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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앓이 Oct 31. 2022

발리에서 생긴 일 3

내일은 좀 달라질까 기대한 것이 잘못이었다. 발리에서 맞이하는 두 번째 아침도, 세 번째 아침도 예외는 없었다. 나는 감당 안 되는 거친 파도 속에서 여전히 사투를 벌여야 했다. 서핑이 이토록 극한의 스포츠였다는 사실을 왜 이제야 알게 된 것인지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


다행히 다른 캠퍼들과는 제법 친해져 함께 식사도 하고, 이 아름답지 못한 파도에 대한 불만을 공유할 수 있었다. 사람 마음은 다 비슷한 건지 매일 아침 더러운 바닷물을 헤집고 간 라인업에서 신나게 구르고 바닷물만 마시는 지금의 상황에 모두들 절망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서핑 성지인 양양의 파도는 여름보다 겨울이 더 서핑하기에 적합하다고 한다. 하지만 초보들이 겨울 서핑을 하기에 기온 조건은 그리 녹록지 못하다. 그래서 실력 향상을 위해 택하는 것이 해외 서핑 캠프다. 그렇다. 나처럼 기꺼이 돈지랄을 하여 사계절 타기 좋은 파도가 밀려오는 발리로 향했던 것이다. 


비록 서핑에서는 고배를 마시고 있었지만 휴양지에서 보내는 여가 시간은 역시나 즐거운 것이었다. 하루 종일 붙어 다니며 먹고 수다 떨던 초보 서퍼들은 흥겨웠던 분위기가 약해질까 피자파티를 열기로 했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그것. 우리들의 손에는 어른들의 음료 맥주가 한 병 씩 들려 있었다. 쾌적한 환경과 친절한 주인장, 귀여운 댕댕이도 좋지만 이곳 캠프의 최대 장점은 언제나 시원한 맥주가 냉장고에 가득 담겨 있다는 것이었다.


신나게 먹고 마시고 떠드는 사이 하루가 다 저물어 버렸다. 내일은 또 내일의 불친절한 파도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다시 물속에 내 팽개쳐지고 배불리 짠물을 마실 것이다. 하지만 그 또한 서핑의 즐거움이라 생각하면 그리 걱정할 일도 아니었다. 


내일 아침, 지금의 취함은 사라지겠지만 이 작은 깨달음은 내 마음속에 그대로 남아있기를 바라며 마지막 맥주 한 모금을 마셨다.


그날의 맥주 

프로스트 PROST

라거/4.8%

과거 독일의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에는 독일에서 만든 맥주공장들이 남아있다. 그 영향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빈땅 맥주를 비롯 맛있는 맥주들을 자국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 프로스트 역시 인도네시아 맥주. 더운 날 먹기 딱 알맞은 가벼운 라거로 시원할 때 냉장고에서 마시면 생명수가 따로 없다. 홉향이나 몰트의 그윽함은 찾아볼 수 없지만 빈땅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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