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커넥트 Aug 05. 2020

제주에서 가업 혁신을 이룬 사람들-감저 김재우

선대가 일궈온 기업을 이어받는 사례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여기, 그 일반적인 범주에서 살짝 벗어난 남다른 승계 이야기를 지닌 사람들이 있다. 어업과 수산업에서 근면 성실히 일하던 부모님을 따라 동종 업계에서 자신의 감각과 재능을 발휘하거나, 가치와 미감을 전하는 예술에 헌신했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작가의 길을 걷고, 부모님의 공장 부지에 재생 건축을 접목해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사례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가업을 승계하고 혁신을 불어넣는 이들을 만나본다.


감저

제주 말로 감저는 고구마다. 감저로 전분을 만들던 ‘태창산업’이 30여 년의 시간을 건너 장소의 기억을 머금은 문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버려진 돌 창고나 공장을 개조해 문을 연 공간이 유행이지만, 단순히 흐름을 따른 곳은 아니다. 겨울이면 마을 전체가 감저 공장에 모여 일하던 1970~1980년대 대정 사람들의 기억, 조모로부터 이어지는 3대의 기억이 담긴 공간을 재생하기 위해 허물어져가는 공장의 많은 것을 사려 깊게 남겼다. 8년에 걸친 신중한 공사 끝에 공장 일부는 근대건축유산으로 인정받았다. 2018년 서귀포시 돌담 건축물 보존 사업에 선정되며 모든 설비를 그대로 둔 채 구조만 보강한 공장은 이제 관람객을 맞는다. 너른 공간을 활용해 여는 워크숍과 북 토크, 공연, 전시 등의 행사는 도시에 비해 부족한 문화를 지역에 공급하기 위함이다.


1989년 가동을 멈춘 아버지의 공장을 30년 만인 2018년, 카페로 개조해 문을 열었죠. 원래는 어떤 공간이었는지요?

1965년부터 가동했고, 1969년에 아버지가 인수했습니다. 태창산업이 가장 활발히 돌아가던 때 1970~1980년대입니다. 마을에 감저 공장이 7~8개 정도 있던 걸로 기억합니다. 별다른 작물이 없던 시절, 대정 지역은 감저 공장이 먹여 살렸습니다. 주로 보리와 감저를 이모작했는데, 10월에 감저를 수확하고 나면 공장을 가동했어요. 기계가 있다곤 하지만 인력이 많이 필요해 온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 공장을 돌렸죠. 이때가 1년 중 마을에 가장 활력이 넘치는 시기였습니다. 1980년대 말 값싼 중국산 전분에 밀려 차차 폐업하는 곳이 늘었고, 태창산업 역시 1989년에 문을 닫았어요.

문화 공간으로의 재생을 결정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처음부터 재생 문화 공간을 계획한 건 아니었어요. 성수동의 갤러리 카페 ‘사진창고’를 지은 장지산 건축가에게 공사를 의뢰했고, 그가 공간의 가치를 알아봤어요. 옛 흔적을 그대로 남기고 변형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재생하자고 했고, 그때 아버지의 공장을 다시 보게 됐죠. 가장 큰 건물은 카페로 사용하고 자재 창고는 ‘갤러리 감저’가 됐습니다. 그 외 감저를 갈던 기계가 있는 건물과 물에 갠 감저를 가라앉히는 수조 등은 보존했습니다.


주로 어떤 문화 행사를 진행하나요?

제주의 밭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관정 사진을 찍어 모은 김성용 사진전, 서정희 작가의 제주도 마을 굿 사진전, 지역 청년 작가 사진전 등 갤러리 감저에서 전시를 의욕적으로 열고 있어요. 제주를 담거나, 제주 지역 작가가 작업한 사진을 소개합니다. 지역의 문화 공간으로 좀 더 굳건히 자리잡고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어요.

태창산업의 2기라 할 수 있을 텐데, 2세대로서 어떤 가치를 더했다고 생각하나요?

공간을 연 뒤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습니다. 감저 공장에 얽힌 기억이 있는 이들의 말들이 기억에 남아요. 육지에서 온 누나는 기계실 앞에 한동안 서 있었어요. 가슴이 먹먹해서 들어가지 못하겠다고요. 4·3으로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로 남은 할머니와 부모님이 고생해서 일군 삶의 터전이 감저 공장이었거든요. 15년간 이곳에서 일한 태창산업의 마지막 기관장 지봉우 삼촌은 그 시절 추억과 공장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으며 무척 즐거워했어요. 아버지를 기억하는 친구들이 찾아와 저는 모르는 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죠. 감저는 제주 근대사의 한 단면이 남아 있는 공간이에요.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누군가 이곳에서 그 시절의 기억을 떠올린다면 목표한 바의 절반 이상을 이루었다고 생각해요. 


나머지 절반의 목표가 궁금합니다. 또 어떤 계획이 있나요?

감저를 이야기하며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아내와 둘째 아들입니다. 감저는 자폐가 있는 아들이 사람들과 만나며 자라기를 바라던 아내가 기획하고 이뤄낸 공간이에요. 아들의 도자기 작업실을 곧 한편에 마련할 거예요. 장애와 더불어 지역 커뮤니티에 섞여 살아가는 사례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 제주의 근대 건축 유산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지금의 모습을 잘 유지하려 합니다. 건조장 끝에 통로를 만들어 작은 둘레길을 계획 중이에요. 이 길을 따라 1970~1980년대 태창산업의 기억 위에 감저의 이야기가 쌓이기를 기대해요.






기획 및 발행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제작 콘텐츠그룹 재주상회

작가의 이전글 제주에서 가업 혁신을 이룬 사람들-김택화미술관 김도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