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만나 특별함으로

by 제주미진

하루를 정리하고 피곤을 걷어내며 종종 걷는 길에서 만나는 식물들에도 이름을 불러줍니다. 먼나무도 있고, 녹나무도 있고. 화원에서 온 로즈메리, 라벤더, 가자니아의 이름들도 불러줍니다.


멀리 와서 자리 잡느라 애썼다고 눈으로 인사를 건넵니다. 모두 그 자리에 있음에 이유가 있을 것인데, 함께 어우러진 숲 속에서, 웅장한 자연 속에서 살던 식물들이 사람의 손에 심긴 자리가 살기 불편할 수도 고향이 생각날 수도 있으니까요.


제주 노형동에서 연동으로 가는 오거리 근처 화단에는 유난히 허브들이 많이 심어진 길이 있다. 관광객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기 때문에 선택된 식물들 같습니다. 가로수 사이사이 로즈메리와 라벤더가 가득합니다.


어느 날 문득, 허브들 사이에 다른 것이 보였습니다. 내가 잘못 봤나 싶어 유심히 다시 살펴봤습니다. 함께 걷는 지인들이 있어 제대로 확인하지 못해 마음은 그곳에 두고 서둘러 발걸음으로 옮겼습니다.


돌아오는 길 지인들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 앞질러 나갔습니다. 아까 그 식물을 다시 만나길 바랐습니다. 곁에 있던 지인이 뭐 하냐고 물어옵니다. 아직은 만나지 못해 말을 아낍니다.


두리번거리다 드디어 마주했습니다. 눈이 번쩍 뜨이고 마음이 말랑말랑해집니다. 찬찬히 다가가 살며시 한줄기 끊어봅니다. 궁금증이 식물의 향과 함께 폭발했습니다.


여기 있을 식물이 아닌데...... 여기 있는 이유를 묻고 싶었습니다.


누가 여기로 옮겨 심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파 혹은 마늘 같은 알싸한 향을 확인하고, 새끼손톱만큼 살짝 씹어보았습니다. 아삭아삭 거림이 우리가 아는 ‘부추’였습니다.


함께 걷던 지인들이 주춤주춤 발을 멈췄습니다. 걷다 말고 풀을 뜯어먹는 저를 보며 무엇을 하는지 궁금함 가득한 표정이었습니다. 싱그러운 로즈메리향이, 화려한 라벤더 향이 가득한 허브들 사이에서 뜻밖의 만남이었습니다. 관광객이 가득한 큰 도로변에 부추라고 생각되는 식물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부추가 왜 여이 있어?!”

“어머머, 부추 맞네?~”

“누가 심은 거지??”


‘부추’라는 식물 덕에 우리는 같은 기억을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야생의 자연스러운 식물도 아니고 화원의 아름다운 식물이 아닌,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식물도 있음을 다시 한번 감각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다시 그 길을 걷던 보통의 어느 날, 부추를 발견했던 날 같이 걷던 사람들과 다시 그 길을 걸었습니다. 지인들의 생각에서는 멀어졌지만, 여전히 그곳에 심긴 상황이 궁금했던 저는 여전히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보았던 지점 인근에서 걸음걸이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자리 같은 곳에 있는 부추를 발견하곤 “저기 여전히 부추가 있어요!” 함께 걷던 우린 모두 웃었다. 작은 부추 한 줄기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다시 연결되었고, 우리에게 웃음을 주는 순간이 되었다.


이름을 알려주고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이 나에서 ‘우리’에게도 옮겨갔다. 식물을 기억하는 순간을 애틋하게 기억하는 나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나에 대해 한 가지 더 이해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야기는 사람을 움직입니다. 애정 어린 이야기 속에는 마음의 씨앗이 숨어 있습니다. 재밌는 이야기는 사람을 웃게 하고, 좋은 이야기는 세상을 다르게 보게 하며, 넓은 이야기는 세상을 바꾸는 씨앗이 됩니다.


제주 식물은 내게 언제나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어줍니다. 식물의 이름을 부르며 그 정체성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나의 정체성들을 확인하게 됩니다. 나의 정체성이 구체적이게 될 때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자라고 있습니다.


숲이 아니더라도, 화원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만나는 인간의 식생활에 포함된 식물 이야기를 전하는 이야기들까지 모두 저에겐 고마운 이야기들입니다. 모든 식물의 이야기가 곧 나의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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