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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지윤서 Dec 21. 2022

토끼에게도 빚을 졌다니

지금은 안경을 끼고 있지만 젊어서는 렌즈를 꼈다. 아니, 젊어서라는 표현은 막연하겠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도 렌즈를 끼지는 않았으니까. 그보다는 '화장을 시작하고서'라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화장을 하기 전까지는 렌즈를 끼지 않았으니까. 화장을 시작하고 렌즈를 끼기 시작한 것은 화장을 하기 전과 하고 난 후의 모습이 스스로가 보기에도 꽤 달라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눈이 그랬다. 아이섀도와 아이펜슬로 치장한 눈은 짙은 쌍꺼풀이 돋보여 평소보다 두 배는 커 보였고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 눈을 가리고 싶지 않아 렌즈를 끼기 시작했다.


안과에서 처음 권한 렌즈는 하드렌즈였다. 난시가 있어서였다. 그런데 하드렌즈는 이물감이 심했다. 그럼에도 선뜻 하드렌즈를 구매했다. 그랬던 이유는 난시 교정에는 하드렌즈가 더 낫고, 며칠 사용하면 적응될 거라는 의사의 말 때문이었다. 그렇게 렌즈를 구입하고 심한 이물감에도 눈에 렌즈를 집어넣었다. 하지만 끝내 하드렌즈에는 적응하지 못했다. 처음이라 그렇다고 합리화를 해가며 나흘을 버텼지만 도저히 이물감의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 결국 일주일을 버티지 못하고 백기를 들고 말았다. 이후 하드렌즈는 두 번 다시 쳐다보지 않았다. 대신 소프트렌즈를 택했다. 안구건조증이 생길 수 있고 난시 교정도 덜하다고 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화장을 하고 안경을 쓸 수는 없었으니까.


하드렌즈의 이물감으로 고생한 탓인지 소프트렌즈를 끼면서도 조금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소프트렌즈를 끼고서야 '소프트'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게 되었을 만큼 소프트렌즈의 착용감은 남달랐다. 이물감을 전혀 느낄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미세한 티끌 하나에도 극심한 고통을 유발했던 하드렌즈와는 달리 날아드는 먼지에도 그리 큰 자극을 유발하지 않았다. 이후 오십이 되기 전까지 화장을 할 때면 어김없이 렌즈를 착용했다. 아무 '죄책감' 없이.


이제 와 갑자기 렌즈를 떠올리며 죄책감을 갖게 된 것은, ISO 표준서를 보다 토끼에 관한 내용을 접했기 때문이다. 렌즈를 끼면서도 렌즈가 어떻게 세상에 나오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렌즈를 미처 의료기구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느 생필품을 대하듯 그렇게 렌즈를 대하고 생필품을 사듯 그렇게 렌즈를 구입해 왔다. 그런데 렌즈는 생필품이 아니었다.


'의료'라는 용어가 붙은 모든 제품은 세상에 그냥 나오지 않는다. 반드시 안정성을 검증받고 세상에 나온다. 그러므로 콘택트렌즈도 그 과정을 피할 수 없다. 자극의 정도와 안구 내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실험을 거쳐야 한다. 물론 매번이 아니라 새로운 재질의 제품이 개발될 때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 실험에 이용되는 동물이 바로 토끼이다. 토끼의 눈은 예로부터 안구 조직과 접촉하는 물질의 자극 특성을 평가하는 데 사용되어 왔다고 한다. 특히 그중에서도 알비노 토끼는 눈에 멜라닌 색소가 없고 쉽게 검사가 가능해 오랫동안 안구 자극 연구에 활용되었다고 한다.


소 5일에서 길게는 20일, 영문 모를 물질을 눈에 낀 채 안구 변화를 탐색당하고 그 물질을 제거한 후에는 각막, 결막, 홍채와 수정체의 변화를 검사받기 위해 살처분당한다는 토끼. 몰랐으면 모를까 알고 나니 한숨이 절로 난다. 도대체 인간의 안락과 편의는 얼마나 많은 생명에게 빚을 진 걸까. 해가 거듭될수록 고개를 빳빳이 곧추세울 일보다 숙일 일이 많아진다. 토끼에게마저도 빚을 졌다는 사실에 오늘도 고개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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