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주앓이 Oct 02. 2021

혼맥의 품격 10

트림이 뭐길래

지인들과 함께하는 술자리는 언제나 즐겁다.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며 벌컥벌컥 마시는 맥주야말로 진정한 삶의 행복 중 하나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맥주이기 때문에 신경이 쓰이는 것이 있다. 바로 적당히 기분 좋아질 때쯤 터져 나오는 트림들이다. 제아무리 사랑스러운 연인일지라도 두꺼비처럼 '끄윽끄윽' 소리를 내는 모습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뿐인가 안주가 과한 날, 거슬리는 사운드와 함께 소화 중인 썩은 음식 냄새는 재앙이 따로 없다.



트림은 음식을 섭취하면서 위로 들어간 공기가 빠지며 나는 소리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이지만 나만 취하고 상대방은 취하지 않았을 때가 문제다. 소리가 나지 않기를 바라며 애써 입을 닫아 보지만 비집고 나오는 소심한 외침은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맥주를 마시며 나오는 트림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천천히 마시고 기름진 안주는 피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조심조심 홀짝홀짝 마시는 맥주.


트림 방지를 위해 차 마시듯 마시는 맥주라니...


이래서 맥주는 혼자 마셔야 제맛이다.



모두가 잠든 밤, 잘 준비를 마친 뒤 냉장고에서 막 꺼낸 시원한 맥주를 방으로 모셔온다. 병이든 캔이든 오픈은 한 방에 해야 속이 후련하다. 그리고 이왕이면 예쁜 잔에 따라 마셔야 한다. 혼자 마시는 맥주에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최소한의 품격이기 때문이다. 익숙한 솜씨로 따른 맥주에는 거품이 보기 좋게 얹혀있다.  흐트러 뜨리기 조금 아쉽지만 거침없이 한 모금 들이켠다. '캬~' 하고 마음으로 외쳐본다. 진짜 소리를 냈다간 부모님의 단잠을 깰 수 있기 때문. 비록 무음이지만 살짝 찡그린 코끝에는 행복이 묻어난다.



그리고 한 병이 두 병이 세 병이 되면서 슬슬 그것들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그렇다 바로 트림 그 녀석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방에서 신경 쓸 사람은 나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어떤 때는 트림 수를 세어 보기도 한다. 참으로 품위 떨어지는 혼맥러의 악취미. 그래도 신나는 나만의 술주정이니 가끔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그렇게 그날의 기쁨도 슬픔도 트림의 여운과 함께 사라지며 기분 좋게 잠을 잘 수 있으니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혼맥의 품격 9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