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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은 Nov 16. 2023

#12 오리의 가르침

 회사에 도착해 주차하고 내리면 바로 옆에 하천이 있다. 대부분 물이 없는 채로 있는 이상한 하천인데 요즘에는 물이 어느 정도 차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 출근하면 오리들이 아주 평화롭게 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찰나의 순간. 차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푸드덕거리며 다 날아가 버린다. 어쩜 그렇게 경계심이 강한지 모른다. 조금 더 오래 보고 싶은데 아무리 살금살금 내려도 금방 알아차리는 오리들이다.      


 나도 한때는 참 경계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사람에게 쉽게 다가가지 않았고, 쉽게 마음을 내어주지 않았다. 경계하는 사람에게 마음 열고 다가오는 사람은 잘 없었다. 항상 경계해야 한다는 것은 어깨는 무겁고 마음은 외로워지는 일이었다.      


 그런 내가 경계심을 풀게 된 건 술 때문이었다. 어른이 되고 처음 술을 먹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꽤 괜찮았다. 술병이 비워질 때마다 경계심도 비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평소답지 않게 수다스러워지는 내가 신기했다. 물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는 내가 어떻게 보였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술의 순기능을 알고 난 후부터는 많은 부분 술에 의지했다.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야 할 때, 할 말이 없을 때, 빨리 친해지고 싶을 때 등...     


 좋은 점에는 반드시 가려진 이면이 있다. 그렇게 가까워진 관계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빨리 뜨겁게 마음을 나눈 만큼 금세 식어버렸다. 섣불리 풀었던 경계심은 실망감과 배신감을 가져올 뿐이었다. 그래도 사람 관계에 있어서 술을 배제시키는 것은 참 어려웠다. 그 찰나의 침묵, 어색함을 견디지 못하고 술잔을 먼저 드는 사람이 나였다.      


 다시 경계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저 하천의 오리들은 작은 소리에도, 작은 인기척에도 경계하는데 나는 너무 태평하게 세상을 살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예전에는 경계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너는 마음을 쉽게 열지 않는 것 같아.” “네가 그렇게 경계하니까 다가가기 힘들어.” 이런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에. 그런데 지금은 ‘그게 뭐 어때서?’라는 마음이 든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고, 얼마큼 경계해도 마음이 닿을 사람은 언제라도 닿을 것이고 그렇게 맺어진 관계가 더 탄탄하다는 것을 아니까.      


 이렇게 말하지만, 나는 여전히 미숙한 사람이다. 그래서 중간을 조절하는 게 어렵다. 그래도 잊고 있던 경계심을 푸드덕 날아가는 오리가 알려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오리의 평화를 방해해서 미안함이 들지만, 그 힘찬 날갯짓 덕분에 나는 오늘도 한 가지를 배우고 깨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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