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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커넥트 Oct 28. 2020

그럼에도 스타트업을 하는 이유

'당신의과수원' 오성훈의 스타트업 일지 ep.3

무르익는 이 계절에 부쩍 힘든 시기를 나고 있다는 건 그도, 그의 현장도 다르지 않을 터다. 그럼에도 그가 스타트업을 하는 이유.




작년 가을, 아버지께 SOS를 쳤다. ‘당신의과수원’ 농장에 팀장 자리가 공석이 되는데, 농장 두 곳의 수확을 직접하는 수밖에 없겠다고 말씀드렸다. 연초에 받은 지원 사업 투자금으로 넷까지 늘었던 인력은 자금 소진으로 단둘로 줄어든 상황이었다. 가족의 힘을 빌릴 수 밖에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10년 중 감귤 농사까지 최악의 상황이라고 한다. 당신의과수원에서는 수확하는 즉시 회원에게 발송, 점차 입소문이 나면서 택배 양이 증가함에 따라, 나머지 가공과 출하를 진행한다. 그런데 이 사이클이 예년처럼 수월히 진행되지 않고 있다. 수확해도 판매가 원활하지 않으니 소화불량처럼 체증이 계속 남아 있는 것이었다. 하루는 팔리지 않아 가득 쌓인 귤을 트럭에 실었다. 어쩔 수 없이 1톤이 넘는 귤을 20kg 컨테이너에 나눠 담고, 각 3700원이라는 헐값에 주스 공장으로 넘기기 위해 이동하는 중이었다. 귤을 가공 바스켓에 붓는 작업을 하려는데, 일흔 아홉의 아버지는 내가 쓸쓸할 것 같다며 한사코 따라가서는 한아름 걱정을 했다. 차라리 보여드리지 않는 편이 좋았을 걸.... 최악의 계절을 보내는 아들을 마지막 모습으로 본 아버지는 갑작스럽게 올여름 팔순 생일을 며칠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매출이 아니라 대출이라니

가을이 왔다. 추수해야 하는 시기인데, 코로나19로 경제 상황이 심상치 않다. 매출이 나야 하는데, 대출을 알아보느라 바쁘다. 매출만으로 회사가 운영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BEP(손익 분기점)를 달성하는 데조차 오랜 시간이 걸린다. 스타트업의 자금 조달은 흔히 투자금과 지원금, 대출금을 적절히 사용해야 한다. 작년까지는 투자금과 지원금으로 자금을 운용했지만, 올해는 신용보증기금 보증을 통해 은행 대출을 진행했다. 대출 자금과 정부 지원금을 통해 조직 인원을 보강했다. 당신의과수원은 농장 운영, 회원 모집, 플랫폼 등 여러 분야의 인원이 필요했다. 현재의 인원으로 제대로 사업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었고, 경기가 좋지 않다고 축소해 진행하는 건 시간 낭비임을 알았다.


스타트업의 가을

스타트업들이 가을 하면 무엇을 떠올릴까? 나는 ‘무르익음’이다. 비즈니스 아이디어, 자금, 인력이 성숙하는 방법을 찾는 시기? 충분하지는 못해도 그 세 가지의 방향에 있어 어려움을 경험하며 해결 방안을 알아가는 시기일 거라고 생각한다. 회사가 성숙해가는 과정 중 ‘팀 빌딩’이 중요하다. 아이디어와 자금이 있어도 이를 실행할 전문 인력이 확보되지 않으면 성장하기가 쉽지 않다. 올가을, 당신의과수원은 큰 결단을 내렸다. 사업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자금을 조달해 조직을 갖추기로.

스타트업 대표의 가을

30대의 끝자락에 제주에 왔고, 어느덧 40대 중반이 되었다. 인생으로 보면 가을의 초입에 접어든 셈이다. 20년 전, 벤처 붐이 일었을 때 ‘축제로 가는 나들목: 축제로(festivalo.co.kr)’라는 축제 정보 사이트를 만들어 창업했던 일이 기억난다. 그때와 다른 점은 이제 패기만으로 매일 밤을 새고 빈 주머니로 집에 돌아갈 수 없는, 힘과 열정만으로는 사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더 바른 방향으로 사업할 수 있는 시기야말로 지금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조직 구성은 한두 달 사이에 2명에서 6명이 되었다. 아버지가 그토록 걱정하던 생산·유통 파트에는 믿음직한 전문 코파운더를 영입했고, 많은 부분의 문제를 해소할 수 있었다.

사업 선배, 아버지를 추모하며

아버지는 20대에 사업을 시작했다. 여행용 가방에 다는 작은 자물쇠(패들록)를 국내 최초로 개발했으며, 1980년대 산업 역군이라는 자부심으로 일했다. 하지만 동료가 관련 기술을 빼돌리는 바람에 부도를 맞았다. 연이어 새 아이템으로 사업했지만 줄줄이 실패했다. 어느 날 누군가 아버지를 찾아왔다. 알고 보니 오래전 아버지의 사업 형편이 좋을 때 부품을 납품하던 업체의 대표였다. 그는 충남 당진에 건설 중인 큰 공장으로 아버지를 모시고 갔다. “이곳을 관리해주세요. 어렵던 사업 초기, 저를 도와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성공은 없었을 것입니다.” 당시 아버지는 미국에 가서 다른 사업을 준비 중이었지만, 결국 가족과 함께 한국에 있기로 결심했다. 나이 육십의 아버지는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일흔아홉이 되기까지 20년간 그곳에서 근속했다. 아버지의 장례식에는 수많은 아버지의 직장 동료와 거래처 대표가 찾아왔다. 그들은 그간 몰랐던 아버지에 대한 일화를 전해주었다. 유난히 추운 가을, 우리가 남겨야 할 것은 무엇인지 아버지가 내게 이야기해주는 듯하다. 아버지, 이제 제게도 함께하는 동료가 많아요. 걱정 마시고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세요.



오성훈 2017년 도시인을 위한 귤나무 멤버십 서비스를 제공하는 '당신의과수원'을 창립했다. 전 세계 과수원과 사람을 연결하는 플랫폼을 목표로 운영·확장하고 있다.





기획  발행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제작 콘텐츠그룹 재주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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