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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지윤서 Jun 01. 2024

녹음 봉사와 함께한 나날

아이를 키우며 깊은 인상으로 남은 세상이 그림책이라면 이웃을 돌아보게 한 세상은 녹음 봉사였다. 녹음 봉사에 관한 정보는 큰아이가 고2이던 시절 우연히 접했다. 큰아이의 학교 급식모니터로 함께 활동한 엄마가 모니터 활동 후 티타임에서 일러준 말이 단초가 되었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도서를 녹음하는 봉사를 하고 있다는 것, 그 일은 발음이 정확한 사람이 할 만한 일이라는 것, 낭독 테스트를 거쳐 통과가 되면 시각장애인에 대한 인식 교육을 받은 후 활동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 녹음할 자료는 책이나 신문, 잡지, 교과서 등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주어지는 대가는 없지만 대신 봉사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


호기심과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였지만 당시에는 녹음 봉사를 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지 못했다. 그러다 아이가 고3이 되고 마음이 바뀌었다. 지극히 이기적인 마음이 고개를 들어서였다. 그러니까 순전히 큰아이의 대입에 '운'이라는 녀석을 조금이라도 보탤 요량으로 녹음 봉사를 떠올린 것이다. 행운을 맨입으로 바라기는 그렇고, 종교가 없으니 대신 덕이라도 쌓아야 할 것 같아서였다. 그렇게 시도하게 된 녹음 봉사. 


다행히 테스트를 통과하고 시각장애인에 대한 인식 교육을 받았다. 인식 교육은 시각장애인을 만났을 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시각장애인은 계단과 거리를 어떻게 느끼는지 체험해 보는 시간으로 진행되었다. 


엘리베이터와 같은 닫힌 공간에서는 사람이 있다는 신호를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리고 장애인을 안내할 때에는 반발짝 앞에서 팔을 잡게 하고 걸어야 한다는 사실도 그때 처음 알았다. 점자보도블록이 없는 거리가 시각장애인에게는 얼마나 공포의 대상인지도 눈가리개를 하고 거리로 나선 체험을 해봄으로써 알게 되었다. 


교육을 받고 나니 세상이 달리 보였다. 내게는 안전한 세상이 누군가에게는 지극히 폭력적이라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이후 점자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고 시각장애인의 편의를 도모하는 일에 조금이나마 지지하는 태도를 지니게 되었다.  


봉사를 하는 사람들이 으레 하는 말이 있다. "내가 그들에게 무언가를 준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들에게서 무언가를 받고 있었다"라는 말. 예전에는 그 말을 예의상 그저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말이 진실이라는 사실을 봉사를 해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감사한 나날이었다.



ps.

녹음 봉사 이야기는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며 써낸 첫 글[이기심에서 이타심으로 (brunch.co.kr)]이었습니다. 그 글이 마중물이 되어 지금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지금의 시간이 좀 희한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의 이야기를 장애인 등록 현황과 녹음봉사를 할 수 있는 기관의 명단을 덧붙여 오마이뉴스에 기고했습니다. 혹, 관련 글이 궁금하다면 아래를 클릭하세요!


https://omn.kr/28rg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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