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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지윤서 Jul 03. 2022

한성백제역과 몽촌토성역 옆 '소마미술관'

한지 같은 어른이 되고 싶어!

소마미술관의 가장 큰 매력을 꼽으라면 미술관 외에도 둘러볼 곳이 많다는 사실을 꼽겠다. 야외 조각공원을 비롯해 좌측으로는 평화의 광장과 몽촌토성, 몽촌역사관이 있고 우측으로는 한성백제박물관이 있다. 특히 야외 조각공원은 43만 평의 대지에 200여 점에 이르는 조각 작품이 설치되어 있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뿐인가. 미술관 앞 대로변을 건너가면 방이동 먹자골목과 롯데월드를 만날 수도 있다. 1박 2일을 꼬박 보내어도 좋을 만큼 광활함을 품고 있는 곳. 바로 소마미술관이다. 


소마미술관은 9호선 한성백제역과 8호선 몽촌토성역에 위치해 있다. 기왕 찾는다면 9호선으로 방문할 것을 추천한다. 9호선(2번 출구)과는 지하로 출입구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지하통로에는 이름도 있다. 멀티홀. 22.8미터에 이르는 통로에는 이찬주 작가의 작품 <Connected tennel>이 전시되어 있다. 공사 현장에서 흔히 쓰이는 각목과 철골을 가져다 제작한 작품은 재료를 알기 전까지는 그것들이 그리 평범한 재료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작품이 빛의 세계를 연상시키듯 화려했기 때문이다.


소마미술관은 2004년 '서울올림픽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가 2년 뒤 소마미술관으로 이름을 바꿔 재개관했다고 한다. 소마(SOMA)는 'Seoul Olympic Museum of Art'의 약자다. '몸'을 뜻하는 그리스어이기도 하다(올림픽공원 소마미술관 - Daum 백과 참조). 그래서 소마미술관에서는 매년 몸을 주제로 한 전시와 스포츠아트 관련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이곳에서 재미있는 작품을 만났다. 정광희 작가의 <우리는 어디로 번질까>. 소마미술관에서 열린 '드로잉 나우'전에서 만난 작품이었는데 엎어진 달항아리 하나와 산산이 부서진 항아리, 그리고 바닥으로 질펀하게 번진 먹물이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케 하는 작품이었다.


작품을 보고 처음 시선이 머문 곳은 달항아리였다. 하나는 와장창, 하나는 엎어진 모습. 그다음으로 시선이 머문 곳은 먹물의 번짐이었다. 항아리의 모양새에 따라 번짐의 모양이 확연히 달랐다. 깨진 항아리 주변으로는 먹물이 사납게 튀었다. 하지만 사납고 날카로운 만큼 강렬했다. 단박에 시선이 사로잡혔다. 엎어진 항아리 주변으로는 먹물이 강물처럼 흘렀다. 무늬가 둥글둥글했다. 영역도 넓고 색도 옅었다. 강렬하진 않지만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작가가 관람객에게 보이고 싶었던 것은 먹물의 이야기였을 것이다. 제목이 그걸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어디로 번질까'. 작품은 먹물을 바라보며 당신의 마음이 어디로 번지고 있는지 들여다보라고 말을 거는 듯했다. 지인과 나란히 서서 도자기를 보고 먹물의 번짐을 바라보았다. 지인은 번짐에 마음을 빼앗긴 모양이었다. 나도 내가 어디로 번질지 궁금하네. 지인이 중얼거렸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무늬를 바라보다 바닥에 시선이 머물렀다. 한지. 먹물을 고스란히 품어 무늬로 새겨낸 건 한지였다.


일찍 죽음을 생각했다. 주변에 존경할 만한 어른이 없다는 사실은 어린 나이에도 삶보다는 죽음을 생각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생각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가끔, 죽음을 떠올리고 살지 않았더라면 어떤 인간이 되었을까 생각할 때가 있다. 틀림없이 욕심 많고 옹졸한 인간이 되었을 것이다. 죽음에 이르러 결코 가져갈 수도 없는 것들을 탐하느라 시간을 허비했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요즘 자주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죽음을 생각한다. 덕분에 지금 살아서 보고 있는 모든 것에 경외감을 느낀다. 내게 죽음은 두려움이 아니라 삶의 원천이다. '내일 죽는다면'이라는 가정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에 눈을 맞추게 하고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한다. 내게 그 원천을 반듯하게 지켜내게 하는 힘은 아이들이다. 누군가는 종교가 삶의 지침이 되고 꿈이 지침이 되기도 한다지만 내게는 아이들이 언제나 삶의 지침이다.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 너그럽고 인자한 어른, 그런 어른으로 늙어가다 조용히 눈을 감는 것. 내게 소망이 있다면 그것만이 유일하다.


타일이나 시멘트처럼 굳건한 어른이기를 원하지 않는다. 한지처럼 유연하고 너그러운 어른이고 싶다. 들고나는 공기를 받아들여 썩지 않는 한지처럼 주변의 모든 것에서 배우고 깨달아 부패하지 않는 어른, 깨어지고 엎어져 쏟아진 먹물마저도 아름다운 무늬로 새겨내는 한지 같은, 그런 어른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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