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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앓이 Dec 18. 2019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찾아 떠나는 상하이 여행 4부

조금 멀지만 잊지 말아야 할 곳들

                                                                                                     

이번 중국독립유적지 SNS 홍보단으로 활동하면서 그동안 전혀 알지 못했던 상하이의 독립유적지들을 찾아볼 수 있어서 무척이나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독립유공자의 후손으로서 그동안 이런 의미 있는 발걸음에 왜 동참하지 않았나 부끄럽기도 했고 말이죠.

공군 정훈장교로 임했던 3년 동안 그렇게 안보유적지를 많이 다녔음에도 사실 그때는 진심 어린 마음으로 장소들을 대한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SNS에 사진을 올리며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다'라는 지인들의 코멘트에 사실 저도 할 말이 없었습니다. 저도 그동안은 모르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가지는 작은 관심이 모이고 모여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으니까요.

앞선 포스팅에서 소개했던 장소들은 비교적 개별적으로도 찾아가기 쉬운 곳들이었다면 이번에는 상하이 외곽에 위치하고 있어 자유여행자들에게 접근성이 조금 떨어지는 곳들입니다. 

하지만 최근 의미 있는 발걸음을 위한 역사투어 프로그램이 많이 생겨나고 있는 추세이니 미리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 소개해 드릴게요.



 상하이사범대학교 위안부 역사박물관 & 평화의 소녀상 

                                                                                         

· 주소 : 81 Guilin Rd, Xuhui
· 대중교통 :  지하철 12호선 Guilin Park 역

                                                                                

상하이사범대학교 내에는 위안부 역사박물관이 위치해 있으며,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공동 등재를 위한 국제연대 위원회'가 교정 앞에 한중 위안부 '평화의 소녀상'을 제막했다. 이로써 위안부 소녀상은 미국, 캐나다, 호주에 이어 세계 4번째로 중국에 세워지게 되었다. 

조용한 캠퍼스 한편에 나란히 자리 잡은 한국 소녀상과 중국 소녀 상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 한편이 먹먹해진다. 소녀상을 뒤로하고 들어간 위안부박물관에는 중국 대륙에서 자행되었던 일본군의 만행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유물과 할머니들의 증언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중에는 한국에서 끌려온 위안부 할머니들도 있었다고 한다. 



 만국공묘(송경령능묘) 

                                                                                                   

· 주소 : 宋园路21号
· 대중교통 : 지하철 10호선 Songyuan Road역

                                                                                           

상하이에서 독립 운동을 하다가 타계한 한인들 일부가 이곳에 잠들어 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아직도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지만,  대한 독립을 위해 이역에서 고생한 그들의 넋을 위로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가흥(자싱) 김구 피난처 

                                                                                              

· 주소 : Chengnan Rd, Nanhu, Jiaxing, Zhejiang

                                                                                            

김구선생은 윤봉길의사 의거 직후, 가흥으로 이동하여 저보성의 도움으로 피난생활을 시작했다.. 저보성은 가흥의 유지였고, 중국 국민당과 인연을 맺었던 독립운동가 박찬익 선생이 연결고리를 하였다고 한다. 첫 번째 피신 장소는 저보성의 아들 저봉장이 경영하던 종이공장이었다. 이후 저보성은 김구의 피난처를 매만가로 옮기게 된다가흥은 남호라는 호수로 유명한 관광지인데, 매만가는 남호로 둘러싸여 있다. 현재 매만가 김구 피난처에는 김구의 피난 과정과 피신을 도운 정보성 가족인 저봉장, 주가예, 진동생이 소개되어 있다.

언제든 도주할 수 있도록 준비된 작은 배, 바닥의 나무를 들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통로 등을 통해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저보성기념관 

                                                                                                 

· 주소 : 김구피난처 바로 옆

                                                                                               

저보성은 중국항일운동가로, 당시 김구에게 막대한 현상금이 걸려 있었지만 위험을 부담하고, 일면식도 없던 김구를 보호해주기 시작하였다. 이후 일제의 감시망이 더 좁아져오자, 며느리인 주자루이에게 선생을 부탁하기도 했다. 이러한 도움 덕에 김구선생은 무사히 피난생활을 이겨낼 수 있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97년 대한민국 정부가 저보성 선생을 위해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요인 거주지 

                                                                                                

· 주소 : Huancheng S Rd, Nanhu, Jiaxing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항저우에서 활동할 때 이동녕을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들이 잠시 피난 생활을 하던 곳. 김구 선생의 피난처와는 고작 300m떨어져 있다. 1935년 임시정부가 무정부상태에 처했을때, 가흥 남호에 배를 띄우고 국무회의를 진행하여 그 임시정부를 이어왔다고 전해진다. 가흥시가 보수공사를 진행하여, 임시정부 관련 사진과 자료들을 진열한 뒤 전시관을 만들었다. 2000년 3월 절강성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고, 같은 해 5월 가흥시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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