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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지윤서 Jul 26. 2023

별이 된 아이에게 띄우는 편지

다큐멘터리 영화 <장기자랑>을 보고

4.16 재단으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다큐영화 <장기자랑>의 상영회에 초대한다고. 장소는 노무현시민센터 지하 2층 다목적홀. 


4.16 재단을 알게 된 건 브런치 이웃 이밍꼬 작가님의 글[인(人;사람)의 세월호 (brunch.co.kr)]을 통해서였다. 종교가 없는지라 나만의 십일조를 나름 실천해 나가고 있는 터인데 의미 있는 기관을 또 한 곳 알게 된 것 같아 반가웠다. 4.16 재단 홈페이지에 들어가 사업소개를 훑었다. 304명의 희생자를 기억하고, 일상이 안전한 사회를  위해 나아가고,  재난 참사를 겪은 지역사회와 피해자의 치유를 위해 노력하고,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청소년과 청년들의 성장을 지원한다는 목표가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후원하게 된 4.16 재단. 


참담하지 않은 참사가 어디 있으랴마는 세월호만큼 참담한 경험은 드물었다. '전원구조'라는 말을 듣고 별일 아닌 듯 보낸 아침 시간은 이후 배 안에 갇힌 아이들의 소식을 내내 뉴스로 접하는 동안 악몽으로 변했다. 지금도 그 시간은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그런 일이 일어난 건가. 정말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게 맞는 건가.


다큐영화 <장기자랑>은 이렇듯 악몽의 순간을 몸소 겪어야 했던 단원고 엄마들이 4.16 가족극단 '노란 리본'을 결성하고 연극 <장기자랑>을 무대에 올리기까지의 과정과 그 과정에서 일어난 희로애락, 그리고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는 희생자 엄마 여섯 명과 생존자 엄마 한 명의 육성을 통해 아무 잘못도 없이, 아무 명분도 없이 참담하게 스러져간 아이들을 엄마들이 어떻게 기억하고 이 사회가 어떻게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지를 담담하게 그린다. 


영화는 종종 유머스러운 장면으로 웃음을 선사하기도 하고, 개개인 간의 유치한 감정싸움도 가감 없이 드러내 보이며 엄마들의 다양한 일상을 보여준다. 어떤 엄마는 매 순간이 아이를 기억하는 여정이어서 머리마저 노랗게 물들이고, 어떤 엄마는 성악가가 꿈이었던 시절을 끄집어내 아이들을 위한 노래를 짓고, 어떤 엄마는 뮤지컬 가수가 꿈이었던 아이를 위해 무대에 서다 자신의 꿈을 발견하고, 어떤 엄마는 생존자 부모임에도 불구하고 해체 위기에 놓인 극단에 끝까지 남아 무대에 오른다. 엄마들에게 연극 <장기자랑>은 천진했던 아이들의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는 시간이자 자신의 아이와 마주하는 시간이다. 그 시간 속에서 엄마들은 아이의 세상에 더 깊이 공감하고 위안을 얻는다.  


이 영화의 미덕은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이어나가고, 끝내 아이들이 도착하지 못했던 제주에까지 다다르는 여정에 있다. 엄마들은 복받치는 설움을 삼키며 제주의 무대에 오르고 자신의 아이를 대신해 장기자랑을 한다. 그렇게 엄마들은 별이 된 아이에게 자신만의 편지를 띄운다. 여기 제주야, 보고 있지?


영화를 보러 가면서도 표현이 너무 버거우면 어떡하나 걱정을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영화는 평범했다. 그 사실이 좋았다. 엄마들의 슬픔을 과장하지도 극적으로 활용하지도 않아 좋았다.  


세월호 참사는 마주하기 힘든 우리 시대의 상흔이다. 그 상흔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유가족들의 마음이 얼마나 무참할지 감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 어떤 말도 그 어떤 손짓도 보태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영화를 보고 나오며 오히려 위로를 받았다. 우리 잘 지내고 있어요, 그런 인사를 건네받은 것 같았다.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보았으면 좋겠다. 


https://youtu.be/lHX7rtSgt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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