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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지윤서 Mar 04. 2023

아빠의 화수분

아이들은 대학에 입학 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첫째는 카페에서, 둘째는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셋째는 영화관에서. 입맛대로 선택한 각각의 자리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시간이 '최저의 돈'으로 환산되는 경험을 했다. 그 경험은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다. 어렵게 번 만큼 소비에 신중하고, 다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이후 아이들은 더 이상 용돈을 받지 않았다. 기특한 일이었다. 하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안쓰러운 일이기도 했다. 직장 생활을 하기 전까지는 어리광을 부려도 좋은데 싶어서였다. 그 때문에 나는 종종 카드를 내미는 '엄카' 찬스를 활용했다. 하지만 남편은 끝내 지갑을 열지 않았다.


그런 남편이 어느 날 자신의 방식으로 지갑을 열었다. 현관 한편에 화수분을 마련한 것이다. 돈이 궁할 때면 언제든 부담 없이 뽑아 쓰라는 말과 함께 '푼돈 화수분'이라는 이름으로. 이름은 '푼돈'이지만 남편에게 지폐는 결코 '푼돈'이 아니다. 남편은 세뱃돈이 아니고는 지폐를 아이들에게 내미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남편은 누군가에게 선물로 지폐를 건네는 일을 영 마땅찮아하는 사람이다. 그런 이유는 1만 원짜리가 아니고는 바지 한 장 사 입지 않는 자린고비 성향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식구끼리 지폐를 주고받으며 자라지 않은 이유가 더 커 보인다. 가족 간에 금일봉을 주고받으며 자란 나는 아이들 생일이면 금일봉을 내민다. 하지만 남편은 케이크를 사 오고 생일축하 노래를 부른다. 남편은 그러한 행위가 진정한 축하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푼돈 화수분'은 남편에게는 큰돈 화수분이자 용돈을 받아가지 않 아이들에게 보내는 남편만의 또 다른 애정 표현인 셈이다.


이번에 해외로 떠나는 막내를 위해서도 남편은 지폐가 아니라 현물을 선물했다. 점원에게 조언을 들어가며 남편이 택한 선물은 향수였다. 남편의 센스에 아이들은 모두 탄성을 질렀다.


남편의 화수분은 이름에 걸맞게 마른 적이 없다. 틈틈이 지폐를 꽂아놓는 남편 덕분이기도 하지만 화수분이 텅 비도록 지폐를 빼어가지 않는 아이들의 센스 덕분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현금이 필요할 때면 언제나 스스럼없이 화수분 속 지폐를 뽑아간다. 남편은 화수분 속 지폐가 몇 장 남지 않으면 다시 지폐를 꽂아놓는다. 현금을 건네지 못하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빠의 화수분은 오늘도 현관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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