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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지윤서 Jul 13. 2022

신용산역 옆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사진작가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작품과 마주하다

지하철을 이용해 미술관 투어를 하기로 마음먹고 정한 규칙은 딱 하나였다. 지하철 역에서 도보로 이동이 가능할 것. 마침 용산역 아이파크몰에 갈 일이 있어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을 찾았다.


아모레퍼시미술관은 1호선 용산역과는 한 블록 건너에, 4호선 신용산역과는 지하로 연결되어 있다. 지하 통로는 4호선 신용산역 2번 출구로 걸음을 옮기다 보면 왼편에서 만날 수 있다. 지하 통로 천장에는 불빛이 반짝반짝거렸는데 이 불빛을 지상으로 나왔을 때 다시 만났다. 건물 상층부에 자리한 중정 천장에서. 불빛은 바람결에 나부끼듯 일정한 패턴으로 점등을 반복했다.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불빛은 어찌나 예쁘던지 뒤돌아 잠시 걸음을 멈추게 했다. 마치 불빛을 향해 날갯짓하는 불나방처럼.    


지하 통로로 접어들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아모레퍼시픽 신사옥 1층에 올랐을 때 탄성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거대한 건물 속에서 마주한 광활한 벌판이라니! 건축을 담당한 이는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 영국 출신의 건축가로, 현존하는 건축가 중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물이라고 한다[[포토뉴스] 아모레퍼시픽 신사옥, ‘절제 미학‘ 보여주는 용산 랜드마크 (thevaluenews.co.kr) 참조]. 건축가의 의도대로 크리스털 알루미늄으로 마감한 외벽은 간결하고, 탁 트인 실내는 개방감이 탁월했다. 1층에는 도서관도 있고 카페도 있고 기념품숍도 있다. 누구나 출입이 가능해 마치 쇼핑몰처럼 자유로운 분위기가 가득했다. 도서관과 미술관은 사전예약으로 이용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방문한 날에는 예약 없이도 입장이 가능했다[아모레퍼시픽 신사옥에 대한 비판글도 읽고 싶다면 브런치 작가 '글쓰는 건축가'의 글[아모레퍼시픽 신사옥 (brunch.co.kr)]을 참고하시길.


미술관은 지하 1층에 위치해 있다. 방문한 날에는 사진작가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는데 입장료가 꽤 비쌌다. 17,000원. 적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맛있는 파스타 한 그릇을 주문했다 생각하고 기꺼이 지불했다.


전시실은 모두 6곳. 천장이 높아서인지 전시실도 개방감이 상당했다. 여섯 개의 전시실은 '조작된 이미지', '미술사 참조', '숭고한 열망'이라는 큰 주제들로 구성되어 있다.


작품들은 그 크기만으로도 감동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대부분이 관람객의 키를 훌쩍 넘기는 크기였는데 재미있는 것은 그 크기 덕분에 뒤로 물러나 보았을 때와 다가가 보았을 때 작품이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작품은 영락없이 회화였다. 하지만 다가가서 바라보면 영락없는 사진이었다.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위치한 아마존 물류센터를 촬영한 <아마존>이나 선물거래소의 심장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시카고 선물거래소 III>, 또는 파리 최대 규모의 아파트를 찍은 사진 <파리, 몽파르나스>가 좋은 예이다(아래 사진 참조).


<아마존>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든 상품이 식별 가능할 만큼 선명한데 이는 각각의 선반을 따로 찍은 후 디지털로 합성하는 방식을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시카고 선물거래소 III>는 가장자리의 좌석들이 가운데의 팔각형을 둘러싸고 있어서 마치 로마시대 원형경기장을 보는 듯한데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제는 자본주의라는 원형경기장에서 너나없이 사투를 벌이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파리, 몽파르나스>는 건물 건너편 두 군데 시점에서 촬영한 이미지를 조합한 것이라는데 조합하는 과정에서 소실점을 제거해 모든 창문의 크기가 일정하게 보이도록 연출했다고 한다. 균일한 격자구조 속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개인의 삶. 이 또한 다채로운 삶을 떠올리게 한다.   


이들 작품 외에도 사진의 일부를 뚝 떼어내 들여다보면 해학적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도 있다. 예를 들자면 <회상>이나 <정치학 II>, <F1 피트 스톱 I> 같은 작품(아래 사진 참조).


