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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Dear. blank 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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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은 May 29. 2024

Dear. (      )     


 요즘 마음이 참 싱숭생숭해. 어릴 때 나는 꿈이랄게 딱히 없었던 것 같아. 그냥 별다른 계기 없이 경찰이 되겠다고 결심했어. 그렇게 대학교에 진학해서 시험도 준비했는데 그 길이 내 길이 아니었던 거야. 그때의 막막함이란.... 쭉 한 가지 길만 걷던 사람이 그 길의 끝에 섰을 때 기분이 어떤지 알아? 길이 보이지 않으니 두렵지, 앞으로는 나아가야 하는데, 새 길을 찾아야 하는데 도무지 방법은 모르겠지, 새로운 길이 정답이라는 보장도 없지. 그야말로 그냥 눈앞이 캄캄했어. 아니 정확하게는 망했다 싶었지. 실패한 인생 같았어. 그동안의 시간이 모두 헛되다고 생각했고, 한길만 보면서 걸었던 나를 원망했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능력도 없고, 그렇다고 꿈도 없었으니 할 수 있는 건 도피밖에 없었어.    

  

 나도 이렇게 오래 도피하게 될 줄은 몰랐어. 그사이에 새로운 길이라도 찾을 줄 알았지. 꿈이 생길 줄 알았지. 그런데 그게 막 어릴 때처럼 금방 생기는 게 아니더라. 그냥 피곤하다는 핑계로 퇴근 후에는 늘 쓰러지기 바빴고, ‘이 정도 일이면, 이 정도 생활이면 그래도 편하지’라고 안일한 생각을 하면서 지냈던 것 같아. 그러다 보니 벌써 4년이나 흘렀어. 나 참 미련하고 답답하지?     


 그래도 작년부터 뭔가 하고 싶은 게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어. 정확히는 지금 하는 일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진 것 같아. 어쩌면 다시 도망가고 싶은 거지.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나한테는 정말 큰 일이야. 그런데 이제 여기서부터 갈팡질팡하는 내 마음의 시작점인 것 같아.     


 얼마 전에 책을 읽었어. 나랑은 잘 맞지 않는 책이었는데 이 한 부분이 되게 공감이 되더라. 요즘 사람들이 깊이를 잃고 있다고. 짧은 형태의 미디어에 많이 노출되어 있고, 전환이 워낙 빠른 세상이다 보니 깊이를 잃어가고 있대. 뉘앙스는 조금 다르지만, 꼭 나를 보고 하는 말 같더라. 생각해 보면 나는 늘 그랬어. 한 가지를 깊이 파고들기보다는 이것 조금, 저것 조금 해보고 뭐 하나 끈기 있게 한 적이 없었어. 여태 깊이 없는 삶을 살았다니. 나는 그래서 이렇게 얕은 사람인 걸까.      


 어쨌든 지금 내 마음이 싱숭생숭한 이유도 깊이랑도 관련 있는 것 같아. 뭔가를 하고 싶다가도 금방 흥미를 잃어버리고, 걱정으로 의욕을 덮어버리게 돼. 그러다 보면 다른 걸 찾고, 그것도 깊이 파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 같아. 이런 마음으로 뭔가를 시작해 봐야 결과가 뻔하니까 시작이 망설여지는 게 아닐까 싶어. 내가 나를 아는 거지.     


 지금 나는 또 길을 잃은 걸까? 아니면 길을 잘 찾고 있는 걸까? 어떤 길을 선택해야 조금 덜 후회할 수 있을까. 나는 도무지 정답을 모르겠지만 마침내 내가 어떤 길을 선택한다면, 그 길의 끝에서는 반드시 웃고 있었으면 좋겠어. 아주 환한 빛으로 가득한 곳이었으면 좋겠어.      


너는 어떤 길 위에 서 있을까. 


그 길이 너를 웃게 하는 길이길 바라며 J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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