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심미안과 그것을 알아챈 화가의 가르침을 엿볼 수 있는 예술 영화
가난한 농가의 부엌. 부지런히 야채를 썰고 있는 한 소녀가 보인다. 엄마의 부름에 고개를 드는 소녀. 입매가 어딘가 낯이 익다. 아, 스칼렛 요한슨. 잠시 영상을 멈추고 제작 연도를 살폈다. 2003년.
영화에 대한 아무 정보 없이 영화를 접할 때면 종종 행운을 낚는다. 이번에는 스칼렛 요한슨의 20년 전 모습을 보게 되었다. 예기치 않은 만남. 짜릿하다.
넷플릭스에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보았다. 영화를 찾아보게 된 것은 전적으로 지인이 그린 동명의 그림 때문이었다. 그림 제목과 같은 제목의 영화가 있다는 사실만 떠올렸을 뿐 넷플릭스에 있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있었다. 그렇게 보게 된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영화는 가난한 농가의 한 소녀가 어떻게 유명한 화가의 그림 속 모델이 되는지 그 과정을 보여준다. 그런데 영화를 보며 내내 흥미롭게 다가왔던 건 그 과정보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의 삶과 색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심미안을 발견하는 소녀의 이야기였다.
후원자가 아니고는 생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화가. 그 때문에 그림을 빼고는 모든 면에서 무력한 화가. 여섯 명의 아이와 아내, 장모, 하인들까지 수십 명의 생계를 책임지는 화가에게 그림은 예술 이전에 생계 수단이었다. 후원자의 입맛에 맞춰 그림을 그리는 화가. 그러다 소녀를 만난다.
소녀는 가난 때문에 화가의 집에 하녀로 들어오게 되었다. 화가의 작업실 청소를 맡게 된 소녀는 그곳에서 자신도 몰랐던 심미안을 발견한다. 구도와 색을 판별하는 눈. 소녀의 심미안을 알아챈 화가는 소녀에게 색을 섞는 일을 시킨다. 당시 유화는 광물을 통해 색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일일이 광물의 가루를 개고 섞어야 했다. 소녀와 함께 물감을 만들며 화가는 작은 기쁨을 맛본다.
이 영화의 백미는 그런 장면들이다. 조심스레 기름을 섞으며 물감을 만들고, 구름을 바라보며 미묘한 색의 차이를 발견하고, 소녀가 무심히 치워 놓은 의자를 보고 완성한 그림을 수정하는 화가의 모습 같은 것.
흥미롭게 다가온 영화 덕분에 화가에 대해서도 찾아보게 되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그린 얀 베르메르는 1660년대 네덜란드 화가로, 사실적이고 자연스러운 빛의 효과를 표현하는 능력이 탁월했다고 한다. 덕분에 후대에 사실주의와 인상주의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얀 베르메르에 대해서는 작품에 얽힌 이야기나 사생활이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고 남긴 작품도 단 35점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후대의 호기심을 유독 자극하는 작품이 바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라고 한다. 이는 허름한 옷차림의 소녀가 값비싼 진주 귀걸이를 하고 있어서이기도 하고, 진주의 하이라이트를 단 두 번의 붓 터치로 표현했기 때문이라고(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67362&cid=44533&categoryId=44533 참조).
자료를 찾아보니 작품 속 소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그림 속 소녀는 딸이거나 아내일 거라는 추측이 많은데 정작 영화의 토대가 된 원작 소설을 쓴 작가(트레이시 슈발리에)는 하녀를 '소녀'로 택해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고 한다(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167118&cid=60577&categoryId=60577 참조).
작가는 소설에서 화가의 집과 후원자와 상인의 사회적 가식, 계급적 장벽과 사회적 만행이 팽배한 그 시대의 사회상을 담는 데 공을 들였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소설이 보여주고자 했던 부분을 영화가 어느 정도는 성공적으로 담아냈다는 생각이 든다.
공식 영화 소개를 보니 "걸작이 된 그들의 사랑은 닿을 수 있을까"라는 문구를 달아놓았다. 고개를 갸웃했다. 내게는 그들의 호감이 에로틱하다기보다는 플라토닉에 가까운 순수한 교감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내게 멜로 영화라기보다는 소녀의 심미안과 그것을 알아챈 화가의 가르침을 엿볼 수 있는 예술 영화이다.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