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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 동백꽃

우리 함께 행복해보지 않을래요?

by 제주앓이



2017년 겨울은 나에게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계절이다. 사실 1년을 통채로 지워버리고 싶을 정도로 암울했던 한 해다.

여행작가라는 직업상 늘 이곳저곳으로 바삐 움직여야 하는 나를, 그 당시 만났던 친구는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아주 싫어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 심중을 나는 맞춰주려 노력했다. 왜 그랬었는지 참 답답한 노릇이지만, 아무튼 그때는 그랬다. 그러는 동안 내 커리어는 점점 뒤처져 갔고 불행지수는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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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도 시간은 흘러 계절은 겨울로 바뀌어 있었다. 녹음 속에서 붉게 물든 고운 자태를 뽐낼 제주의 동백이 여행자들을 손짓하는 낭만의 시절 말이다. 나의 몸과 마음은 벌써 제주에 향해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나의 직업에 부정적인 그 친구를 일주일간 설득해 겨우 1박 2일의 시간을 얻어 내었다.


짧은 일정 동안 많은 것을 담고 싶었던 그날의 마음은 아직도 또렷하다. 간절함과 조바심이 그렇게 환상적으로 조화를 이룰 수도 없었을 것이다. 덕분에 정작 지금에 와서 그날의 사진 폴더를 열어보면 쓸만한 것들은 단 한 장도 찾아볼 수 없다. 조바심이 일을 그르쳤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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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날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 심어져 있던 커다란 동백나무와 가득 핀 동백꽃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몇 분을 바라볼 정도로 아름다웠다. 운동장에서 신나게 공놀이를 하던 아이들의 목소리, 적당히 차가워서 시원한 서귀포의 겨울 공기와 한산한 거리의 풍경이 함께 어우러지니 더할 나위 없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 순간의 동백꽃은 내 지친 감정의 쉼표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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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사랑’ 동백의 꽃말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그동안 누구를 만나면서 항상 내 삶의 버거움을 견뎌줄 사람을 찾아왔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늘 어딘가 한구석에 결핍을 가지고 있었다. 그 결핍이라면 나의 버거움을 상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착각했지만 그것은 진실한 사랑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밝은 마음은 어둠을 빛으로 이끌어내지만, 어둠이 지배해버린 밝은 마음은 결코 해피엔딩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제주의 동백은 참 예쁘게도 피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이제야 인간관계의 작은 진리를 깨닫는다.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은 나의 불행을 이해해달라고 호소하는 것이 아닌, 작은 행복이라도 함께 나누기 위함이라는 것을.


언젠가 나와 함께할 그 누군가에게…

우리 함께 행복을 나누어 보지 않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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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게 동백꽃과 대화할 수 있는 곳


· 위미초등학교
정문 쪽에 심어진 큰 동백나무에 꽃이 활짝 피면 장관을 이룬다. 동백꽃을 바라보며 매일 하루를 시작할 위미리의 아이들. 녀석들의 행복한 마음을 잠깐 체험에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 태위로 170번 길 근처
집집마다 심어진 동백나무는 그 종류도 다양하다. 마치 카멜리아 힐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주민들이 거주하는 마을이니만큼 소음을 조심하며 살짝 구경하는 센스를 발휘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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