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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지윤서 Jan 06. 2023

부부라는 이름으로

2023 신춘문예 당선작 두 편

올해도 어김없이 신춘문예 당선작을 찾아 읽었다. 그중 가장 먼저 찾아 읽은 작품은 조선일보의 '쥐'와 한국일보의 '난간에 부딪힌 비가 집안으로 들이쳤지만'이었다. 이 두 편을 먼저 읽은 이유는 '2관왕'이라는 기사 때문이었다(한예종, 2023년도 신춘문예 4명 당선 - 교수신문 (kyosu.net) 참조). 아니, 한 곳도 당선을 꿈꾸기 어려운 신춘문예에서 두 곳에나 당선이라니! 당선자가 너무도 궁금했다.


작가는 기악과를 중퇴하고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예술경영학을 전공한 83년생 여성이었다. 그러니까 문학을 전공한 이가 아니었다. 그런데 어떻게 소설을 쓰게 되었을까. 당선소감을 읽고서야 그 연유를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었다([2023 신춘문예] 가족이 준 소중한 유산… 인내·성실함으로 쓰겠다 - 조선일보 (chosun.com) 참조).


두 편 중 조선일보 당선작을 먼저 찾아 읽었다. '쥐'라는 제목이 한국일보 당선작 '난간에 부딪힌 비가 집안으로 들이쳤지만'이라는 제목보다 궁금증을 더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쥐'라는 단어는 그 어떤 상징성도 품을 수 있는 단어가 아니던가.


'쥐'는 연극적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해군 관사라는 배경이 그랬고 '쥐'를 둘러싸고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대화가 그랬다. 심사위원들은 소설에 등장하는 쥐를 '보이지 않는 힘'으로 읽었지만 나는 '진실'을 대입해 읽었다. 그렇게 대입해 읽으니 소설은 더 연극적으로 다가왔다. 그 연극적 분위기 속에서 소설적으로 다가오는 건 주인공의 심상이었다. 진실과 마주할까 두려움으로 일렁이는 심상. 부부라는 이름 뒤에 숨은 비겁.  


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3/01/02/YVULNAEXXJGO3HFCFKU3VTLM7A/

   

'난간에 부딪힌 비가 집안으로 들이쳤지만'을 읽고는 생각이 많아졌다. 사는 동안 한 번쯤은 접했을 법한 비극적 일상이 너무도 고요히 읽혔기 때문이었다. 제목이 왜 그리도 밋밋한가 했는데 다음의 문장을 마주하고는 밋밋한 게 아니라 무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난간에 부딪힌 비가 집 안으로 들이쳤지만, 둘 중 누구도 창문을 닫지 않았다."


아이의 죽음은 어느 부부에게나 가장 큰 비극일 것이다. 소설 속 부부는 한 아이를 잃었지만 남겨진 아이를 위해 부부라는 자리를 끝끝내 벗어던지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부모라는 자리에 충실했던 것도 아니다. 그들에게 일상은 더 이상 누려야 할 시간이 아니라 보내야 할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시간은 중력과 다르지 않다. 강물이 중력에 이끌려 바다로 흐르듯 그들은 시간에 이끌려 각자의 바다로 흐른다. 누군가는 소설을 읽으며 '그럴 거면 헤어져!'라고 소리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끝끝내 부부는 헤어지지 않는다. '마주 앉아 졸아붙은 청국장에 밥을 비벼 먹'는다. 아마도 이후로도 부부는 헤어지지 않을 것이다. 대신 청국장처럼 콤콤한 냄새를 풍기며 비극적 일상 속에 곰삭아갈 것이다. 부부라는 이름으로 부모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는 삶을 그렇게 살아내기도 한다고 소설은 말하는 듯하다. 함께 겪은 비극을 함께 고스란히 겪어낼 때에야 비로소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한다고.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2713050000281?did=NA


작가는 이 소설을 '부모의 삶을 이해하고 싶어 썼다'고 당선소감에서 밝혔다("소설 쓰며 받은 위안을 넘어···소설 속 인물이 안녕하기를" (hankookilbo.com) 참조). 당선소감을 읽고 나니 '쥐'는 비겁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가는 부부에 대해, '난간에 부딪힌 비가 집안으로 들이쳤지만'은 책임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가는 부부에 대해 이야기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더욱 짙어졌다.


문학은 오랜 세월 인간의 소통에 대해 고민해왔다. 소통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상대의 개별성을 들여다보고 이해함으로써 일어난다. 정현종 시인은 이를 '사람들 / 사이에 / 섬이 / 있다 // 그 섬에 가고 싶다'고 노래했다. 소설가들은 여전히 '그 섬'에 가기 위해 '이야기'라는 배를 띄우고 노를 젓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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