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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앓이 Sep 26. 2021

혼맥의 품격 6

가을밤의친구

에어컨을 친구 삼아 지내던 여름밤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저녁이면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창문을 열고 침대에 누워있기 참 좋은 계절, 가을이 돌아온 것이다. 



나의 혼맥 스타일에도 변화를 줄 시간이다. 여름에는 주로 IPA를 즐겨 마셨다. 향긋함과 상큼함으로 나의 입과 코를 즐겁게 해 주었던  IPA. 높은 도수로 기분 좋은 취기까지 선사한 녀석의 센스는 두 번 세 번 칭찬해도 부족할 지경이다.



하지만 새 계절을 맞이하며 IPA와 잠시 작별을 고하려 한다. 게으름 피우기 좋은 가을바람은 부드러운 맥주 바이젠과 함께해야 제격이기 때문이다.



쓴맛이 적고 은은한 과일향(특히 바나나)이 나는 바이젠은 사실 뜨거운 날씨에 마시기 적합하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서는 그다지 신경 쓸 일은 아닌 듯싶다. 분명 서양의 맥주 전문가들도 우리나라와 같은 청명한 가을이 있었다면 바이젠은 가을에 마시기 최고의 맥주라고 이야기할 것임이 분명하다.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혼맥 파티에 바이젠을 준비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편의점 맥주 냉장고 속 반드시 한 종류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에딩거, 크롬바커, 파울라너 이미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들이다. 가끔 욕심을 부려 보틀 샵에서 공수해온 특별한 바이젠을 마실 때도 있지만 어떤 녀석을 마시든 상향평준화되어 있어 마시면 늘 만족스러움을 안겨준다.



부드러운 맛, 기분 좋은 향기에 더해 쫀쫀하고 풍성한 거품을 가진 바이젠은 보는 즐거움마저 충족시킨다. 구름처럼 폭신할 것만 같은 그 거품을 보기 위해 일부러 잔에 따라 마시는 번거로움을 기꺼이 감내할 수 있으니 말이다. 



오후부터 기분 좋은 시원한 바람이 부는 10월의 어느 멋진 가을날이다. 체중감량으로 자제하고 있던 맥주였건만, 오늘 밤은 눈 한 번 꽉 감고 완벽한 바이젠 한 잔을 마셔야겠다. 



*바이젠 Weizen


흔히 밀맥주라고 알려져 있다. 독일 남부 지방을 대표하는 맥주로 바이스비어(Weissbier)라고도 한다. '바이스'는 하얀색이라는 뜻으로 바이젠 맥주의 색이 다른 맥주들보다 밝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바이젠 맥주에서 나는 바나나 향은 양조에 사용되는 바이젠 효모 때문. 


바이젠 맥주는 바닥에  먼지 뭉치 같은 것들이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곰팡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에 보기에는 좋지 않아도 효모들이 가라앉은 것이니 일부러 다 챙겨 마시는 것이 좋다. 내용물의 3/4 정도 남은 상태에서 흔든 뒤마저 따라 마시면 되는데, 물론 잊어버리고 한 번에 다 마셔도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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