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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Jun 11. 2023

기대와 걱정으로 쑥효소를 담았다

내가 어린 시절 가정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상비약들이 많지 않던 때, 동네 공터에 널려있는 쑥들은 만병통치약이자 봄내음이 물씬 나는 간식거리를 제공해 주던 신선한 먹거리였다. 


동네 길은 온통 비포장 흙먼지 길이다. 길에는 울퉁불퉁 크고 작은 돌들이 불규칙하게 많이 박혀있고, 길 위에는 돌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당시에는 대부분 고무신을 신었기 때문에 비포장 도로에서 넘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동네 아이들하고 뛰 놀다가 또는 길은 가다가 돌부리에 걸려서 넘어지는 날이 허다하다. 피를 흘리고 울면서 집에 온 아이를 두고, 부모님들은 집옆 공터로 나가신 후 뭔가를 손에 들고는 급히 들어오신다. 손에 든 건 민간요법으로 상처를 아물게 해 준다는 쑥이다. 당시 길가에는 쑥들도 많았을뿐더러 오염도 되지 않은 쑥이었다. 쑥잎 몇 개를 평편한 돌 위에 놓고는 흙을 털어낸 조그만 돌로 찧는다. 그리고는 상처 부위에 대고서는 헝겊으로 감싸서 묶어준다. 


" 이젠 됐쪄. 울지 말라, 며칠만 있으면 나을 꺼여 " 이걸로 처방과 진단의 끝이다. 

이러고 몇 밤을 새우면 상처는 낫는다. 이렇게 쑥은 대체 가정상비약이었다.




동네 올레길마다 자라던 석장포와 쑥은 어머니나 동네 아녀자들의 민간요법에 요긴하게 사용된다. 특히 부인병에 많이 사용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린 시절이라 구체적으로 어디가 아파서 먹는지는 몰랐지만 어머니나 누나가 아파할 때면 아버지의 명으로 가끔씩은 동네어귀에서 쑥을 캐러 다녔던 적이 있다. 캐온 쑥은 물로 끓여서 어머니가 목욕을 하거나 먹는 것을 봤던 기억이 있다. 때로는 그늘에 말려서 보관을 하기도 했다. 지금 인터넷에서 쑥의 효능을 검색하니 여성들의 생리불순이나 하혈 하는데 효과가 있다고 한다. 부인병에 특히 좋다고 한다.   


쑥은 우리 몸에 여러 가지로 좋다고 한다. 

한약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셨던 선친은 봄날이면 꼭 쑥 캐는 것을 챙기셨다. 약주 외에는 별다른 간식, 특히 떡을 좋아하지 않았던 선친도 쑥떡만큼은 무척이나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오죽 좋아했으면 어머니가 아버지 유일하게 좋아했던 떡이라고 매년 쑥떡을 해다가 올리셨겠는가?  


최근에는 일부농가에서 직접 재배를 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나 쑥은 자연 그래도 아무 데서나 쑥쑥 자란다고 해서 쑥이라고 한다는 말도 있듯이 밭이나 빈공터만 있으면 자라나는 야생식물이었다. 그러나 자동차 매연등의 대기오염이나 무분별한 농약의 살포로 주위 공터가 모두 오염되다 보니 예전 같이 쉽게 구하기가 어렵다. 쑥을 구할만한 주위 공터나 빈밭도 없는 게 사실이다.


나는 자연산 쑥을 비료를 주면서 키운다


내 밭 한 귀퉁이에는 자연산 쑥이 떡하니 자리를 잡고는 터줏대감 노릇을 하고 있다. 어머니가 무척 좋아하시고 아버지 제사상에 올라갈 쑥떡을 만들어야 할 재료이기에 농약도 치지 않고 비료까지 주면서 관리를 하고 있다. 몇 년이 지난 지금은 꽤 큰 군락을 이루고 있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한다.

3 무의 섬, 대문 없이 개방된 밭이라 지나가던 사람이 쑥을 싹 캐버린 적도 있었고, 동네 사람이 쑥을 캐는 것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 저쪽에서 보니까 파란 것이 모두락이 있언, 왕보난 쑥이란 먹젠 좀 캠쑤다. 난 그대로 나는 쑥인 줄 알안 마씸. 좀 캐면 안될꺼 꽈?  " (제주어: 저쪽에서 보니까 파란 것이 모아져 있어서, 와 보니까 쑥이라서 먹으려고 좀 캐고 있습니다. 난 그대로 나는 자연산 쑥인 줄 알았는데, 좀 캐면 안 될 건가요)

쑥을 캐는 현장에서 만난 사람이 하는 말이다. 어쩌 겠는가? 자수하면서 쑥을 달라는데..

