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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지윤서 Feb 12. 2022

혼밥의 즐거움을 그대에게

소박하고 평화로운 부부의 밥상을 꿈꾸며

오십이 넘고 혼자 있을 때면 볶음 요리를 즐겼다. 냉동실에 쟁여 놓은 차돌박이 서너 장을 꺼내 저민 마늘과 함께 달달 볶다가 자투리 야채들을 넣고 센 불에서 휘리릭-. 볶음 요리는 만들기도 쉽지만 밥 없이도 포만감이 커서 한 접시만으로도 훌륭한 식사가 되었다. 게다가 이 단순한 음식에 테이블 매트와 수저 받침대를 더하면 그야말로 깔끔하고 우아한 밥상 완성! 볶음 요리는 그렇게 혼밥이지만 근사한 한 끼를 내게 선사했다.  




오십이 되기 전에는 혼밥을 해야 하는 날이면 남은 반찬을 내어 비벼 먹거나 조리가 필요하지 않은 음식으로 때웠다. 고구마, 빵, 과일 같은 것. 조리를 한다 해도 최소한의 노동력을 요하는 음식으로 대체했다. 라면이나 떡국 같은 것. 그러다 폐경을 맞았다. 반백에 접어든 시기. 누군가는 여성성을 잃어버려 슬프다는 폐경이 내게는 묵은 체증이 내려가듯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었다. 거칠 것 없는 삶을 꿈꾸었던 소녀에게 생리는 자유를 박탈한 족쇄와도 같았다. 한 달에 일주일, 내 몸인데도 무엇으로도 거부할 수 없는 위력에 사로잡힌 시간은 무력감과 절망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지금처럼 일회용 생리대 흔하던 시절이 아니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생리를 터부시하고 불결하게 여기기까지 하는 사회 분위기는 그런 절망감에 기름을 부었다. 다음 생에는 결코 여자로 태어나지 않으리라!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며 그런 다짐은 말짱하게 잊혔지만 그렇다고 불편함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폐경을 더없이 행복하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폐경 이후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저혈압이던 혈압은 고혈압의 기미를 보이고 골밀도도 현저하게 떨어졌다. 게다가 수시로 찾아드는 열감에 안구건조증까지... 무엇이든 일장일단이 있다더니 폐경의 복병은 다름 아닌 신진대사의 위축이었다. 비로소 육체의 쇠락을 실감했다. 나이 든 사람들이 왜 먹거리에 대해 말이 많아지고 보약을 찾는지 알 것 같았다. 약이라고는 몸에 좋다는 보약조차도 입에 대지 않았는데 미네랄과 비타민, 칼슘제를 슬금슬금 사들이기 시작했다. 주춤했던 운동도 다시 챙기기 시작했다. 실내 자전거에 올라 페달을 밟고 공원을 열심히 돌았다. 먹거리에도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간편식과 탄수화물을 줄이고 야채 위주의 식사를 해나갔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졌다. 식구들이 집에 머물며 식탁에는 매끼마다 생선과 고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더불어 깔끔하고 우아한 혼밥의 시간도 사라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식과의 날들은 애틋하고 남편과의 날들은 아득하다. 자식들은 집을 떠날 날이 멀지 않았고, 남편은 도통 집 밖을 나설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다. 30여 년 전, 헤어지는 시간이 애틋해 결혼을 선택했던 여자가 떠올리는 생각이라고 믿기에는 극명한 반전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반전의 8할은 밥상을 차려야 한다는 부담감이 가져다준 것이다. 집안일 중 남편이 자발적으로 나서는 일은 청소와 설거지다. 그것도 고마운 일이지 단연코 나서 주길 바라는 일은 밥을 짓는 일이다. 어찌 보면 혼밥이 각별하게 즐거웠던 이유는 편과 아이들의 입맛과 영양을 전혀 고려하지 않아도, 다양하지 못한 식단에 죄책감을 가지지 않아도 좋아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다채롭지 않아도, 영양에 예민하지 않아도 좋은 밥상. 혼밥이 즐거웠던 이유는 바로 그러한 가벼움에 있지 않았을까.


신혼시절에는 밥상을 차리는 데 꼬박 3시간이 걸렸다. 그러다 보니 6시에 퇴근해 집에 도착하면 10시가 다 돼서야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대단한 요리를 한 것도 아니었다. 밥과 된장찌개에 콩나물무침과 시금치나물, 그리고 양배추 샐러드에 동그랑땡. 그게 상차림의 다였다. 그럼에도 요리를 전혀 해본 적이 없었던 까닭에 시간이 그토록 오래 걸렸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지만 당시에는 요리를 동시다발로 해야 한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음식을 하나 장만하고 나면 다시 하나를 시작하는 식이었다. 사랑의 힘이 아니었더라면 그토록 오랜 시간을 투자해 저녁상을 마련하지도, 배고프면 짜증이 솟구치는 남편이 화를 억누르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 준비 없이도 1시간이면 뚝딱 밥상을 차려내는 신공을 얻게 되었다. 놀랍고도 위대한 시간이여, 만세!




아침은 각자 간단히, 점심과 저녁은 취향껏 한 끼씩 돌아가며 차리는 소박하고 평화로운 둘만의 밥상. 이 풍경을 실현하기 위해 올해는 자주 집을 비워볼 이다. 신혼시절의 내가 그랬듯 남편에게도 3시간의 투자 없이는 1시간 만에 밥상을 차려내는 일은 그림의 떡일 테니까. 그 시간이 쌓이고 쌓이면 남편도 언젠가는 깔끔하고 우아한 혼밥의 즐거움 마주하게 되리라. 그런 날을 꿈꾸며 오늘도 집밥을 위해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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