보았지만 책으로는 접하지 않아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랜 토리노’를 떠올리신 분은 책 속 주인공 빌 펄롱이 자신을 지켜오던 일상의 가치에 균열을 느낀다는 점에서 영화의 주인공을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봐야 할 작품들이 늘어만 가는 것 같아 조급해지면서도 곳간이 채워지는 것 마냥 기분이 좋습니다.
지난 독서모임의 책이었던 <어느 작가의 오후>를 들고 오신 분도 있으셨습니다. 소설 몇 개를 놓쳐서 끝까지 읽고 싶다고 하셨는데 결국 완독 하셨습니다. 이번 독서에서 작가의 삶과 의지가 더욱 생생하게 다가오셨다고 합니다.
"소설을 다 읽고 시간이 남아 에세이를 한 번 더 읽었습니다. 지난 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책을 처음 다시 봤는데 작가에 대한 이해가 더해져서 인지 더욱 감동적이게 느껴졌어요."
반면, 다음 독서모임 책이 <레버리지>를 챙겨 오신 분도 계셨습니다. 아직 책의 뒷부분이 많이 남으셨다고 하셨지만, 개인적으로는 다음 모임의 이야기가 기대되는 소개였습니다.
"아무래도 일을 하면서 독서를 하다 보니, 시간이 나지 않아서 완독을 위해 미리 들고 왔습니다. 상업적인 책에 대한 조금 거부감도 있었지만 성공, 노동, 경제적 자유와 시간 등에 대해 작가의 생각을 제 자신의 것과 비교하면서 다른 관점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 속에 등장한 구절 중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한스는 조용하고 외딴 장소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던 끝에 편히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곳을 발견하고는 죽음의 보금자리로 정해 놓았다. 그리고 시간이 있을 때마다 거기에 찾아갔다. 머지않아 사람들이 여기서 자신의 시체를 발견하게 되리라는 상상을 하며 이상야릇한 쾌감을 느끼기도 했다."
- <수레바퀴 안에서>, 헤르만 헤세 중
수도원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병으로 쫓겨난 한스는 사랑에도 실패하게 됩니다. 그런 한스를 유일하게 위로하는 것은 다름 아닌 '죽음'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며 위로받는 소년 한스에 대한 연민과 함께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도 들게 되었습니다.
" She could feel him slipping out of her heart, feel the space he left, and all at once he was gone, and she could even forgive him and be sorry for him. All this in a minute." - <Two Wrongs>, F. 스콧 피츠제럴드 중
어느 작가의 오후에서 '사람이 저지르는 잘못'으로 번역된 단편의 구절입니다.(번역된 구절을 찾아 번역문을 다시 올리겠습니다.) 남편의 외도와 방황으로 유산하는 순간마저 혼자 버텨낸 아내의 심정을 나타낸 장면인데요. 둘의 관계가 결정적으로 변하면서, 그가 마음에서 빠져나가고 그 감정에 그가 가엾게 느껴지기까지 했다는 묘사입니다. 감정이 변하는 시점에서 여성의 심리 묘사가 마치 마음에 들어왔다 나온 것처럼 섬세한 점이 인상 깊으셨다고 합니다.
"사회가 말하는 성공의 기본 법칙은 '열심히 일하는 것'과 '희생'이다. (중략) 그러나 당신이 행복한 삶과 시간적인 자유를 원한다면 더 열심히, 더 오래 일하라는 성공의 법칙이 근거 없는 망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
"앞서 말했듯 성공에 대한 일반적인 신화 중에서 가장 큰 망상은 '열심히 일하라'는 것이다." - <레버리지>, 롭 무어 중
본인이 가지고 있던 '일'에 대한 관점과는 조금 다르지만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처럼 느껴져서 이 구절을 뽑으셨다고 합니다. 경제적인 자유와 개인적 시간을 성공으로 꼽은 책의 작가와는 달리 일에 대한 가치도 생각해 볼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속에는 두려움이 다른 모든 감정을 압도했으나, 그럼에도 펄롱은 순진한 마음으로 자기들은 어떻게든 해나가리라 기대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중
제가 꼽은 구절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큰 결심을 한 펄롱이 소녀를 데리고 마을을 거쳐 언덕을 올라가는 모습입니다. 결정적인 순간 혹은 맞이하는 삶의 곳곳에서 펄롱의 용기를 떠올리며 살아가기를 바라봅니다.
