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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은 Nov 26. 2023

#20 이별 후유증, 공백을 마주하는 일

   

 이별 후 겪는 후유증 중 하나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공백이다. 간밤의 안녕을 묻는 것으로 시작했던 아침, 반복되는 일상 중에서도 끊임없이 조잘거렸던 대화들, 눈 감는 순간까지 아쉬워 몇 번이고 전화를 이어갔던 밤. 그 시간의 공백을 홀로 견뎌 내야 하는 것은 고독하고 외로운 일이다. 당신의 목소리 대신 작은 탄식으로 아침을 시작하게 되었고, 울리지 않는 휴대폰을 괜히 들었다 놨다 한다. 투정을 부릴 유일한 사람이 없어져 마음에 먼지가 쌓여 숨쉬기 답답한 날들이 이어진다. 원래 혼자였던 내가 다시 혼자가 되었을 뿐인데 적막함의 깊이가 달라져 나를 짓누른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일상이 당연하게 느껴진다는 것은 혼자 남게 되는 것이 낯설게 되는 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사랑한 시절이 야속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공백을 채워줄 일을 애써 만들어 본다, 몸을 움직여 운동을 하고, 괜히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본다. 낯선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과 대화를 해보고 시끌벅적한 곳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결국 남는 것은 헛헛한 마음뿐이었다. 잠시 당신을 잊었다 싶으면 벌이라도 주는 듯이 당신이 배로 찾아왔다. 결국 혼자 이겨내야 하는 일이었다. 우리 사랑을 애도하며 공백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었다. 때때로 당신 생각이 들 때면 잠시 적적해졌다가 다시 정신을 깨우고, 당신의 소식이 궁금해 SNS를 들여다보다가도 이내 마음을 거두는 일. 당신을 꿈을 꾸다 마주한 허무한 아침도 얼른 깨어 현실을 살아야 하는 일. 밤이 찾아오면 잠시 울다 잠에 지는 일. 이런 하루들이 쌓여 언젠가는 당신이 작아지고 옅어질 것이라 믿는 일. 누구에게도 터놓고 말할 수 없는 내가 겪는 이별 후유증이다.      


 애석하게도 사랑의 뒷면은 외롭고 공허해서 여름에도 왼쪽 언저리가 시린 일이다. 그렇지만 그 공백을 억지로 채운다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안다. 나는 이제 당신의 자리를 그냥 그대로 두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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