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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앓이 Sep 28. 2021

혼맥의 품격 7

만들어 마시는 맥주의 참맛

맥주 만들기


디저트, 특히 마카롱이나 케이크처럼 달달한 것들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어떤 곳으로 여행을 가던 꼭 디저트가 유명하다는 베이커리를 들르곤 했는데 급기야 직접 만들어 먹는 경지에 이르고 말았다. 취미로 시작한 그녀의 홈베이킹은  ‘제법인데?’로 시작해 제법 숨은 고수의 경지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하지만 최근 그녀는 야심 차게 시작했던 홈베이킹을 집어치웠다고 했다. 좋아하는 것을 직접 만들다 보니 정작 본인이 즐기며 느꼈던 행복감이 줄어든 것이 그 이유였다.



'나의 맥주 양조 이야기'는 그녀의 홈베이킹과 비슷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한때 나는 기꺼이 비싼 수업료와 교통비, 황금 같은 주말 시간을 할애해가며 맥주를 만들어 마셨다.



지금에 와서 그것을 혼자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당시에는 함께하던 사람들이 있어 비용과 에너지 면에서 큰 부담이 되지 않았던 듯하다.



맥주를 만드는 과정은 여느 요리 레시피가 그렇듯 이론상으로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곡물 당화(일종의 액기스 추출 과정)



여과(당화 시킨 액기스에서 찌꺼기를 분리)



끓이기(찌꺼기를 걸러낸 맥즙을 100℃까지 끓인다)



홉 넣으면서 끓이기



식히기(20~25℃)



맥즙 발효통에 넣기



맥아(맥주의 주원료, 보리를 싹 틔운 것)를 끓이고, 끓인 건더기를 제거한 액체인 맥즙을 다시 끓이면서 정해진 시간에 홉(맥주의 거품을 만들고, 변질되는 것을 막아준다.)을 넣어준다. 그 후 일정 시간 동안 일정 온도까지 더 끓기를 기다려 다시 식혀준다. 그리고 깨끗한 통에 효모와 함께 담은 뒤 발효될 때까지 2주 정도의 시간 동안 1차 발효를 한다. 1차 발효 뒤에는 작은 병에 나누어 담고, 다시 2차 발효를 해 주는데 이때가 가장 기다리기 힘든 시간이기도 하다. 직접 만든 맥주를 빨리 맛보고 싶기 때문이다.



맥주를 직접 만들어 본 소감은?


생일 미역국을 끓여 내듯 간단한 작업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짓말 조금 보태 마치 혼자서 몇십 인분의 잔치 음식을 준비하며 사골육수를 우려내는 종갓집 며느리의 노련함과 능숙함, 그리고 인내심이 필요한 고급 수작업이었다.



물론 만들어 마시는 맥주의 매력은 남다르다.



먼저 맥주 양조는 체험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해 준다. 남이 다 만들어 놓은 반죽을 그저 몇 번 주물렀을 뿐인데도 체험용 쿠키가 시판 쿠키보다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또 하나의 중요한 매력은 가성비이다. 물론 그것이 원하는 레시피의 맥주 맛을 완성하였을 경우의 이야기지만(가끔 양조가 망하여 이상한 맛의 맥주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확실히 만들어 마시는 맥주가 훨씬 저렴하다. 한 병에 만 원을 호가하는 크래프트 맥주의 맛을 그대로 재현해 낸 나만의 맥주를 3만 원 정도 가격이면 5L 이상은 족히 만들어 낼 수 있으니 말이다.



최종 발효를 마친 맥주를 꺼내 한 잔, 두 잔 혼자 따라 마시며 그 거품을 칭찬하고 맛에 감동하는 기쁨은 직접 맛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결코 알 수 없을 것들이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친구들은 그때 만든 나의 수제 맥주가 그립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나는 아직도 맥주를 만들어 마시고 있을까?



대답은 ‘아니오’다.



나 또한 홈베이킹 친구처럼 결국 만드는 수고로움보다 마시는 즐거움이 더 컸던 모양이다. 직접 만든 맥주를 페트병에 담아 바리바리 싸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분명 뿌듯함을 느꼈다. 맥주를 선물 받은 지인들의 칭찬에 어깨가 으쓱했고, 그 어떤 시판 맥주들보다 신선하고 맛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냉정히 말해 브루마스터들이 만드는 것보다 더 맛있기는 힘든 일이었다.



한참 양조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던 어느 날, 그냥 한번 사본 벨기에 맥주에서 특별히 더 신경을 써서 만든 나의 수제 IPA와 똑같은(사실 더 나은) 맛을 느꼈던 그 순간,


나는 이제 때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맥주 만들기를 그만두어야 할 타이밍 말이다.



다행히 이제는 편의점에서도 맛있는 크래프트 맥주를  구입할 수 있는 살기 좋은 시대가 도래했고, 나는 힘들이지 않고 사랑하는 맥주들과 함께 매일 행복한 밤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역시 남이 구워주는 고기가 맛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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