" 예, 먹을마니 캥 갑써. 이건 시어머니가 좋아핸 키웡 캐가젠 비료주멍 키우는 거 마씸 " 

(제주어: 먹을 만큼 캐서 가십시오, 이건 시어머니가 좋아해서 키워서 캐가려고 비료 주면서 키우고 있는 겁니다) 

쑥의 용도는 다양하다. 캐는 만큼 또 자란다.


쑥은 자라는 상태에 따라서 1년에 몇 번을 잎을 따서 다양한 형태로 소비를 한다. 잎을 따면 다시 자란다. 용도에 따라서 어린 쑥을 따기도 하고 많이 자란 후에 세버린 성숙한 쑥을 따기도 한다. 


봄날 장모님이 자주 만들어 주던 쑥버무리를 기억하는 아내는 어린 쑥을 따다가 쑥버무리를 몇 차례 했다.

조금 더 자란 쑥은 따다가 쑥전을 해 먹는다. 어린 쑥을 많이 따다가 손질을 해서 살짝 끓은 물에 익혔다.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적당한 크기로 크린백에 소분을 하고 냉동실에 보관을 했다. 간식이 생각날 때마다 포장 한 개씩을 가져내서 쑥전을 해 먹고 있다. 늦은 오후나 야식타임에 아내가 주방에서 뭔가를 하는 경우는 쑥전이 탄생한다. 자주 먹어도 싫증이 안 나고 쑥이라 그런지 소화가 잘된다.


https://brunch.co.kr/@jejusamchun/80



지난주 밭에 가서 매실을 따던 아내가 안 보인다. 멀리 쑥밭에 앉아 있다. 쑥은 이미 많이 자란 상태다. 난 밭에 올 때마다 이쁘게 자란 쑥을 보고는 아내한테 얘기를 한다.


" 쑥 어떻게 할 겁니까?  따서 손질을 해서 보관을 하던지, 좀 시간이 지나면 세져서 못 먹는데..."
" 개메, 어떻 해야허는디, 손질 허는 게 귀찮아서..." 
늘 그러던 아내가 쑥을 따는 걸 보니 뭔가를 작정한 모양이다.


" 웬 쑥을..뭐허젠 " 

" 효소 담아불카허연 " 

이건 새로운 방법이다. 쑥효소는 처음 해보는 방법이다. 


유심재에 들러서 따온 쑥을 깨끗하게 몇 번씩 세척을 했다. 농약도 하지 않았고, 길거리도 아니라 대기오염은 덜 됐겠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이다. 마당 수돗가 돌담 위에 펼쳐놓고 봄 햇빛에 일광욕을 하면서 물기를 뺐다.


저울에 무게를 재보니 5.75kg이다. 가벼운 쑥의 무게를 생각한다면 꽤나 되는 양이다. 

효소는 설탕과 1:1 비율이라 하니 돌아오는 길 하나로마트에 들러서 백설탕도 구입을 했다.

 

" 효소도 설탕이라 몸에 그렇게 좋치는 않을 것 같아 " 효소를 담을 때마다 항상 아내가 하는 말이다.

쑥에는 물기가 전혀 없어야 한다. 가져온 쑥을 아파트 전실에 바람이 들게 문을 열고 여러 개의 바구니에 나누어 펼쳐 놓았다. 오늘밤을 지나야 물기가 완전히 빠질 것 같다.  


쑥과 설탕, 효소를 담을 용기를 한 군데 모아 놓았다. 설탕과 쑥을 섞을 큰 대야도 준비했다. 하룻밤을 지새운 쑥은 물기가 쏙 빠져있었다. 

" 어떻게 하면 되지. 내가 할게 " 쑥과 설탕을 잘 섞어야 한다는 얘기에 손을 씻고 내가 나섰다. 이젠 아내의 지시에 따르면 된다. 


1. 쑥을 잘게 썰었다. 

2. 쑥이 많아서 한 번에 섞기가 곤란했다. 2개의 용기에 나누기로 하고 무게를 측정하고 나누었다.

3. 쑥이 들어간 큰 대야에 마찬가지 분량의 설탕을 넣었다.

4. 쑥과 설탕을 잘 섞었다.  

5. 저장할 용기 2개에 나누어 담았다.

6. 뚜껑을 잘 닫고 시원하고 그늘진 아파트 전실에 보관했다.


작업완료다. 손을 탁탁 털고 나니 온몸이 설탕가루다. 작업 후의 흔적은 남는다. 그래야 일을 한 티가 난다.

" 이거 먹으면 뭐가 좋아? "

" 하간디 다 좋덴 나완 " (제주어: 여러 군데, 모두 다 좋다고 나왔어요)

" 그럼 얼마나 있다가 먹을 수 있는데.. "

" 몰라, 얘기하는 사람, 사이트마다 다 달라서, 나중에 잘 찾아볼게.."



이번에는 쑥으로된 효소를 먹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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