<회상>은 바넷 뉴먼의 작품 <인간, 영웅적이고 숭고한>을 게르하르트 슈뢰더, 헬무트 슈미트, 앙겔라 메르켈, 헬무트 콜이 동시에 보고 있는 장면으로 연출한 작품인데 이들이 실제로 만났는지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특히 슈미트가 뿜어내는 담배 연기를 바넷 뉴먼의 작품에 활용한 대목은 익살스러움을 선사한다. 


<정치학 II>는 작가가 독일 의회의 지명 투표를 몇 달에 걸쳐 따라다니며 하원 의원들의 모습을 깊이 있게 관찰한 시간의 결과물이라고 한다. 이 작품은 보는 순간 <최후의 만찬>을 떠올렸는데, 아니나 다를까 작품 해설에도 그리 쓰여 있다. '작품 폭을 가득 채운 13명의 하원 의원들이 모여 열띤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최후의 만찬>의 고전적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한다'라고. 이 작품은 특히 뒷 배경에 에드 루샤의 1989년작 <11시 5분>을 활용했다고 하는데 다른 작가의 작품을 자신의 작품에 녹여 새롭게 연출한 솜씨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F1 피트 스톱 I>은 F1 경기 시작 전 두 팀이 한창 정비 중인 순간을 포착했는데 상부에는 유리창 너머로 관람객들이 내려다보고 있고, 아래 좌우로는 흰색과 빨간색의 유니폼을 입은 정비원들을 배치함으로써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특히 이 작품은 각각의 장면을 뚝 떼어놓아도 또 다른 작품이 탄생할 것 같아 흥미로웠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바레인 I>(아래 사진 참조). 멀리서 보고 멋진 추상화 한 점을 발견했다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이 역시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사진이다. 작품을 가까이 들여다보니 그제야 도로 위 차량과 공터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마치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문장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2005년 바레인에서 열린 F1 경기장의 트랙을 헬리콥터에서 다양한 각도로 촬영해 그 사진들을 조합하여 이미지를 구축한 것이라고 한다. 작품에 현시대의 특징을 담고자 하는 거스키의 은유가 빛나는 작품으로 아스팔트 도로와 그 위를 달리게 될 차량들의 연료, 사막 국가의 부유함이 석유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한다.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출생한 거스키는 인류와 문명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은 대규모 작품들을 선보여온 현대사진의 거장이라고 한다. 사진가의 집안에서 자란 그는 어려서부터 사진이라는 매체와 스튜디오 환경에 익숙했다는데 초기에는 담담한 시선으로 주변의 풍경을 포착한 반면 1990년대부터는 원거리 촬영 이미지들을 조합하고 편집해 새로운 장면으로 구축하는 작업을 선보여 왔다고 한다. 또한 추상 회화나 미니멀리즘 조각의 특성을 작품에 참조하는 등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적인 작업을 통해 정형화된 사진의 틀을 점진적으로 확장하고 있다고 한다[EXHIBITION l APMA (amorepacific.com) 참조]. 


그래서인지 작품들은 사진이라기보다는 회화에 가까워 보였다. 예술이란 의도와 해석에 의해 탄생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그의 사진은 재현의 기능보다는 예술의 가능성에 더 집중하는 것으로 보였다.


이번 전시는 1980년대 중반 초기작부터 2022년 신작까지, 거스키의 작품 세계 전반을 아우르는 사진 40여 점을 만날 수 있는 기획 전시이다.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전시이기도 하다니 작품의 압도적인 스케일을 직접 맛보고 싶은 관람객이라면 한 번쯤 방문해 보기를 권한다. 전시는 8월 14일까지[이용안내 l APMA (amorepacific.com)].



<아마존>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든 상품이 식별 가능할 만큼 선명한데, 이는 각각의 선반을 따로 찍은 후 디지털로 합성하는 방식을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시카고 선물거래소 III>는 가장자리의 좌석들이 가운데 팔각형을 둘러싸고 있다.
<최후의 만찬>을 연상케 하는 작품 <정치학 II>
<F1 피트 스톱 I>은 F1 경기 시작 전 두 팀이 한창 정비 중인 순간을 포착했다.
<회상>은 바넷 뉴먼의 작품 <인간, 영웅적이고 숭고한>을 게르하르트 슈뢰더, 헬무트 슈미트, 앙겔라 메르켈, 헬무트 콜이 동시에 보고 있는 장면으로 연출한 것이다.
<파리, 몽파르나스>는 파리 최대 규모의 아파트 건물을 건너편 두 군데 시점에서 활영한 이미지들을 조합한 작품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 <바레인 I>


https://naver.me/F40dMR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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