오늘 읽은 책을 다른 분들께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그렇다거나, 그렇지 않다면 이유를 들려주세요
" <레버리지>를 추천한다면 스스로 자신의 인생에 대한 가치관이 정립돼 있는 분들께 추천하고 싶습니다. 작가의 설득에 전적으로 휩쓸리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
저 역시 레버리지를 읽으면서 회피의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같은 걱정을 하신 것 같습니다. 직업과 일이라는 인생의 큰 결정을 이 책의 작가처럼만 바라본다는 건 조금 위험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반면, 방법론의 관점에서 본다면 배울 점들도 많은 책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느 작가의 오후>라는 책은 '작가에 대한 애정 있다면'이라는 단서를 붙여서 추천하고 싶습니다. 내용 자체가 자전적이기도 하고 알코올 중독, 불륜 등의 소재가 많아서 작가의 인생을 알고 시기별로 그 상황을 이해하면서 읽었을 때 느껴지는 것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피츠제럴드가 인생 후반부에 겪은 경제적인 문제와 아내 젤다의 병, 새로운 환경, 작가로서의 갈등 등을 알고 본다면 에세이를 비롯한 단편작들의 개인적인 고뇌와 극복의 의지가 더욱 와닿지 않을까 싶습니다.
“삶의 좌절과 외면을 겪어본 적이 있는 분께 <수레바퀴 아래서>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너무 평탄한 삶을 살아오셨다면 한스의 마음을 어쩌면 이해하지 못하실지도 모를 것 같아요. “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인간적인 실패와 어둠, 외로움이 그려지는데요.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님이나, 주변 방황하는 친구들이 있다면 한 번쯤 읽어보면서 청소년기의 방황과 그 내면을 바라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주변사람들에게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추천하고 싶어요. 보편적으로 느낄 수 있는 일상 속 불안, 실존적 고민, 타인을 향한 용기를 모두 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길이가 짧은 소설이라 부담 없이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올해 소설을 기반으로 한 동명의 영화가 개봉한다고 해서 기대가 됩니다. 책 리뷰에서도, 옮긴이(역자)의 글에서도 이 소설을 두 번 읽기를 추천하고 있어, 한번 다시 읽어보며 응축된 이야기 속 깊은 향기를 곱씹어 볼 예정입니다.
마지막으로 책을 통해 느낀 점이나 깨달은 점 등을 정리하면서 이야기를 마쳐 보겠습니다
" <레버리지>를 읽으며 편향된 관점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뒷부분을 조금 더 철저하게 읽어볼 생각입니다."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으며 최근 읽은 <데미안>도 떠올랐습니다. 데미안 속에는 추종하는 인물이 등장하면서 주인공(싱클레어)과의 관계가 주로 다뤄지는데요. <수레바퀴 아래에서>의 소년 한스는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인물이 단 한 명도 없이 존중받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러한 상황에 처한 청소년들이나 학생들을 한 번 더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느 작가의 오후>를 통해 성공 후의 인생과 신중한 선택의 중요성을 배웠습니다. 실수와 잘못된 선택으로 엇나간 인생에서 다시 바로 잡는 것이 얼마나 처절하고 힘든 일인지 피츠제럴드가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어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의 일생이 훅 밀려오면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누군가를 돕는데 이처럼 용기가 필요하다면 과연 나 자신은 아일린(빌 펄롱의 부인)과 더욱 닮은 모습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어떤 순간에는 제가 용기 있는 선택을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통해 만난 시간. 낯설고 새로운 것을 만날 때는 상쾌함을 느끼기도 하고, 닮은 점을 발견할 때면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