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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앓이 Dec 13. 2021

혼맥의 품격 21

경건한 밤

마시면 마실수록 경건해지는 맥주가 있다.


트라피스트 TRAPPIST ALE

금욕적인 수도생활을 하는 가톨릭 수도승들이 양조하는 맥주로 금식 기간 중 영양보충을 위해 마시거나 손님 접대 용도로 사용되었다. 가끔 수도원에서 수녀님 또는 수사님들이 만들었다는 화장품이나 치즈, 잼, 빵 등을 구입하게 되는데 만드는 품목만 술이라고 생각하면 쉬울 것 같다.



특유의 전통적인 양조기법으로 만들어진 이 맥주는 짙은 빛깔과 깊은 풍미를 자랑한다. 한눈에 보아도 고급스러운 패키지와 라벨은 보는 이로 하여금 함부로 병나발을 불지 못하게 하는 기품을 가지고 있다.


그뿐인가 기본 도수는 아무리 낮아도 기본 6% 정도, 쉽게 구할 수 없는 데다 가격 또한 시중 맥주의 세 배 이상을 지불해야 하기에 생산 목적과 과정을 뒤로하더라도 절로 겸손하게 만드는 맥주임에 틀림없다.


혼자 맥주를 기울이는 밤, 조용히 생각에 잠기고 싶을 때는 트라피스트 맥주 한 병을 꺼내 든다. 경건한 마음으로 만들어진 이 한 모금이 복잡하고 서글픈 내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신이여 언제나 부족하고 어리석은 당신의 딸을 보우하소서.

술은 차차 줄여보겠나이다. 허나 오늘 밤의 한 잔 쾌락은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시메블루 Chimay

벨기에 노트르담 드 스쿠르몽 수도원/9%/트라피스트

시중에서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트라피스트 맥주. 1948년 발매되어 역사가 깊다. 달콤하고 향긋하며 아주 조금은 새콤하다. 



베스트 블레테렌 12

벨기에 성 식스투스 수도원/ 10.2% /트라피스트

2018년 어느 가을 딱 한 번 마셔 보았다. 330ml 병맥주임에도 불구하고 꽁꽁 묶인 잠금장치가 꽤나 인상 깊었던 분이다. 너무 기대를 했던 나머지 조금 실망스러웠던 맛으로 기억된다. 지금도 한 병에 3만 원 정도 저렴하지 않은 가격이지만 혼맥의 품격을 위해서라면 아깝지 않은 플렉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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