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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앓이 Jan 07. 2022

혼맥의 품격 23

가끔은 일탈

소셜 Social : 사회의 사회적인


소셜이라는 단어는 그동안 내가 추구했던 혼맥의 품격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고독함 속에서 마시는 한 잔 맥주의 매력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중한 사람, 특별한 공간이라는 조건이 붙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나에게 가장 특별한 공간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셋을 만끽하며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곳. 협재 해변 어딘가에 위치한 M소셜클럽은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일탈의 장소다.


마음 한 구석에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울 때면 찾아갔던 그곳에는 늘 훌륭한 맥주와 분위기 있는 음악이 있었다. 비슷한 음주 취향을 가진 인간성 좋은 친구도 만날 수 있었다. 인간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지만 나와 그리 친하지 않았던 ‘소셜’을 그곳에서는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어 좋았다.


강렬한 노란색 간판이 멀리서도 눈에 띄는 곳. 노란색을 유독 좋아한다는 마담이 직접 꾸민 이곳은 조명과 소품, 테이블 하나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허투루 자리하고 있는 것이 없다.


사실 SNS을 통해 처음 알게 된 M소셜클럽과 만나기 위해 나는 뜻 밖에 삼고초려를 해야만 했다. 유난히 잦은 폭설이 계속되던 제주의 겨울. 바로 옆 숙소까지 예약을 했지만 정작 내가 마주한 것은 임시 휴무 알림판이었다. 사유는 엄청남 폭설 때문이었다. 두 번째 방문에는 오후부터 몰려든 애주가 손님들 덕분에 나의 방문은 실패하고 말았다. 재료 소진까지 시킨 그분들의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그쯤 되면 그냥 포기할 법도 싶은데 이상하게 꼭 한번 그곳에 가보고 싶었다.


그리고 찾아온 봄. 나의 세 번째 방문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에 드디어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친구와 함께 구석자리 테이블을 잡은 나는 너무나 와보고 싶었던 곳의 방문이 설레고도 이상하게 부끄러웠다. 하지만 소셜클럽의 주인답게 마담은 재치 있는 입담과 시원한 웃음으로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즐거운 기분은 계속되었고 그날 밤 나는 맥주병으로 긴 줄을 세웠다. 그리고 몹시 취했다. 엉뚱한 창고를 화장실로 착각에 문이 안 열린다며 울었다. 초면인 마담 앞에서 별별 이야기를 다 했으니 과하게 예의를 벗어났음이 틀림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테이블을 보니 아직 맥주로 채워진 빅바틀이 서 있었다. 흐린 기억 속, 어렴풋이 나를 배웅하며 남은 술 아깝다 챙겨주던 마담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민망해서 다시는 그곳을 찾지 못했다.


예상 가능한 뒷 이야기일 듯싶다. 하지만 나는 그 후에도 종종 홀로 M소셜클럽을 찾았다. 아름다운 섬 비양도의 하늘을 와인빛으로 물들이는 석양과 함께 마시는 맥주의 매력은 포기할 수 없는 최고의 것이었다.


그곳에서는 늘 행복하게 취했다. 술자리를 함께 시작했던 수많은 고민, 번뇌들은 숙소로 돌아갈 때쯤이면 언제나 봄 볕에 눈 녹아내리듯 사라져 버렸다. 늘 즐거운 기분만이 내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무더운 여름이 찾아왔다. 여름 제주의 무더위와 습함은 참으로 가혹해 지난 몇 년간 나는 쉬이 내려갈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 여름은 달랐다. 잠시 망설임은 없던 일로 하고 비행기표를 결재하고 말았다.


가끔은 혼맥 라이프에도 일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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