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나무 멤버십 서비스로 세간의 화제를 모은 ‘당신의과수원’ 창업 비하인드를 공개합니다. 제주 정착부터 창업, 경영에 이르는 스타트업 선배의 내밀한 이야기.
시작이었다. 제주와 내가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건. 원하는 것은 거침없이 말하는 그녀의 매력에 빠져 연애했고, 꼭 오름에서 프러포즈를 받고 싶다는 소원을 들어주려 제주를 찾았다. 해외여행만 알던 내게 제주는 신세계였다. 프러포즈를 통해 제주의 숨은 매력을 알았지만, 결혼 후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두 아들을 기르는 동안 제주는 잊혔다. 연일 야근하는 생활과 육아 스트레스가 하늘을 찌를 때 애월에서의 ‘한 달 살이’를 결심했다. 그 제주살이가 5년 차에 접어든다.
제주에 오지 않았다면 사업도 농사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가 아니었다면 스타트업에 대해 영 몰랐을 것이다. 제주로 이주해 무슨 일로 먹고살지 고민했다. 되도록이면 사람들과 덜 경쟁하고 덜 부딪히는 일을 찾고 싶었다. 귤 농사를 알게 됐다. 새소리를 들으며 아침을 맞는다는 게 제주의 작은 마을에 사는 즐거움이라면, 넓은 밭에서 귤나무와 자연과 교감한다는 건 농사의 즐거움이었다. 이러한 기쁨을 누리고 만족하는 것도 찰나였다. 시간이 지나자 감사하게 생각하던 것들에 금세 익숙해졌다. 오히려 귤을 팔아 먹고살 순 있을까, 이 많은 귤을 어떻게 다 팔까, 고민이 꼬리를 물었다. 그때 페이스북 담벼락에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입주기업 공고’가 떴다. 당신의과수원의 시작, 아니 스타트업의 시작이었다.
요즘 지역에서 스타트업을 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올해 중기부 벤처 지원 사업에 로컬 크리에이터 지원 부문이 생길 정도이고, 전국에서 3096명이 지원해 22:1의 경쟁률을 기록했단다. 코로나19 이후 원거리가 아닌, 단거리 여행이 주목받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재택근무를 통해 비대면 업무 방식과 문화에 적응하고 있다. 로컬 입장에서 보면 코로나19 이후 관광객과 이주민이 증가해 전반적으로 기회가 찾아올 것으로 보인다. 관광객은 로컬과 농촌이 주는 정서적인 만족감이나 마을 자원의 매력적인 경험을 원하고, 이주민은 좋은 환경에서 먹고살 만한 수익을 원할 것이다. 또 관광객이 이주민으로 전환되는 과정은 빈번하게 일어날 것이다. 로컬 비즈니스는 기본적으로 대면 비즈니스인 데다, 비용 면에서 도시보다 결코 유리하지 않다는 점은 해결해야 할 요소다. 관광객에서 이주민이 된 한 사람으로서 지난 시간이 녹록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직장 생활에 위기의 연차가 있듯 이주민의 위기인 1년, 3년의 위기를 거쳐 5년 정착기에 접어들었다. 사업 면에서 보면 아직은 기초 단계에 불과하지만, 지역에 이주해 사업한다는 것은 삶(가정)과 사업, 두 가지가 톱니바퀴처럼 잘 맞물려 굴러가는 과정이다.
스타트업에 봄은 ‘챌린지’의 시기다. 모든 스타트업에는 공통적으로 ‘지원 사업’이란 챌린지가 있다. 스타트업에게 있어 고객 못지않게 정부나 기관 또한 중요한 파트너이자 고객이다. 여기서 비롯되는 지원금은 사업을 한층 탄탄하게 만드는 ‘마중물’이다. 스타트업 운영을 통해 깨달은 지원 사업의 의미를 간단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사업이 정치, 사회, 문화, 인구 등의 영향을 받듯 정부 지원 사업은 정부의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정부 지원 사업 공모전은 동기부여가 된다. 운영하다 보면 흐름에 따라 슬럼프에 빠지기도 하는데, 공모전은 사업의 전의를 다지게 하는 촉진제 역할을 한다.
사업을 정리하는 계기를 준다. 공모전을 통해 꼼꼼하게 사업을 정리해본다면 큰 그림을 그리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올해 ‘당신의과수원’은 다섯 가지 정부 지원 사업에 지원해 현재까지 3개 지원사업에 합격했다. 스타트업에 자금 조달은 매우 중요한 사안이며, 지원 사업을 위해 책상에 앉아 ‘엉덩이 싸움’을 하는 동안 스타트업 대표의 봄날은 가고 있다.
과수원의 봄날, 귤나무에 싹이 났고, 꽃이 피었다. 귤밭이 있는 마을마다 감귤꽃 향기가 진동한다. 그 무렵, 당신의과수원에서는 멤버십 가입이 한창이다. 귤나무 회원이 직접 지은 이름과 소원을 적은 명패를 달고, 과수원 위시월wishwall에 비치한다. 벌이 웽웽 날아드는 것을 보니 감귤꽃꿀을 채밀해 회원에게 보내줄 때가 오고 있다. 당신의과수원 멤버십에게는 시즌별로 과수원에서 보내는 달콤한 상품과 감성이 배달된다. 본격 감귤 성장기인 5~10월에는 멤버십 웰컴 키트에 이어 감귤즙, 감귤꿀, 풋귤청, 황금향을 보내고, 본격 감귤 철인 11~3월에는 온주밀감, 레드향, 천혜향, 한라봉을 정기 배송해 주요 감귤 품종을 모두 맛보게 하고 있다. 감귤꽃이 피면 많은 회원에게 과수원의 봄을 전해주려 했는데, 아쉽게도 코로나 탓에 그러질 못했다. 하지만 여름이 오고 있다. 다시 준비해야겠다, 농사처럼 그렇게.
오성훈 2017년 도시인을 위한 귤나무 멤버십 서비스를 제공하는 ‘당신의과수원’을 창립했다. 전 세계 과수원과 사람을 연결하는 플랫폼을 목표로 운영, 확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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