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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Jun 25. 2023

마을 : 서로 다른 생각들이 어울려 사는 곳

사람은 저마다의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같은 모양 같은 성질을 가진 사람은 하나도 없다.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부모 핏줄을 타고난 일란성쌍둥이조차도 그러하다. 십인십색이다.


마을의 내부도 비슷하다. "우리 마을은 경 안 허여 마씸 " 마을의 답변 중 대표적인 것이다. 마을이 행정조직(주체)중 하나라고 생각할 때 동일한 제도와 규칙에 의하여 생성, 관리, 통제된다면 동일한 시스템이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마을은 제도에 의하여 일률적으로 생겨난 게 아니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들을 관리나 행정편의를 위하여 묶음과 나눔으로 편제를  놓은 것이다. 그게 흔히들 얘기하는 법정동·리, 행정동·리다. 굳이 흐름을 따지자면 "자연마을 < 법정리·동 < 행정리·동 순이나, 일부 마을인 경우는 법정리가 행정리보다 큰 경우도 있다. 마을이라고 할 때 필요에 따라서 어느 한 부분을 부르기도 하고 모두를 한꺼번에 부르기도 한다.  

마을의 시작과 형성, 그리고 갈등의 출발점들..

마을이라고 할 때 흔히들 시골을 연상한다. 마을이라는 개념이 출발점인 아주 오래전 그때는 모두가 시골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을은 자연발생적으로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이다. 흔히들 자연마을, 제주에서는 카름이라고도 한다. 물론 지금에 와서 인위적으로 사람이 모여살 수 있도록 공동주택을 짓고 단지 이름을 ㅇㅇ 마을이라고 붙인 경우도 있고, 인위적으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도 있으나 우리가 이들을 자연마을과 같이 마을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특정지역에 모여사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마을이 형성되게 하는 조건이다. 첫째가 인간이 생존을 위한 전제인 먹을 수 있는 물, 즉 식용수가 있는 곳이다. 그래서 마을은 하천변과 용천수가 많이 나오는 곳인 해안가에 집중되어 있다. 다음이 혈연, 문화, 국가의 정책 등 인문학적 요소다. 그곳에 어떤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느냐에 대한 해답이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게 같은 성씨들이 모여사는 집성촌이다. 집성촌은 제주인 경우는 드물지만 육지부인 경우는 많다.

수령 1000년이 넘는 마을입구 팽나무

예전 교통과 통신이 원활치 않던 시기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마을들은 독자적으로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 마을 간의 소통이나 교류도 드물었고, 국가의 제도나 통제가 생활의 곳곳에 까지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많지 않았다. 지금 보면 바로 옆 동네라 하지만 왕래가 어려웠던 시절 그들은 서로 모르고 살았을 수도 있다. 자연에 순응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연을 개척하기도 하면서 나름대로의 삶의 방법을 만들어 왔다. 마을 나름대로의 제도와 문화, 생활방식, 자치와 통제를 위한 규율이 자생적으로 생겨났을 것이다. 지금같이 체계화되고 문자화된 것들은 아니지만 마을 주민들 사이에 관습적으로 내려온 것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마을의 문화이자 정체성, 정신이다.   


일제강점기 지번이 부여되고 행정체제가 정비되었다. 인접해 있는 몇 개의 자연부락을 묶고, 나누면서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만들었다. 수백 년 동안 나름의 방식으로 별다른 간섭 없이 살아왔던 마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옆 마을과 묶어서 하나의 행정구역이 되었다. 즉, 현대판 마을이 탄생한 것이다. 최근에는 이를 법정리·동과 행정리·동이라고 부른다.  이 마을에서는 하나의 지도자를 뽑아야 하고, 하나의 규율에 의해서 움직여야 하고, 같은 생활과 문화를 권유하거나 강제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는 마을의 재산도 공유를 해야 한다. 지금까지 수백 년 동안을 각자 살아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하나로 뭉치자니 서로의 다름에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명문화되어 있지 않고 관습화 되어 있기에 공유하고 조정한다는 것도 어렵다. 명문화, 제도화되는 과정에서 서서히 갈등이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제도가 생길 때마다 갈등은 발생한다

밀레니엄 시대 제주는 대내외적으로 큰 변화를 맞게 된다. 그동안 정적으로 살아왔던 제주가 세계를 향해서 발돋움하겠다는 국제자유도시 추진이다. 세계인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이 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도내 곳곳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파헤쳐지면서 휴양 레저단지, 골프장, 관광단지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2013년경부터는 이주민들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제주에 살겠다는 자발적인 사람들이다. 이들은 조용했던 제주의 마을 곳곳, 주로 농어촌인 읍면지역에 들어왔다. 농가가 있던 마을에 현대식 건물을 지었다. 농어업이 주업인 마을에 펜션, 민박, 카페가 생겨났다. 이들은 마을의 문화나 정서를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이 원하는 장소에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건축을 하고 소유권을 주장했다. 수백 년 동안 지켜온 마을의 관습과 정서법에 대한 전면적인 도전이었다.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마을의 스카이 라인이 무너지고 마을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발생했다.  


