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가 뭐길래

내 영혼의 독서법

by 제주미진

만약 하루 10분을 투자하여 삶이 바뀐다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책 읽기? 달리기? 맨손운동? 저는 필사를 하겠습니다.


글쓰기 책 쓰기 관련 책을 읽으면 꼭 한 부분에 필사에 관련된 이야기가 나옵니다. 안도현 시인은 백석의 시를 사랑하고 닮고 싶어, 말 그대로 '필사적으로' 필사를 했다고 합니다. 제자들에게는 학기마다 100~200편의 시를 필사해 오라고 과제로 주고요


윤태호 작가는 그림은 그리게 되었으나 이야기를 만드는 힘이 부족하여 대본과 시나리오를 필사했다고 합니다. 손웅정 감독은 삼색펜을 이용하여 책을 세 번 읽고, 필요한 부분을 필사했으며 한 권의 책을 A4 두세장 분량으로 요약하느라 옮겨 쓰고 요약하고 줄여서 핵심만 찾아냈다고 합니다.


도대체 필사가 뭐길래 많은 분들이 필사를 했고, 필사에 관한 책들이 끊임없이 나오며 지금 저도 필사에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요?


단순히 '베껴 쓴다'라는 뜻으로 여겼다면, 필사가 지금까지 이어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단순 복제는 아닌 것이지요.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까지는 문헌 전승과 보급을 위해 계속적으로 활용되었다는 것을 기본으로 하여 지금까지 지속되는 이유를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손으로 옮겨 쓰는 행위는 기억과 학습에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손으로 글씨를 쓰는 행위자체가 집중력을 높이는 동시에 기억에 오래 남게 되지요. 읽고, 쓰면서 생각까지 동시에 이루어지거든요.


단순하게 읽기만 할 때보다 천천히 읽으면서 곱씹다 보면 문장과 글 자체가 자신의 언어와 생각으로 흡수됩니다. 흡수된 내용들은 깊은 사유를 만들어 냅니다. 함께 필사를 하면서 "베껴 쓰다 보면 작가의 글이 저의 글인양 써서 표절이 될까 두렵습니다."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표절의 문제는 신중하게 다루어야 할 문제 이긴 하지만, 문장이 나에게 걸어 들어와 나의 생각과 만나 새로운 생각으로 확장되는 사유의 과정이 생기다 보면 표절의 문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필사를 단순 옮겨 적기가 아닌 자신의 생각을 확장하는 방법으로 생각하고 접근하면 좋겠습니다.


20대 때 성경의 복음서를 필사했었습니다. 옮겨 적기 급급했죠. 글씨는 엉망이 되고 함께 하는 프로그램의 마감시간까지 내기 위해 읽지도 않고 단순히 옮겨 적기만 했습니다. 이후 스스로 찾아서 적었던 성경의 다른 부분엔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생각하게 되었고,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마흔이 되어서 다시 시작한 필사는 자기 계발서였어요. 성공하고 싶었습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말하는 부를 축적하고 위대한 사람들처럼 이름도 알리고 싶었습니다.


이 책 <타이탄의 도구>는 내가 기록하고 모든 노트들 가운데 단연 빛나는 보물이다. 이 노트를 삶에 남기기 위해 지난 몇 년간 '세상에서 가장 지혜롭고, 가장 부유하고, 가장 건강한 사람'이라고 평가받는 인물들을 만났다. 그리고 이 책에 그들과 벌렸던 열띤 토론, 그들이 더 큰 결과를 얻기 위해 매일 실천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나의 성공적인 벤치마킹 경험, 그들의 놀라운 아이디어와 전략, 창의적인 습관, 세계 최고 수준의 창출법 등등을 두루 담아낼 수 있었다.
마침내 나는 자신의 분야에서 최정상에 오른 그들을 거인이라는 뜻의 '타이탄'이라 부르기로 했다.
팀 페리스, 타이탄의 도구들, 서문 9p


그때 만난 책의 한 구절에서 성공하는 삶을 닮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고, 차근히 따라 적으며 삶이 변하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필사는 저에게 타이탄의 삶을 공유해 주었고, 제가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감각을 바꾸어주기 시작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말들이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구나'라고 깨닫는 순간, 삶의 명확함이 드러났습니다.


마음에 드는 문장들을 쓰고 있으니 잡념이 사라졌습니다. 마음이 정리되고 감정이 차분해졌습니다. 차분한 감정은 저를 단단하게 만들어주었지요.


흔적이 남는 필사는 저를 성장시켜 온 시간을 증명해 주는 증거가 되어 주었습니다. 스스로는 '내가 해냈다!'라는 성취감이 되었고, 필사를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실제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사실이 되었습니다. 필사에 관한 강의가 들어왔고 저와 함께 한 분들 중 실제 필사를 꾸준히 해오는 분들이 생겼습니다.


필사가 뭐냐고 물으신다면 '내 영혼의 독서법'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하루 10분, 그 작은 시간이 내 삶과 영혼을 충만하게 할 수 있다면, 저는 주저 없이 필사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전 01화필사의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