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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미킴 Oct 25. 2021

집으로 출근하는 화가 엄마

엄마가 된 화가 재미킴

난 집으로 출근하는 화가 엄마이다


13년 차 화가인데 지금쯤이면 근사한 작업실이

있을 법도 한데…

나의 작업실은 아이들의 장난감과 쏘서(아가를 홀로 앉혀놓을 수 있는 장비)가 즐비한 곳


큰 아이를 등원시키고

둘째 아이를 대롱대롱 아기띠에 들쳐 메고

난 집으로 출근한다


오자마자 둘째를 쏘서에 넣어놓고 앞치마를 두른다

주부용이 아닌 화가용 앞치마이다



집으로 출근하는 재미킴


집으로 출근한 나의 작은 작업실 방 문을 연다

둘째는 준비된 쏘서에 집어넣는다


쌓인 설거지는 애써 모르는 척한 채

부엌이 아닌 작업방으로 향한다


내 옆에 손가락을 빨고 쏘서에 들어가 있는 둘째는

언제나의 일정대로 그림 그리기를 시작한

엄마를 바라보며 신나게 쏘서를 탄다


집중? 안된다

한 시간도 안된 채 칭얼거리는 아가

기저귀를 갈고 이유식을 먹인다


방금 내손엔 분명 붓을 들고 있었는데…

순삭 아가용 이유식 스푼을 들고 있다


“맘마 맘마를 외치며” 세상 빠른 속도로

이유식을 먹인다


나의 퇴근시간은 정해져 있다

큰아이의 하원 시간이다


차라리 회사를 다니는 직장맘들은 나을 것이다

화가 엄마 나처럼 집으로 출근하는 신세보다는…


곧 개인전이 잡힌 나는

금방이라도 죽을 날을 받아놓은 듯한 마음으로

가슴을 졸이며 오늘도 완성이 안된 수많은 캔버스 앞에서

깊은 한숨을 쉰다


혼자였다면 일도 아닌데…

애써 핑계를 찾고는 다시 붓을 들어본다


참나

회사원들은 칼퇴를 그리워 하지만

난 출근도 퇴근도 아닌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이건뭐 엉망진창 똥구멍 같은 스케줄이다




텅 빈 캔버스 앞에서

영혼 갈다가

이유식 갈다가

기저귀 갈다가

잠이라도 들면

뜨는 해에…아 망했다 ㅜㅜ

‘바보야 왜 잠을 잤니?’

하는 나에 대한 원망으로 다음날

난 다시 분주히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다시 집으로 출근을 한다


엄마가 된 화가는

정말 인간의 생존 기본권도 못 지키며 사는 시추에이션


이게 뭘까?라는 생각으로 나는 어느 누구도 주지 않은

과제를 해내기 위한 강박을 갖고 하루를 보낸다


다음날은 그간의 작품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

전시장 2 미팅을 가는날이다


전시장의 사이즈와 공간

재미킴의 개인전을 어떻게 구상해서

스스로 또한 관람객들이 만족할 수 있는

구도를 만들어낼까 조사를 하러 간다


늦은밤 잠을 뒤척이며 선잠을 든다


그날 밤 꿈은 악몽 그 자체이다

전시 디피를 하러 전시장에 갔는데

그림이 하나도 없다

이런 … 악몽은 없다


그나마 악몽에서 깨서눈앞에 놓인 그림들을 보고는

그래 꿈이구나 라는 한숨과

센서가 부착된 된듯한 두 아이를 끌어안고

누워있는 나를 느끼며

피곤한 몸을 일으키고 아침을 차린다


전시 디데이는 한 달


난 과연 이 미션을 잘해 낼 수 있을까?


두려움과 설렘 사이에서 고통받는 나의 하루는 시작된다


오늘도 말한다

빨리 아이들이 잠들길…


아이들이 잠든 어둠과 새벽은 나에게 오로라와 같은 시간이다.


오늘은 절대 잠을 자지

않고 그림을 완성하리라


나의 하루의 목표는 온통 그 마음뿐이다


엄가가 된 화가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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