제주 사회에 근본적으로 다른 생각을 가진 이질 집단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제주를 모른다. 태생적으로 다를 뿐만 아니라 지향하는 방향, 제주에 살고자 하는 그들만의 이유가 있기 때문에 선주민들과의 갈등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마을공유재산을 둘러싼 갈등, 마을 선거를 둘러싼 갈등, 올레와 수눌음 등 제주의 고유문화에 대한 갈등, 리정세 납부에 대한 갈등, 마을의 공동활동에 대한 갈등 등 전면전이었다. 이주민들은 제주가 본인들이 살던 곳 하고는 달라서, 다른 그게 좋아서 제주에 살고자 왔다는 사람들이다. 정작 본인들이 살면서부터는 그 다름이 낯섦과 불편함만 보이기 시작했다. 제주의 마을에서 또 다른 갈등의 시작이다.


갈등은 가까운 곳에서 출발한다.


마을에서 할망당을 찾아가는 길은 험하다. 수풀을 헤쳐서 가야 하는 경우도 있고, 밭 사이 잣담을 조심조심 걸어서 가야 하는 경우도 많다. 할망당은 오시록헌 곳, 사람의 왕래가 많지 않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할망당이 누구의 땅에 있는지, 누구네 올레로 가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할망당이 있는 곳과 가는 길은 아마도 대부분 마을에서 수백 년 전부터 관습적으로 내려왔을 것이다.


제주사람들은 할망당 주변에서 다른 행위를 함을 터부시 하고 조심하는 경향이 있다. 일종의 신성함을 지켜주고자 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주민들은 제주인들의 이런 정서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토지를 매입하게 되면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내 것이 된다.


얼마 전 방문했던 마을 이장님의 하소연이다. 마을의 할망당은 길이 없어서 좁은 잣담길을 조심조심 지나야만 갈 수 있었다고 한다. 요즘은 할망당을 찾는 이들도 별로 없다. 가끔 무당들이나 찾는다고 한다. 그래도 마을의 문화이기에 보존의 필요가 있어서 할망당 진입로를 넓히고 정비를 했다. 그러나 할망당옆에 이주민의 집이 들어서고 경계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할망당이 없어질 위기가 발생했다고 한다. 법정 소송까지 진행을 했으나 마을이 패소를 했다고 한다.


" 할망당 주변에도 집을 짓고 사나요? "  

" 예, 요새 이주민들은 그런 거 몰라마씸.." 이장님의 퉁명스러운 대답이다.




바닷가를 끼고 있는 마을, 어촌계를 가지고 있는 마을에서 제일 부자는 어촌계다. 그러기에 힘도 가장 세다.

마을에서 어촌계의 위치는 특이하다. 자연마을은 아니다. 굳이 마을 내에서 위치를 찾는다면 자생단체 중의 하나다. 단체가 마을의 일부인 해안(가)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리사무소에는 마을 현황판이 있다. 자생단체(장) 현황과 편제가 도표로 그려져 있다. 어촌계가 있는 마을인데도 현황판에 어촌계(장)의 표시가 없는 일부 마을이 있다. 불편한 관계를 나타냄이다.


어촌계는 엄연히 마을 내에 있음에도 마을회의 관리 밖이라고 한다. 마을에서의 모든 일은 이장의 결재나 협조가 있어야 하는데 어촌계의 일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행정이 어촌계의 이러한 프로세스를 인정하고 있고 묵인하는게 가장 큰 원인이라고 마을에서는 주장한다.  

마을에서 어촌계는 비교적 단단한 재정과 활용 가능한 해안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마을 만들기 사업은 마을의 자원 활용이 절대적이다. 자부담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어촌계는 이 두 가지 해결책을 가지고 있다. 협조를 둘러싼 생각의 차이에 따라서 마을과 어촌계의 갈등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 가운데에 행정이 놓여있다.    

어울려 살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한 마을       


사람이 사는 사회 생각이 다름은 어쩔 수 없다. 강력한 자정능력이나 통제기구가 없는 마을에서는 생각이 다름을 나타내는 방법 역시 생각의 차이만큼 다양하다.

생각이 차이를 어떤 용어로 표현할지는 각자의 몫이다. 그러나 굳이 부정적인 용어를 사용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또한 각종 매체와 호사가들이 이를 확대 재생산하면서 자기들의 입지 확보를 위한 도구로 삼지 말았으면 한다.

생각의 다름은 항상 있는 것, 단지 마을 스스로가 이를 조정하고 배려하면서 같이 어울려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한 시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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