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한국어, 아빠는 중국어, 세상은 일본어

by 링제

"엄마! 아빠가 자꾸 나한테 '떨어지마'라고 하는데 이거 틀린 거지, 맞지?"


중국인 남편이 초 깔끔쟁이라 과자나 음식들을 바닥에 '떨어트리지 말고 먹어'라고 한다는 것이 항상 아이에게 '떨어지마'라는 어색한 한국말을 한다.


아이가 만 5살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이 말에 대해 별 반응이 없었는데, 얼마 전에는 목욕하고 나오면서 아빠의 한국어에 대한 문법적 오류를 지적한다.


이렇듯 만 다섯 살 우리 아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세, 네 개의 언어를 넘나 든다.

오늘만 해도 슈퍼에서 돌아오는 길에 공원에서 혼자 놀다 심심했는지, 거기서 놀고 있는 일본 친구들에게 다가가 '잇쇼니 아소보(一緒に遊ぼう)'라며 말을 건다.


날 때부터 단일민족국가인 한국에서 태어난 나는, 새삼 아이의 언어 능력이 신기할 따름이다.

부럽기도 한 반면, 어떻게 아이를 둘러싼 이 모든 언어를 성인까지 잘 끌어나갈 수 있을까 걱정도 태산이다.



어느 날은 한국어, 어느 날은 중국어, 또 어떤 날은 일본어 혹은 영어로 세상을 해석하며 자라는 아이를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아이가 커가며 경험하게 될 언어적 정체성은 어떤 모습일까?
혹시 언어를 하나도 완벽하게 못한다고 스스로를 혼란스러워하게 되진 않을까?


하지만 다행히도, 이런 다중언어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언어 발달에 대한 연구들은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언어는 나누는 것이 아니라, 더해지는 것이다.”

캐나다의 언어학자 엘렌 비알리스(Ellen Bialystok)는 이중언어 또는 다중언어를 사용하는 아이들이 인지 유연성(cognitive flexibility)이 더 뛰어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즉, 여러 언어를 오가며 사용하는 경험은 단지 언어 자체의 능력만이 아니라, 아이의 문제해결력, 주의 전환 능력,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는 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Bilingualism doesn’t confuse children—it enhances their executive function.”
(이중언어 환경은 아이를 혼란스럽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의 실행 기능을 강화한다.)


또한 UNESCO는 다국어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문화 간의 이해, 공감, 다양성에 대한 개방성이 높다고 보고했다.
그저 ‘말을 잘한다’는 수준을 넘어서, ‘세상을 더 넓게 보는 눈’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쉽지만은 않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세상이 각기 다른 언어를 말하는 환경 속에서, 어떤 언어를 언제, 어떻게, 왜 사용해야 하는지를 배우는 건 어른도 헷갈리는 일이니까.




하지만 아이는 오늘도 씩씩하게 말한다.
“엄마, 떨어지마는 틀린 말이야.”
아빠의 한국어를 교정해 주며, 동시에 세 가지 언어로 하루를 살아낸다.


나는 그저 이 모든 여정을 함께 걷는 '언어 안내자'가 되어 주면 된다.
언어 하나로 정체성을 정의하는 시대는 끝났다.
지금 우리 아이가 자라는 이 집안에서는,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그리고 영어까지 —
모두가 그 아이의 언어이고, 모두가 그 아이의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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