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앞에는 매년 늦게 피는 벚나무가 있습니다. 이 나무는 제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우리 집 앞 길목을 지켜왔고,새 학기가 시작되는 매년 봄에 하얀 벚꽃을피워냈습니다.
새 학기 시즌과 벚꽃이 피는 시기가 비슷해서, 벚꽃이 필 무렵이면 과거의 고민과 향수가 떠오르곤 했습니다. 이 나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제가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나무가 썩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두 갈래로 나뉘어 있던 가지 중 한쪽이 썩기 시작하더니, 몇 년 동안 꽃봉오리와 열매가 맺히지 않았습니다. 꽃이 피지 않자 그 앞에는 음식물 쓰레기통과 사용하지 않는 가구들이 쌓였고, 저는 나무가 죽은 줄 알았습니다.
몇 년이 지나고 나무의 존재를 잊고 지내던 어느 날, 집 밖을 나서니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습니다. 코로나로 벚꽃축제가 취소되고 근처 벚꽃들은 이미 지고 땅에 떨어져 쌓여있었지만, 그 나무는 다른 나무들보다 늦게 피었지만 가장 아름답게 피어 있었습니다. 당시취업 준비생이었던 저에게 그 풍경은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취업 준비생들이 으레 그렇듯, 저도 자기 비하적인 생각에 자주 빠졌습니다.
"나는 왜 안될까." "다른 사람들은 잘만 붙는데 왜 나는 면접에서 말도 제대로 못 할까." "왜 제자리걸음일까."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있을까."
부정적인 생각들은 끊임없이 찾아왔고, 불안감을 떨쳐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죽은 줄 알았던 나무가 다시 살아 꽃을 피우는 것을 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운이나 실력이 아니라 마음가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약해진 마음을 다잡기로 결심하고, 한 달 동안 하루 8시간씩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며 매일 10개의 이력서를 제출했습니다. 그 결과 한 달 정도 후에 회사에 취업하게 되었습니다. 완벽하게 마음에 드는 회사는 아니었지만, 직무가 잘 맞았고 저의 능력을 믿어주는 좋은 사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1년 반 정도 뒤에는 다른 이유로 회사를 떠나게 되었지만, 그동안 쌓은 작업물 덕분에 이전보다 저를 찾아주는 회사가 많아졌고,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사실 아직도 제 미래가 어떻게 될지 걱정되는 마음을 떨쳐낼 수 없습니다. 디자이너로서 잘할 수 있을지, 아니면 디자인을 관두고 다른 일을 하게 될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희 집 앞에 있었던 벚나무처럼 저도 포기하지 않고 싶습니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간다면 남들보다 늦더라도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