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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juGrapher Mar 27. 2017

98. 삶과 죽음의 경계

산담

제주에서 가장 신기했던 것이 무덤이었고 지금은 가장 익숙한 것이 무덤이다.


제주에서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그리 뚜렷하지 않다. 강한 비바람과 파도와 맞서 싸우며 척박한 삶을 이어갔던 제주인들은 죽은 후에도 그 땅에 고이 잠든다. 제주 묘지의 특징이라면 자신이 살던 곳과 인접한 밭이나 오름 등에 아무렇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아무렇게'가 그냥 막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아무데'를 뜻한다. 무덤 자체는 참 정성을 들려서 만들어놨다. 무덤 주변으로 들짐승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마름모 꼴로 산담이라는 돌담을 쌓는다. 민간 신앙으로는 들짐승의 습격보다는 도깨비나 귀신의 출입을 막는다고는 하지만... 


처음 제주에 내려왔을 때는 공동묘지가 바로 옆에 있다는 사실에 오싹하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제주의 어디를 가도 볼 수 있는 것이기에 친숙함마저 든다. 오등동의 GMC라는 곳에서 처음 근무할 때는 옥상에서 내려다보면 밭 한가운데에도 무덤이 있고, 옆으로 작은 숲 속에도 무덤이 여럿 있었다. 지금은 영평동의 카카오스페이스로 사옥을 옮겼지만 큰 길만 건너가도 공동묘지가 있다. 별 사진을 찍으러 어두운 곳을 찾던 시기에는 근처 공동묘지에나 가볼까라는 생각도 했었다. 집과 회사 주변의 밭에도, 주말에 찾는 오름 정상에도, 숲길을 따라 깊숙이 들어가도, 그리고 한라산 높은 곳에도 무덤이 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여기에 무덤을 만든 분은 효심이 지극한 것일까 아니면 후손들에게 엿(?) 먹이기 위해서...ㅎㅎㅎ 한라산 등반 중에도 산담을 봤던 것 같은데 사진을 제대로 찍어두지 않았었는지 막상 찾으려니 찾기가 힘들다.

아끈다랑쉬오름 정상의 묘지
원수악에서 내려다 본 당오름의 무덤군

하늘에서 내려다볼 때 이렇게 무덤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으면 무섭다는 생각보다는 정겹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우도의 밭 한가운데도 무덤이 있다.
그냥 보리밭을 찍은 듯하지만 가운데 있는 돌담은 밭담이 아니라 산담이다.
용눈이오름 입구의 무덤
오라 메밀밭 한가운에도 무덤이 있다.
사려니숲길 한 중간에도 무덤이 있다. 특지하게 산담이 타원형이다.
산록도로 노리손이 능선에도 무덤이 있다.
회사에서 불과 100m 떨어진 곳에도 무덤이 있다.
산록도로 목초지의 무덤
물영아리 뒤쪽의 목초지에도 무덤이 있다. (표지사진)
정확히 어디서 찍은 사진인지 모르겠다. 용눈이오름이었나?
용눈이오름 능선의 무덤군

제주에 여행 와서 드라이브를 하거나 올레길 등을 걷거나 아니면 숲길을 걷다 보면 이런 산담 (무덤)을 수도 없이 만나게 된다. 익숙지 않은 이들에게는 어쩌면 오싹한 기분을 느끼겠지만 아주 이상한 장면은 아니다. 그래도 밤에 별 사진을 찍겠다고 어두운 곳을 찾아 나설 때 공동묘지는 조금 소름이 끼쳤다. 혼자서는 못 간다.


T: http://bahnsville.tistory.com

F: https://www.facebook.com/unexperienc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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